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조선시대 ⑫
고려시대부터 중국과의 사행(使行) 때 공물이나 회사품에 거의 빠짐없이 차가 들어있었고, 그 양도 적지 않았다. <통문관지(通文관誌)>에 의하면 사신들의 왕래에 상당량이 공식적으로 오가고 또 부족한 것은 수행하는 상인들에 의해 거래되기도 했다.
또 중국에 들어간 우리 사행에 일정량의 차를 조참이나 하정 때 내렸는데, 이 시기에 오면 중국의 차인심도 각박해져 그 양이 줄었다. 임란 후 일본과 국교가 회복되면서 사신들이 오면 동래부에서 다례를 행했다. 왕실이나 공식적 의례에서는 차의 수요가 줄지 않았지만 전란 전에 비해 민간의 차 생활은 위축되었다.
명나라는 산차에 대한 다서들이 계속 쓰여졌다. 허차서의 <다소>를 비롯해 <다록> <죽창잡록> 등 수많은 다서가 나왔다. 국가에서 차의 정책을 관장하기 위해 관리를 파견하고 거래를 감독하는 기구를 두었다.
일본은 막부시대를 지나오며 선적(禪的)으로 순수한 다풍이 대명이나 막부에 의해 정치권력과 결부되어 우치다(宇治茶)가 크게 번창하고 서민들에게도 차가 널리 자리 잡았다.
① 유성룡(1542~1607): 사신으로 중국에 다녀오고 영의정에 올라 임란을 치룬 명상(名相)이다. 차인으로 다시도 몇 편 전한다.
② 동래부에 부사를 두고 왜사(倭使)들을 접하게 하고, 그들을 맞아 다례를 행했다. 그 의식이 중국사신 맞이와는 달랐으나 격식은 복잡했다.
③ 현소(玄蘇)가 여산의 암자에 정(酊)이라 이름붙이고 후에 거기서 송사(送使)했다.
④ 중국 사신이 오면 상사(上使)와 부사(副使)의 방에 대기하던 인원 중 찻일을 맡아 통역하던 다방소통사(茶房小通詞)를 두었다.
⑤ 20여개 항목에 걸쳐 산차에 관한 기록한 책으로 명대의 대표적 다서다.
⑥ 정용빈: 명대 차학자로 <다록> 4권을 찬수했다.
⑦ <삼재회도>: 오기(五圻)가 쓴 책으로 내용 중 차에 관한 기록이 있다.
⑧ 작자 미상으로 왕경미(王敬美)의 찻일에 관한 것이 실려있다.
⑨ 하수방(夏樹芳)이 쓴 것으로 96칙(則)의 목록에 따라 선인들의 다사(茶事)를 기록했다.
⑩ 유정(喩政)이 찬집한 책으로 1권에 문류(文類), 2권에 시류(詩類)로 엮은 것이다.
⑪ <만보전서>는 명나라 장원이 <다록>을 실은 책으로 초의선사가 쓴 <다신전>은 이것을 옮긴 것이다.
⑫ 도정조실: 중근세 일본을 대표하는 호상(豪商)으로 대마도를 거점으로 외국과의 교육을 꾀한 차인 직전신장과 가까웠고 좋은 중국과 조선의 선재품에 다도구를 많이 취급하고 다회도 열었다.
신옥종담: 종실보다 조금 늦은 대마도 선두일족(船頭一族)으로, 수길의 다회에서 크게 환대받았다. 유명한 상기(箱崎)의 다회에서 수길을 도와 구주(九州)를 평안케 했으며 <종담일기>를 남겼다.
<한국>
@ <상례초요(喪禮抄要)>에 점다(點茶)가 나옴
1605 사헌부의 다시(茶時)
1607 유성룡의 죽음 ①
다시가 여러 차례 열림
왕에게 약차 처방
1609 일본과 국교 회복
1610 <동의보감>
동래부(東來府)에 외사 맞이 ②
1611 이정암(以酊菴) 송사 ③
1613 다시(茶時)
1618 중국 가는 사신들의 상행위 금지
@ 다방 소통사 ④
<중국>
1602 <다소(茶疎)>(허차서) ⑤
1604 <다록(茶錄)>(정용빈) ⑥
1607 <삼재회도(三才繪圖)> ⑦
@ <죽창잡록(竹窓雜錄)> ⑧
1609 <다록>(풍시가)
1610 하란인(荷蘭人)이 아모이에서 차를 팔다
@ <다동(茶董)> ⑨
1613 <다집(茶集)> ⑩
1615 <만보전서> ⑪
1518 흠차대신 러시아와 다엽판매 약정
<일본>
1603 강호막부(江戶幕府)
@ 도정종실(嶋井宗室)과 신옥종담(神屋宗湛)의 활동 ⑫
1613 우치채다사(宇治採茶使)를 보냄
1614 우치에서 산차를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