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괴산의 공림사(公林寺)는 내가 출가한 절이다. 전쟁의 상처로 거의 폐허가 된 것을 스님들의 피와 땀으로 다시 일으켜 세운 절이다.
절 뒤의 낙영산(落影山)은 정선(鄭敾)의 인왕제색도(仁旺霽色圖)를 연상케 하는 아름다운 산으로, 부드럽고 온화한 바위 선이 일
품이다.
내가 행자로 있던 시절 공림사에는 많은 스님들이 있었고 그중 두 분의 특이한 스님이 기억난다. 특이하다고 하기 보다는 부처님의 가르침과 자기의 신념에 따라 열심히 사는 수행자들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두분 중 한 스님이 ‘삼천배 스님’이다. 스님은 식사시간 외에는 거의 바깥출입을 하지 않았다. 주위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방에 들어앉아 주력 수행을 하고 있다고 한다.
스님이 ‘삼천배’란 별명을 얻게 된 계기는 공림사에 오기 전에 실제로 법주사에서 3000배 수행을 했기 때문이다. 삼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3000배를 했다고 한다. 나중에는 무릎에 굳은살이 박혀서 좌복 없이 맨 바닥에서 절을 했다.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주위에서 보던 학인들의 말을 빌리자면, 절한 자리가 파일 정도였다니 대단한 정진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생각했던 도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실망한 스님은 이곳 공림사로 들어와서 수행 방법을 바꾸었다.
다음은 이 글의 주인공인 진철 스님이다.
스님은 내가 출가하기 몇 년 전부터 공림사에서 수행정진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행자 생활을 거치고 스님이 되어서도 몇 년을 더 볼 수 있었다.
진철 스님은 오직 공부에만 매진했다. 스님 방에는 밤에도 불이 꺼지지 않았다. 하루는 같이 산 스님들이 얼마나 공부를 열심히 하는가 보려고 방문에 몰래 구멍을 뚫어놓고 엿보았다고 한다. 다른 스님들이 밤새도록 지켜봐도 스님은 누울 생각을 않고 오직 공부에만 열중하였다.
공부를 하다 게으름을 피우면 잠깐 졸기도 하기 마련인데 스님은 꿈쩍하지 않았다.
진철 스님은 말투도 어눌하고 키도 작아서 같이 살던 몇몇 스님들이 한때는 업신여기기도 했다. 진철 스님에게 반말조로 말하기도 하고 선방 주위의 쓰레기를 치우거나 물건을 나르는 자질구레한 일들을 맡기기도 했다.
그러나 스님의 얼굴은 늘 평온하고 빛이 났다.
어떤 화의 화살이 날아와도 스님은 그 화살을 꽃으로 만들어 날려 보냈다.
그렇게 여일한 수행모습을 보고 난 후부터 진철 스님은 오히려 주위 스님들로부터 존경을 받게 되었다.
스님은 일체 바깥출입을 금했다. 바깥을 자꾸 기웃거리다 보면 거기에 신경이 쓰여 공부가 안 된다고 굳게 마음을 먹은 것이다. 다른 스님들은 삼개월동안 선방에 머물다 해제하는 날 모두 걸망을 싸들고 나가도, 스님은 일체 산문밖 출입을 하지 않았다.
또한 전화도 받지 않았다. 내가 원주소임을 볼 때, 어떻게 알았는지 진철 스님의 속가로부터 전화가 왔다. 나는 그 내용을 전하러 선방으로 갔다. 그러나 스님은 전화 받기를 거절, 끝내 받지 않았다.
스님은 한때 3년 동안 묵언(묵言)을 하며 살았다고 했다. 그렇게 몇 년 동안 말을 하지 않고 살다보니 목이 퇴화해서 3년이 지나고 정작 말을 해야 할 때는 제 소리를 내지 못하고 쉰 소리가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진철 스님의 목소리가 쉰 소리로 굳어버렸다.
스님은 그 와중에도 오후불식(午後不食)을 하였다. 즉, 오후 식사를 하지 않고 하루 두 끼만 먹었다. 그러다 몸이 좋아지면 한 끼를 더 줄여 하루 한 끼만 먹기도 하였다.
스님은 재물(財物)에 대해 결벽증(?) 비슷한 것을 가지고 있었다.
해제가 되면 선원 스님들에게는 삼, 사십만 원 정도의 해제비가 주어진다. 그러면 스님은 받은 돈을 원주 소임을 보고 있던 나에게 봉투째 고스란히 가져왔다. 자기는 돈이 필요치 않으니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라는 것이다.
그때마다 나는 그 돈을 쌀로 바꿔서 근방에 사는 복지단체에 기증했다.
한번은 십 원짜리 동전을 몇 개 주워 손수건에 싸 가지고 왔다. 마당에 떨어져 있는 것을 주워왔으니 살림에 보태 쓰라는 것이다. 이렇게 스님은 돈을 가지고 있는 것뿐 아니라 돈을 손으로 만지는 것조차 극히 기피하였다.
현재 진철 스님은 공림사를 떠나고 없다. 어느 스님이 강원도에 있는 허름한 토굴을 기증해서 그곳으로 갔다. 스님은 아마 그 토굴에서 평생을 보낼지도 모른다.
몇 년 전 낙엽이 지는 늦은 가을날 공림사에 갔다. 절 앞 느티나무에서는 서리를 맞은 이파리들이 무수히 떨어지고 있었다. 진정으로 공부하는 수행자 진철 스님이 없는 공림사는 왠지 나에게 썰렁해 보였다.
철저하게 정법(正法)을 지키며 부처님처럼 살려고 하는 스님, 그 진철 스님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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