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볼 수 있으려면…
질문: 얼마 전 TV를 통해 사찰에서 아이들을 학대하는 내용을 보고 제가 불자라는 것이 창피했고 그분이 무척 미웠습니다. 그렇지만 오늘 일간지를 통해서 본 내용은 그것이 타 종교 예방 센터와 기자가 몇 개월 동안 잠입 취재를 해서 만들어진 것이었으며, 상당 부분이 과장되었다는 기사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서 제 자신이 너무 원망스러웠습니다. 보이고 들리는 그 모든 것을 진정으로 내 근본에 돌려서 내놓지 못한 채 옳다 그르다는 분별만으로 세상을 판단하며 살아가는 제 모습이 한심스러웠기 때문입니다.
스님, 어떻게 하면 마음의 중심을 세워서 진실만을 볼 수 있을까요? 정말 내 안의 근본만을 의지해서 보이고 들리는 그 모든 것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스러워질 수 있을까요?
답변: 그것은 세상의 물리를 다 파악 못하고 물리가 터지지 못했기 때문에 보이는 것만 보고 들리는 것만 들으면서 옳다 그르다 하는 겁니다. 옳다 그르다가 없이 그대로 여여하게 닥치는 대로 생활을 한다면 그처럼 그대로가 없을 텐데 말입니다. 또 모르고서 그대로 한다고 아무리 해 봤자 걸립니다. 내면의 나와 둘이 아니게 할 수 있는 내면세계를 완전히 파악하고야 그 모든 것을, 외부의 모든 것을 가늠할 수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이것이 아니다 이것이 옳다, 이런 걸 다 놔라 이랬잖아요. 마음의 도리를 배우는 데는 이것이 옳다 이것이 그르다는 것이 아예 없다고 그랬잖아요.
그러니 왈가왈부 하지 말고, 이론으로나 학술로 따지지 말라고 하는 겁니다. 예전에 큰스님들께서 공부하실 때 중간에 전부 책을 덮어 놓고 공부를 하셨습니다. 부(父)와 자(子)가 상봉을 해서 둘이 아닌 도리를 알아야 하고 둘이 아니게 나투는 도리를 알아야 구경경지에 이르러서 부처님의 말씀을 다 응용할 수 있고 그것을 둘이 아니게 중용할 수 있는 그런 법이 있구나 하고 다 덮었단 말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러분은 꼭지가 덜 떨어져서 항상 사량으로만 이게 옳다 저게 옳다 이러다 보면 몸이 다 늙어서 사대가 무너지는데 언제 공부하려고 그럽니까?
그러니까 중심을 잘 지켜서 중도를 행하라 이거죠. 중도로서 중심을 지킨다면 항상 회전이 되는데 가정에서 말다툼을 할 때도 지나치게 하니 싸움이 돼서 이혼도 하게 되는 거죠. 그 별거 아닌 것 가지고 말입니다. ‘인생살이가 뭐 그렇고 그렇지.’ 이렇게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그냥 이만한 건 다 잊어버리고 요만한 것 가지고는 그냥 툭탁거리고 그러다가는 나중에는 그냥 파산이 돼 버리죠. 이게 뭡니까, 이게? 세상에!
그러니까 모두 마음 중심의 지조를 지키면서 항상 자생중생과 한마음으로서, 이 자체를 바로 거기에다가…. 불을 밝히세요. 밝아지는 것도 여러분이 지혜로운 마음으로서 굴림을 굴려야 밝아진다 이겁니다. 하여튼 너무 지나치면 안 된다 이겁니다. 요새도 가만히 보면 너무 지나친 데가 있더군요. 지나치다 지나치지 않다, 이것을 해야 된다 안 해야 된다 여기에서 잘 포착해서 억울한 사람들을 해치지 않게끔 하는 것이 정당한 방법이죠. 우리가 내 종교다 네 종교다를 떠나서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마음의 중심을 세워서, 중심이 즉 부처지 딴 데 있는 게 아닙니다. 중심이 주장자고 중심이 주인공이고, 그러기에 기둥 ‘주’를 썼습니다. 생각나기 이전의 그 마음 중심이 바로 기둥이다 이거죠. 당신의 기둥이다. 그러면 그 기둥은 전체적인 기둥이지 개별적인 기둥이 아니죠. 그러니까 전체적인 그 기둥은 뭐든지 내가 원하는 대로, 불을 켠다든가 라디오를 켠다든가 어떠한 뭘 끓인다든가 밥을 짓는다든가 또는 모터를 돌린다든가, 모든 다양하게 쓸 수 있는 그 주장자는 전체적인 걸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전체적인 걸 내가 쓸 수 있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으로 당연한 자기의 중심적인 능력이 있다는 것을 믿으면, 진짜 믿는다면 그것은 첨단의 언덕을 넘고도 남음이 있을 겁니다.
그리고 언제나 틀림없이 할 수 있는 아주 귀중하고 철저한 것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우리 마음의 중심에 의해서만이 여건을 이어서 잘 이끌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여튼 모두 중심을 지켜서 중도로서 중용을 할 수 있는 그런 의욕과 패기와 광대한 자유를 갖게끔 정신계를 기릅시다.
인간 세상도 약육강식이 아닌지
질문: 제가 여쭙고 싶은 게 뭐냐 하면, 동물의 세계를 보게 되면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잡아먹지 않습니까? 그게 죽이는 것과 똑같은 얘기라고 보는데요, 그것은 우리 인간 세상도 같다고 생각하거든요. 약자가 강자한테 눌리듯이. 그것을 어떻게 보십니까? 살기 위해서 내가 잡아먹는 거 아닙니까?
답변: 내가 항상 그렇게 말하죠. 수억겁 광년을 미생물에서부터 진화되어 거쳐 오면서 쫓고 쫓기면서 잡아먹고 잡아먹히면서 인간까지 등장했다고요. 그러니까 내가 잡아먹지 않으면 안 되게끔 벌써 그렇게 정해졌던 거죠. 그래 가지곤 서로 잡아먹게 돼 있어요. 근데 인간은 꺼풀을 살짝 씌워 놨어요. 이 지금 인간으로 꺼풀을 살짝 씌워 놨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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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그 중생들을 위해서라면 내가 지금 꺼풀 씌워 놓은 그 속에 있는 그 수많은 중생들을 벗어나야 그 중생들을 건질 수가 있거든요. 그 중생들하고 같이 그냥 복닥거리면 항아리 속에서 항아릴 어떻게 굴릴 수 있겠느냐 이겁니다. 항아리를 벗어나야 내 몸뚱이 항아리를 굴릴 수 있다 이겁니다. 마음대로 굴릴 수가 있다 이거예요. 천차만별의 마음들을 마음대로 굴릴 수가 있다. 그래 내가 벗어나야, 이걸 굴릴 수 있어야, 즉 말하자면 천백억 화신으로서의 그냥 응신으로서 털구녘을 통해서 그냥 들고 나면서 모두 사람들을 건지는 게 보살이다 하는 얘깁니다.
그러니깐 누가 보살이라고 이름을 안 지어 줘도 보살행을 하면 됐지, 보살이라고 이름을 안 불러 준다는 그런 것도 생각지 말아라 이겁니다. 무슨 보살이라고 누가 생각을 안 해 주면 어떻고 불러 주지 않으면 어때요? 나만이 즐겁게 웃으면서 응신이 돼서 건져 주면 됐고, 내 아픔과 똑같은데, 내가 울지 않고 정말 즐겁게 웃으면서 길을 걷는데 얼마나 좋겠어요?
그러니까 여러분도 생활하면서 그대로 생활이 실상이고 실상이 바로 참선이고 마음이 편안하면 좌선이니 그렇게 믿고 열심히 살아라 이겁니다 마음은 요동을 치는데 몸뚱이를 동여 매 놓고, 선방에다 꿇어 앉혀 놓고 그래 가지곤 몸뚱이에 병이 들게 하고, 그 몸뚱이 속에 있는 중생들을 괴롭게 만들고 이렇게 하지 말라 이겁니다. 오히려 그러는 것은 중생들의 마음을 괴롭히는 거니까 자기의 몸뚱이를 괴롭히고 자기 몸뚱이 속에 있는 중생들을 괴롭히고 그러는 것이다 이거예요. 이 것을 모두가 알면 좋을 텐데, 모두 글쎄 그냥 경전의 관념에 딱 착이 붙어 가지고 ‘아이고, 경전의 말씀만이 제일이지.’ 이러지 말고 자기부터 보라 이겁니다, 자기부터. 자기부터 봐야 부처님 말씀도 그것도 훤하다 이거지요. 자기를 모르는 사람이 부처님의 마음을 어찌 알겠습니까?
몸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나요?
질문: 제 몸을 어떻게 다스려야 되겠습니까? 어떻게 제도해야 되겠습니까?
답변: 여러분의 마음내는 지배인은, 마음을 내면 속의 중생들이 전부, 의학적으로 볼 때도 그렇고 우리가 보편적으로 방편으로 헤아린다 해도 헤아릴 수 없는 그 생명들이, 의식들이, 모습들이 그렇게 여러분 속에 있습니다. 간단하게 따진다 해도 간단하게 줄잡아서 십일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건 숫자를 딱 맞춰서 말한 게 아닙니다. 그러니 십일억 중에 하나만, 그것 하나가 생각하는 것만이라도 그 한 생각에 수천수만이 될 수도 있는 겁니다. 그러니 얼마나 수효가 모래알 같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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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그 인생이 나와서 수없이 속을 상하게도 하고, 안되게도 하고, 될듯하면서도 안되게 만들고, 만약에 원수로 인연을 지은 업이 있다면 그냥 속을 썩여서 문드러지게 만들고 말입니다. 남이 속을 썩여서 자기가 그냥 못 견디게 만들고, 병고를 일으키고 온통 뭐, 그건 말도 할 수가 없는 위기에 처해 있을 수도 있는 겁니다. 그러니깐 거기에 속지 말고, 즉 말하자면 마음을 비우라 이 소리죠. 그건 왜? 거기서 일어나는 대로 거기서 속아서 말리지 말고, 상관하지 말고, 너희들한테서 나오는 거니까, 한마음 속에서 나오는 거니까 한마음 알아서 해라 이거에요. 거기다 놓아라 이 소립니다.
그걸 자세히 얘기하자면, 그 시스템을 지금 우리말로 말을 하자면 탐지기, 팩스, 무전 통신기, 망원경, 컴퓨터 이 다섯 가지가, 누진통은 레이다망으로 치구요, 그 오신통에서 벗어난 레이다망입니다. 그렇다면 그 오신통 시스템이 어떻게 되었느냐. 숙명통이라는 컴퓨터가 과거에 살던 자기 업대로 전부 인과가 돼서 거기에 입력이 돼 있단 말입니다. 여러분이 짊어지고 나왔다 이겁니다. 그래서 과거는 지나갔으니까 없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니깐 없단 말을 하는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지금 잔뜩 짊어지고 있는데 입력을 해놓은 그것을 어떻게 지워 버릴 수 있겠느냐는 얘깁니다.
그러니 작업을 어떤 것부터 해야 하느냐 하면 바로 입력이 돼서 지금 현실에 살아나가는 대로 나오는 거니깐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어떠한 용도가 닥치더라도 모든 것은 거기다 다시 맡겨 놓으면 입력이 다시 되는 겁니다. 만약에 과거에 입력된 것을 지금 현실에 또 입력을 한다면, 나온 걸 되놓는다면 과거에 입력된 건 다 무너지고 말아 버리는 겁니다. 오간지옥이라든가 업보라든가 유전성이라든가 영계성, 세균성 모든 업보, 화탕지옥이니 뭐니 다 무너지는 겁니다. 그리고 현실에 입력되는 것이 다시 그게 나온단 말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평화스럽고, 몸이 건강해지니 좋고, 마음 편안하니 좋고, 가정에도 악한 일이 생기지 않으니 좋고, 우환 생기지 않으니 좋고, 화목하니 좋고, 애들 속 안 썩이니 좋고, 모두가 전력과 같고 광력과 같아서 두루 밝게 돌아가게 되는 겁니다. 여러분이 지수화풍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지수화풍을 먹고 살고, 지수화풍으로서 대두돼서 나가기 때문에 재료가 광력, 전력, 자력, 통신력이 충만하다 이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의 몸은 오븐과 같아요. 오븐과 같은데 전기가 전력이 없다면 어떻게 오븐을 돌리겠습니까? 물건이 없다면 또 어떻게 해 먹겠습니까? 그게 다 골고루 맞아 들어가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아주 알맞게 맞춰서 나온 거거든요. 그러니까 만물의 영장이라고 그랬죠. 그리고 부처라고 그랬어요. 그래서 화신 따로 있고, 법신 따로 있고, 부처 따로 있고 그런 게 아니죠. 여러분은 갖추어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러니깐 속 썩이지 말라 이겁니다. 하늘이 무너지더라도 속 썩이지 말고 서로를 자유롭게 해주면서 편하게 살라는 겁니다.
그래야 병이 안 생기거든요. 혈맥이 막히면 영락없어요. 암도 생기는 게 거기서 오는 거고, 여러분이 다 그런 겁니다. 그런데 보편적으로 보면 그냥 돈을 굴리고 악을 쓰고, 그 어떤 일이든지 가리지 않고 덤비는 사람이 병이 들고, 사업을 하다가 망한 사람이 병들고, 또 속 썩어서 어쩔 수가 없어서 펄펄 뛰고 화가 일어나고 그러는 사람이 그 암에 걸려요. 암이라는 것도 지금 알았지, 옛날에야 무슨 암이라는 걸 어떻게 알고 그랬겠어요? 그렇지만 암 잘 걸리죠, 백혈병 잘 걸리죠, 관절 잘 걸리죠, 풍 잘 걸리죠? 이건 뭐 혹이다 뭐다 하고 두뇌에 많이 잘 걸리죠, 눈 시력 나빠지죠? 전체가 그렇습니다.
그러니 잘 생각하셔서 종교는, 불교라는 것은 어디 국한돼 있는 게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근본과 우리 서로 말하는 이 말 자체가 ‘교’고, 그렇기 때문에 불교 아닌 게 이 세상에는 없어요. 그러니 기독교라 그러고, 불교라 그러고, 또 알라신교라 그러고, 티베트 불교라 그러고, 뭐 남묘호랑개교라 그러고 이렇게, 종교가 그렇게 많은데 말입니다. 글쎄, 지구 안에 다 있지 지구 바깥에 있는 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공부해서 우리 몸 안에서 벗어나고, 지구 안에서 벗어나고, 우주 안에서 벗어나야 우리가 인간이라고, 불제자라고 자부할 수가 있고, 또 우리가 자유자재할 수 있는 그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앉아서 이 세상을 모두 탐험해 가면서 앉아서 모든, 나무 한 그루의, 아니 다 죽어 가는 고목의 소리라도 들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난 것도 좀 고생이 되더라도 감사하게 생각하세요. 미생물에서부터 수억겁 광년을 거쳐 오면서 얼마나 진화되면서 쫓고 쫓기면서 이렇게, 인간까지 왔는데 그냥 갈 수는 없지 않습니까? 사람 몸 받기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짐승의 몸으로 한번 태어나 보세요. 그 습이 붙어 가지고 짐승의 무명을 벗지 못한단 말입니다. 그러니 천 년 만에 한 번 벗거나 말거나 한다고 그랬습니다. 인간도 이 인간 몸에서 벗어나야 인간을 굴리지요. 자기를 굴리지요. 그 많은 중생들이 자기 몸속에 있는데 말입니다. 그 많은 의식들을 다 한마음으로 몰고 가려면, 그래도 그 속에서 나오는 거지만 그 속에다 놓을 줄 알아야 되죠. 하인을 부려도 똑똑히 부려야 되지 않겠습니까, 부처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면 말입니다.
화를 어떻게 내야 하는지?
질문: 스님, 요새 제가 하고 있는 경험인데요, 거의 화가 잘 안 나요. 그런데 제가 가끔 생각할 때마다 화는 안 나지만 때론 제가 화를 내야 될 필요성을 느끼거든요. 그런데 어디서부터 화를 내야 되고 어디서부터 화를 안 내야 되는지 그 선을 못 긋겠습니다.
답변: 무조건 화내지 마시고 어떠한 거든지, 부부지간이나 부모자식지간에 어떤 게 걸린 게 있다 해도 모든 것을 자기중심에 맡겨 놓고 부드럽게 말을 하세요. 부드럽게 하세요. 애들한테도 그렇고, 남편한테도 그렇고, 부모한테도 그렇고, 형제한테도 부드럽게 말을 해 줘요. 그러면 따뜻하게 고여서 당신을 또 따뜻하게 맞아 주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깐 무조건 부드러워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세요. 마음은 평등하게 가져야 합니다. 자기 주처를 믿고 모든 것을 거기 맡겨 놓고 거기서밖에 해결해 줄 수가 없다 하고 믿어라 이겁니다, 물러서지 말고. 모든 일체를 말입니다.
그러니깐 여러분이 용도에 따라서 자꾸자꾸 다가오는 생활 속에 경계들이 전부 여러분이 공부할 수 있는 재료예요. 그러니 어떤 게 닥쳐도, 하늘이 무너져도, 땅이 솟아올라도 그걸 재료로만 알고 맡겨 놓는다면 그것처럼 좋은 게 없는 거죠. 거기서 물리가 터지고, 거기서 그릇이 되어서 자기 자신이 바로 홀연히 나타나게 돼 있으니까 말입니다. 나타나면 둘 아닌 도리를 또 배우려고 점검을 받고 이러는 거지요. 그땐 길잡이도 필요하구요.
그러니까 오늘부터 무조건 그런 걸 따지고 마시고, 요런 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내가 말을 해야 하고, 어디까지 여기다 놓아야 하는 가 그러지 마시고 무조건이요. 여러분이 지금 누구든지 다 이 세상에 태어났으면 무조건 답답한 것도 그 속에서 나오는 거, 안되게 하는 것도 그 속에서 나오는 거, 자기가 이날까지 살림했지 누가 딴 사람이 해 줬나요? 네? 그러니깐 그 살림하는 게 전부 보고, 듣고, 판단을 하고, 결정을 내리고, 하겠다 안 하겠다 하는 것도 결정 내리고 이 날까지 살아왔죠? 그러니깐 그 결정 내린 그 장본인 자체에, 주처에다가 맡겨 놔라 이겁니다. 그러면 홀연히 자기가 나타난다니까요.
그리고 또 첫째 마음이 편안해 집니다. 모든 모습들이, 모든 의식들이 ‘야, 한마음으로서 자기와 똑같이 인정을 해 주는구나.’ 이러고서 아주 좋아서, 흥겨워서 콧노래만 부르게 하고 그냥 이렇게,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거든요. 그러니 병이 들었던 것도 낫게 되는 거죠. 그러면 무조건 믿어야죠. 근데 자기를 끌고 다니는 자기를 왜 못 믿어요? 네? 얼마나 감사한데. 지금 질문하게 한 것만도 감사하지 않아요?
세균성에 대해서
질문: 스님께서 업보성과 세균성이 있다고 하셨는데요, 책의 내용에서 원인 없이 오는 경계는 없다고 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세균성은 원인 없이 그냥 경계가 오는 것 아닌지요. 그렇다면 그 세균성은 어디서 오는 것인지요. 이 두 가지가 정말 궁금합니다.
답변: 마음이라는 것은 작으나 크나 똑같습니다. 내 집부터 다스릴 줄 알아야 합니다. 내 집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바깥에 나가서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내 몸속에는 수억겁을 거쳐 오면서 누적된 다섯 가지의 문제점이 있습니다. 세균성에 대해서 물어봤는데, 우리는 수없이 과거로 해서 미래로 해서 현재로 다시 들어오고, 또 돌아서 다시 들어옵니다. 그런데 누구나가 다 똑같이 돌아오긴 하는데 모습을 어떻게 가지고 나오느냐가 문제입니다. 천차만별의 마음의 차원이 있기 때문에 그 차원대로 모습을 쓰고 나오니까요. 이것을 기필코 우리가 해결하고 뛰어넘어야 되겠기에 이런 말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인과성, 세균성, 영계성, 업보성, 유전성 이 다섯 가지가 문제가 되고 그럽니다. 그런데 세균성을 많이 맺어 놓은 사람은 고기를 많이 잡아서 해쳤다거나 살생을 많이 해서 문제가 된 인연들이 많죠. 세균성이라고 하는 것도 살생과 더불어 원한의 인연이 되는 거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뱀 소굴에서 뱀들을 잡는다거나 이랬다면, 임신을 하지 않았어도 꼭 그것이 자식들한테로 대치가 되거든요. 그거 우습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세균성의 원리가 그러하니까 그렇게 세균성이 오는 거죠. 내 자식들을 이렇게 했으니까 너도 네 자식 때문에 이렇게 좀 돼 봐라 하고 여지없이 유전이 되는 거죠. 그러니까 우연이라는 거는 없습니다. 자기가 저지르지 않은 것이 오는 이치는 없어요, 절대로.
과거에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그 속에서 악종의 인연을 많이 맺은 사람들은 지금 자식들로 인해서 속도 썩거니와 불구인도 나오고 별의별 일이 다 나오는데, 이 인과성의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을 할 테냐는 얘깁니다. 선종으로 인연을 많이 맺은 사람들은 선종을 낳게 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애들이 극진하고 말을 잘 듣고, 그 모든 것을 속 안 썩이고, 그냥 수순하게 살아 주는 그런 가정이 되겠죠.
그러니까 그것이 누가 갖다 준 게 아니라 바로 내 속에 그렇게 주둔해 있기 때문입니다. 내 속에 그렇게 주둔해 있기 때문에 거기에서 인과성에 연결이 돼서, 고리가 고리를 물고 나오기 때문에 자식을 낳아도 고리가 고리를 물고 나오는 겁니다, 종자가 그 종자니까. 그러니까 선종이다, 악종이다 하는 인연을 자꾸 만든다면 아니 되죠, 그거는. 그래서 과거는 내 몸뚱이에 다 주둔해 있기 때문에, 과거는 지나갔으니까 없다 이러는 겁니다. 내 몸뚱이 속에 다 주둔해 있기 때문에 미래는 오지 않았으니까 없다 이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인과성에 대해서도 내 몸뚱이 속에 다 가지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의 몸뚱이가 지수화풍으로 뭉쳐졌기 때문에 광력이나 전력 자력 통신력이라는 재료가 여러분 속에 충만히 있으니 여러분은 문제가 있을 때마다 여기저기 가서 빌지 말고 내 내면세계 그 깊은 마음속의 해결력을 믿어 보세요. 아픈 것도 내 한마음 속에서 나온 거니 거기다가 맡겨 놓고 산다면 자기 내면이 그대로 의사가 됩니다. 지금 어떠한 문제가 있더라도 찰나에 관세음보살이 됐다가 칠성이 됐다가, 지장이 됐다가 지신이 됐다가 용신이 됐다가, 이렇게 한생각에 마음이 찰나찰나 화하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바로 네 마음 한생각에 물리가 터지고 모든 것을 항복을 받아서 모두 내줘도 줄지 않고 들여놔도 두드러지지 않는 이런 세계를 파악한다면 삼천대천세계가 한 주먹에 있느니라, 하셨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여러분은 자유자재권을 가지고 자유스럽게 삶의 보람을 느끼면서 살 수 있다는 거지요. 여러분이 이런 공부를 해서 내 몸속의 중생들을 제도해서 천백억화신으로 만드시고 여러분 가정을 이끌어 나가시면서 사회를 이끌어 나가고 나라를 이끌어 나갈 수 있는 그런 능력을 얻는 데 목적을 두십시오. 우주와도 직결이 돼 있고 세상과도 가설이 돼 있으니까 여러분의 마음에 따라서 그것은 즉시 무에서 유로 나올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마음속에 재료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며, 그래서 99% 부처가 될 수 있는 것이 그 마음입니다. 돈이 드니 마음을 그렇게 못 씁니까, 피곤하니 마음을 그렇게 못 씁니까? 여기 가나 저기 가나 참선이요, 여기 가나 저기 가나 바로 자기 자리요, 여기 가나 저기 가나 바로 그것이 좌선이란 말입니다. 여러분이 마음이 편안하면 좌선이요 마음이 복잡하면 망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