□들어가는 말
비승비속(非僧非俗). 포교의 최일선에서 전법사명의 원력을 불태우면서도 종단 내에서 종법이 규정하는 대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위치에 포교사들이 있다. 조계종의 경우 ‘포교법’을 통해 포교사들의 종단적 지위와 역할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종단 행정과 예산 편성 등에서 상당히 소외되어 있다. 개방성과 다양성이 보편화된 현대사회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겠다는 원력 불자들이야말로 포교 인프라의 중심이다. 그들의 ‘고민’이 해결되지 않는 한 포교의 미래도 밝아지기 어렵다.
□연 25억 자비들여 고군분투
| ||||
조계종 이외 종단의 경우 자체적으로 포교인력을 활용하는 사례가 있지만, 구체적인 활동 실적은 나타나지 않는다. 포교사들이 조직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곳은 조계종 포교사단이 유일하다고 말할 수 있다.
조계종포교원과 포교사단이 조사한 <포교사단 팀활동 포교사 현황 보고서(2003)>에 따르면 실질적으로 활동 중인 포교사들은 2천여 명으로 전체 포교사의 30%이다. 70%에 이르는 5천여명의 포교사는 자격만 부여받았을 뿐 활동을 아예 하지 않거나 도중에 포기했다.
왜 그들은 포교 일선에 나서지 않는 것일까. 포교활동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유승무 중앙승가대 포교사회학과 교수는 “자격만 부여할 뿐 포교사들의 활동을 보장하는 제도적인 뒷받침이 거의 없고 재정적인 지원, 물적인 후원이 뒤따르지 않기 때문에 현실의 벽에 막혀 포교활동을 하고 싶어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진단한다.
현재 각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2천여 명의 포교사들은 자신의 가정과 직장에서 상당부분 희생을 감수하고 있다. 가정의 생활비를 나누어 포교비로 사용하고 있고, 가족과 함께 보내야할 주말시간을 포교활동에 투자하고 있다.
#교육부재…전문가 양성 역부족
포교사들이 현장에서 느끼는 가장 큰 고충은 포교사 배출과 관리 체계에 관계된 교육의 부실이다. “예비포교사들의 현장학습 강화, 포교방법 연구기관 및 포교사 전문교육과정 개설을 통한 전문화 방안이 마련돼야한다”는 것이 현장 포교사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이는 곧 포교사 고시를 제도적으로 보완해야 할 필요성으로 이어진다. 조계종 포교원은 매년 불교대학 졸업자를 대상으로 포교사 고시를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불자들 사이에는 포교사 고시를 사찰불교대학 수료 과정에서 형식적으로 취득하는 ‘자격증’ 쯤으로 여기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때문에 포교사 자격증이 ‘장롱자격증’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불교대학 졸업자만을 포교사 고시 응시자격자로 제한하는 지금의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이같은 의견을 반영해 조계종 포교원은 포교사 고시의 시점을 졸업 전에서 졸업 후로 바꿀 예정이다.
그러나 포교사들은 “포교사 시험의 시행시기와는 별개로, 자체 교육과정이 없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불교대학은 포교사 활동을 위한 전문양성과정이 아니다보니, 포교에 대한 전문적인 마인드를 갖춘 인재를 키워내기에는 부족하다.
때문에 이론시험을 통해 포교사 자격증을 받아도 막상 현장에 나가면 포교역량을 발휘하기에 모자라는 경우가 많다. 포교사 전문 교육과정을 불교대학 내에 개설하거나, 포교전문 아카데미를 설립하지 않으면 현장의 애로사항을 풀 길이 없다.
현장경험이 풍부한 인재들을 제도권 내로 포섭할 수 있는 방안도 마련되어야 한다. 현재 포교사 고시는 불교대학 졸업자만을 대상으로 한정하고 있어, 현장에서 실무경험이 많은 사람이라도 불교대학과정을 이수하지 않으면 포교사 고시에 응시할 수 없다. 소속 사찰이나 단체장의 추천을 받는 제도가 있기는 하지만, 그 나마 전체 응시자의 10% 내외로 제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조계종 포교원 포교국장 선웅 스님은 “추천자 제한 규정을 없애 좀 더 등용과정을 넓히고 다양한 현장전문가가 적재적소에 기용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법으론 ‘보장’, 현실에선 ‘외면’
어렵게 포교사 고시에 합격해 일선에 투입된 포교사들은 “막상 현장에 나가보면 여러가지로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고 토로한다. 현장 포교사들이 호소하는 어려움 가운데는 ‘지원이 미비하다’거나 ‘일거리를 찾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가장 많다.
서울ㆍ경기포교사단 지역봉사팀에 소속되어 병원에서 활동하고 있는 박모 포교사는 “합장주나 불경을 선물하는 일, 호스피스 재교육을 받는 일 모두 자력으로 해결하다보니 생활비가 많이 모자란다”며 “간병인은 돈을 받으며 봉사를 하지만 포교사는 오로지 포교만을 위해 교육과 투자에 자신의 돈을 쏟아가며 무료로 활동하고 있다. 적어도 종단 내에서 기본적인 포교도구는 지원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포교원에서는 포교사 위탁교육에 대한 연수교육비 명목으로 2천만 원을 지원하고 있지만, 실제 현장에 대한 지원은 거의 없다. 포교사단 자체 집계결과, 한해 포교사단의 활동비용은 약 25억 원을 웃도는 것으로 환산됐다. 모두 포교사들이 일선에서 뛰며 직접 자비(自費)로 부담한 돈이다.
양성홍 조계종 포교사단장은 “포교에 큰 뜻을 품고 현장에서 활동하는 포교사들은 신심과 원력만으로 이 모든 일들을 해낸다”며 “포교와 관련된 당면과제들을 포교사들만으로 풀 수 없는 만큼, 보다 근본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미 법적 장치는 있다. 조계종 포교법 제33조 1항에 ‘교구본사 및 사찰, 포교당은 포교사 1인 이상을 두어야 한다’고 명시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포교사가 상근하는 사찰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또 같은 법에서는 사찰이 포교사의 활동을 적극 지원하도록 하는 조항이 상당히 많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다.
최근 수원 용주사가 본사와 50여개에 이르는 말사 사찰마다 각각 1명의 상임포교사를 기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포교사단 측은 “이 같은 방침을 전해들은 뒤 크게 고무되었다”며 “보다 많은 사찰들이 종법대로 사찰 포교사 제도를 실시한다면 현재와 같은 열악한 상황이 크게 개선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밝히기도 했다.
포교사와 사찰이 밀착되어 포교를 펼치는 방안 외에도, 사찰의 눈이 미치지 않는 포교의 사각지대에서 활동하는 포교사들에 대한 지원 대책 역시 마땅히 강구되어야한다. 종단과 교구본·말사, 각종 포교단체와 포교사단 내 팀을 잇는 포교행정망을 구축해 일괄적이고 체계적인 종책 마련이 필요하다.
#사찰-포교사 협력관계로
현 포교사들은 재가신도와 뚜렷이 구분되는 여법한 위치가 설정되어 있지 않아 포교사에 대한 예우는 거의 전무한 것이 현실이다. 조계종의 경우 현행 종무원법에는 포교사가 일반직 종무원으로 분류돼있다. 이는 종종 원대한 포교 원력을 세운 포교사의 활동을 가로 막거나 사기를 꺾는 원인이 되어왔다. 재가불자를 상대로 불교포교에 일익을 담당해야 할 포교사의 위상을 높이는 일이 시급하다.
창원의 D사찰 포교사인 이모씨는 거사법회를 이끌려다 “재가자가 법상에 앉으려한다”는 스님들의 비난에 부딪쳐야했다. 이씨는 “사찰에서 활동하고 싶어도 여건이 조성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다”며 “포교사가 적극적으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포교사라는 직위가 우바이·우바새와 승가를 잇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신분 보장을 확실히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위상제고 문제와 함께 각 사찰은 사찰불교대학 강사, 사찰 평신도 교육, 자원봉사 등의 사찰 제반활동에 포교사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한다. 사찰은 포교사와 협력관계를 구축함으로써 포교 사각지대에 주력할 수 있고 효과적으로 업무를 분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경기포교사단 사찰문화해설1팀장 권중서 포교사는 “포교사를 스님의 영역을 빼앗는 사람이 아니라 스님의 일을 도울 수 있는 사람으로 생각해 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포교사들에 대한 종단적 지위 확보, 종법에 따른 활용, 재교육 시스템 등 제도적 뒷받침 없이는 ‘포교 인프라’의 핵심도 구축될 수 없다. 포교사는 맞춤포교 시대를 가장 적극적으로 주도해 나갈 전문 인력이고 이들의 참여에 따라 맞춤포교가 얼마나 성공적으로 뿌리내릴 수 있는지의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은비 기자
□포교사 활동 모범사례
강원도 동해 삼화사(주지 원명)는 사찰내에서 포교사가 가장 활발히 활동하는 대표적인 사찰이다. 지역포교를 선도하는 삼화사와 서울·경기포교사단 지역봉사7팀(팀장 김명남)이 상호간 신뢰를 바탕으로 협력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지역봉사7팀 소속인 30여 포교사들은 사찰내 포교와 신행업무를 수행할 뿐만 아니라 지역포교활동을 펼치고 있다. 삼화사 부설 동해불교대학 교무처에서 7명의 포교사가 활동하는 것을 비롯해 사찰 안내, 수련회·템플스테이 진행, 프로그램 구성 등을 주관하고 있는 것. 이를 통해 삼화사와 지역불교 발전을 견인하는 한 축으로 자리잡았다.
이는 포교사들이 활동할 수 있도록 업무와 여건을 만들어 준 삼화사측의 역할 제공과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삼화사 주지 원명 스님은 지난해 포교사들의 활동비 명목으로 1백만원을 선뜻 내어주기까지 했다. 지역봉사7팀 소속 포교사들이 동해불교대학을 졸업, 사찰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점도 사찰과 포교사간 협력관계를 형성한 한 요인이다.
화성 용주사(주지 정락)의 포교사 활용 사례는 사찰에 연고를 두지 않은 포교사들이 노력봉사로 자리를 잡은 경우다.
여주 신륵사에서 활동하다가 용주사로 자리를 옮긴 서울·경기포교사단 사찰문화해설1팀(팀장 권중서)은 성보박물관의 터줏대감 같은 존재다. 성보박물관 관람객을 위한 문화해설을 비롯해 자원봉사자 교육, 현장학습 지도, 교도소 위문법회 등을 담당하고 있다.
스님들이 하지 못하는 영역을 이들이 대신하게 되자, 용주사는 포교사 활동을 적극 장려하기 위한 방안을 내놓았다. 용주사 주지 정락 스님은 지난 3월 교구 50여 말사에 상임포교사를 두고 그들로 하여금 지역포교에 나서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서울 화계사(주지 성광)와 남양주 봉선사(주지 철안)도 사찰내 포교사 활동을 적극적으로 후원하는 사찰로 꼽힌다.
화계사에서 활동하고 있는 30여 포교사들은 내세움 없이 대중과의 원융·조화를 통해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매주 열리는 수선회 법회, 어린이회 지도, 중·고등학생회 상담 등이 그들이 맡고 있는 분야다. 성광 스님은 가족법회 가운데 월 1회는 포교사들이 법석에 오르도록 배려하고 있다.
봉선사는 포교사 10여명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인근 군부대 법회, 사찰 안내, 어린이법회, 중·고등부 법회, 봉선사내 군인법회 등 소임을 맡고 있는 스님들이 전부를 소화할 수 없는 법회를 주관하면서 효율적인 사찰 운영을 이끌어내고 있다.
동해불교대학 교무처에서 봉사하고 있는 최종옥 포교사(49)는 “주지 스님이 포교사들을 믿고 사찰일을 맡기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며 “사찰은 포교활동을 원하는 준비된 포교전문인력을 활용할 수 있어서 좋고, 포교사들은 포교원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일을 제공받으니 일거양득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