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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회장에 들어서기 무섭게 환한 미소를 지으며 커피를 들고 다가오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그들은 이씨가 올 가을 입주 할 아파트단지 인근의 교회에서 나온 사람들이었다. 손에 커피와 교회를 홍보하는 리플릿을 들고 다가오는 사람은 한 두 사람이 아니었다. 어림잡아 다섯 곳의 교회가 ‘전도 경쟁’을 하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이씨의 뇌리에 떠 오른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올 가을 한동안 극성스러운 개신교 신자들에게 시달릴 것이란 예감이었고 또 하나는 부처님의 ‘전도선언’이었다.
"자, 전도를 떠나라.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세상을 불쌍히 여기고, 인천의 이익과 행복과 안락을 위하여. 그리고 두 사람이 한 길을 가지 말라"
한국 불교계 포교의 현주소는 어디인가?
이 질문에 명쾌하게 답 할 사람은 없다. 종단마다 발표하는 소속신도의 수치가 신뢰성을 담보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해마다 신도 수의 증감을 체크하여 포교 성과를 발표하는 종단도 없기 때문이다.
각 종단의 공식적인 포교 예산은 얼마일까? 포교원을 별원으로 독립시킨 조계종의 경우 올 한해 일반회계에서 포교원 예산이 차지하는 비율은 지난해에 비해 6.8%가 감축된 12.2%. 태고종과 천태종 진각종도 10~12% 선이다.
또 이들 종단의 중앙 종무기관에서 포교관련 업무에 투입되는 인력은 전체의 10% 안팎으로 파악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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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종도 전법사를 선발하지만 종단차원의 활동 지원이나 체계적인 관리는 미약한 실정이다.
각 종단의 한 해 포교 예산과 인력 현황, 즉 ‘1할 안팎’이라는 수치가 한국불교의 포교 마인드를 비추는 거울이라면 이는 ‘슬픈 자화상’이 아닐 수 없다. 포교 없이는 불교의 미래도 없기 때문이다.
포교 현장을 뛰는 사람들은 “포교의 초석이라 할 ‘패러다임(이론의 틀)’과 ‘인프라(기반 구조)’가 다 부족하다”고 토로한다. 그러나 무엇이 어떻게 왜 부족한가를 구체적으로 진단하는 데는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구체적인 자료가 없기 때문”으로 귀결된다. 포교에 관한한 한국불교는 아직 과학적이지 못하다는 증거다. 이유는 있다. 그간 개인적인 원력에 의지 해 온 포교의 성과들을 통합하거나 현장의 시행착오, 성공 사례 등을 합리적으로 관리하여 포교 전략의 이론적인 틀을 구축하는데 무관심했던 것이다. 이런 현실은 바로 포교에 대한 연구부재로 이어진다. 포교관련 강의나 서적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타 종교에 비해 극히 드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악순환의 고리에는 전문 포교사에 대한 관리 소홀과 미래를 내다보는 거시적인 안목의 부재도 큰 요인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맞춤포교’ 시대는 열리고 있다. 직장인들의 신행활동 마당이 해를 거듭 할수록 넓어지고 있고 문화 영역에서도 재능 있는 스님과 불자들이 무대를 넓혀 가고 있다. 사이버 공간과 복지 현장, 농어촌 지역과 해외를 향한 포교 발길도 이어지고 있다.
유치원에서 대학에 이르기까지, 군부대와 교도소는 물론 외국인 노동자들이 있는 곳에서도 포교 원력을 세운 불자들이 분주히 뛰고 있다. 중생의 근기에 따라 법을 설했던 부처님의 자상함처럼 각계각층에서 포교의 열기는 식을 줄 모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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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오신날을 '경건한 의식의 날'로 삼는 사찰과 '즐거운 축제의 날'로 삼는 사찰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전자의 경우 해마다 등 켜는 신도가 줄어든다고 한탄하지만, 후자의 경우 다음해엔 더 좋은 프로그램으로 더 많은 주민들과 만나기 위해 노력한다.
이제 맞춤포교는 전형을 다듬는 단계도 넘어서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인프라다. 포교현장을 뛰는 인력은 물론 성공담과 실패담, 분야별 노하우 등을 총체적으로 관리할 때 포교전략과 비전이 생성될 수 있다.
‘맞춤 포교’가 시대적 선택이라면 포교현장의 타깃 혹은 테마별 인프라 구축은 불교의 미래다. 포교는 지금 이순간 보다 치밀한 전략에 의해 유기적으로 진행되어야 할 불교계 공동의 사명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