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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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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상황에서 ‘종교 자유’ 그런 것 해 봐야 소용 없다. 박광서 교수를 비롯해서 참으로 애를 쓰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는 절집의 큰스님들이 조직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절대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하시라. 혜안은 무엇인가? 명안종사가 무엇인가? 한 치 앞도 내다 볼 줄 모르는 사람이 수행을 했다고 떠든다면 우스운 노릇이다. 그런 사람들이 무슨 화두를 집어 준단 말인가? 혜안이 없으면서 선법문은 무슨 소용인가? 학교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독교의 횡포를 모르고서는 절대 혜안이 있느니 수행을 많이 했느니 하지 마시라. 이런 것은 한마디로 허공의 꽃이요 토끼의 뿔에 불과하다는 것을 깊이 새기시라. 지금 이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독교 학교의 선교 활동을 여실히 깨닫지 못하고는 절대 명안종사가 될 수 없다는 점을 기억들 하시라.
(2005-07-17 오전 1: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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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계의 큰스님들은 이 사실을 아는가 모르는가? 큰스님들이 알아야 작은 스님들이 알고 신도회장이 깨닫고, 불교 기업인이 분노할 것이며, 전국의 모든 불자들이 떨쳐 일어날 것이 아닌가? 큰스님들은 아직도 참선만 하면 되는 줄 아나? 여름 수련회 기껏해야 몇날 며칠씩 그저 앉아서 참선이나 하는 것 아닌가? 전국에서 몇 만 명이나 참가 하는가? 2만인가 3만인가! 기독교는 여름 수련회에 전국적으로 650만 이상이 참여한다는 사실을 아는가? 놀라 자빠지다가 기절을 할 일이다. 기독교는 여름철에 외국 선교를 떠나는 인원만 60만 명이다. 기독교 학교마다 예외 없이 농촌봉사 활동을 떠나는 학교가 1300군데이다. 이들이 한 학교에서 걷어대는 농촌봉사 성금이 자그만치 학교당 평균 150만원 가량이다. 이런 사실을 큰스님들여 아시는가? 알아야 무슨 계책을 내놓든가, 대책을 세울 것이 아닌가? 불교계의 원로들은 무슨 비젼을 갖고 있길래, 총무원장이든 교구본사의 주지스님이나 큰스님들은 어떤 계획을 갖고 있길래 이런 사실에 묵묵부답이란 말인가? 참으로 궁금하다. 겨우 찾아오는 몇몇 가족을 좁은 방에다가 모아 놓고 소참 법문이나 하고 앉아서 만족하는 건 아닌가?
(2005-07-17 오전 12:5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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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학교의 횡포를 제대로 알고 대처하려는 수행자들이 없다. 기독교 학교의 횡포를 막으려면 승려들이 나서야 한다. 그러나 이는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도저히 가능치 않다. 그런 거대한 운동에 대한 승려들의 안목은 거의 무지에 가깝다. 기독교의 횡포 속에 불교 학생들이 잃어 가고 있는 정체성을 무슨 수로 지켜낼 것이며, 그 속에서 우리의 새싹들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 암담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맹인에게 아이들을 내 맡긴 격이다. 만약 불교 학교가 많아서 매일 예불을 드리고 기독교처럼 한다면 목사들이 가만 있겠는가? 목을 내 놓고 전국적으로 난리가 났을 것이며 교육부에서도 당장에 해결을 하려고 난리가 났을 것이다. 그러나 불교의 승려들은 절집안의 식구들이 이토록 멸시를 당하고 기독교로 넘어가는데도 수수방관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천도재나 지내며 신도들 호주머니를 노리는 건 아닌가 싶다. 오죽 할만한 법문도 없고 참선도 별 볼 일 없으면 해인사까지 나서서 천도재로 재정을 불리려는가? 불교가 살려면 법문이 번창해야 하고 학생 교육이 맹렬하게 일어나야 하며,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승려가 해마다 5천 명씩은 배출 되어야 한다.
(2005-07-17 오전 12:5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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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불교 학생들이 기독교 학교에 들어간 뒤로 개종하고 있다. 전국 중고등학교의 7할 이상이 사립이다. 그중에 6할 이상은 기독교 학교들이다. 기독교 학교들의 목표는 이제 학생 선교가 아니다. 그들은 학부모들에 대한 선교 전략과 우수한 기법을 이미 확보해 놓았다. 그리고 열심히 실행하고 있다. 학생은 거의 9할 이상이 이미 기독교로 돌아 섰다. 오늘날 40대 이하의 국민들이 무슨 종교인가? 엄청난 차이로 기독교가 많다는 걸 아는가? 승려들이 알 턱이 없을 줄로 안다. 그들은 그런 문제를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 줄 안다. 알아 봐야 뾰족한 해결책도 없고 머리만 복잡하니까 그럴 것이다. 기독교 학교에서는 석가모니를 돌이라고 가르친다. 돌 ‘석’자를 따서 이름도 석가모니라고 지었다고 세뇌 시킨다. 기독교 학교에서 기독교 교육에 반감을 가진 학생이 많았다면 벌써 뒤집어 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곳에 다니는 불교 학생들에게는 그런 의식 무장이 전혀 되어 있지를 않다. 그런 의식을 가르쳐 줄 절도 없거니와, 간혹 불교학생회에 다니는 학생들이라도 누가 제대로 담당해서 교육시키는 승려가 없기 때문이다. 어린 학생 층에서 기독교 학생하고 불교 학생의 숫자가 얼마나 커다란 차이를 보이는지 아는가? 승려들은 아무런 실상도 모른다. 그들은 사물을 여실하게 파악하기 위하여 수행을 한다고 떠들지만 웃기는 이야기이다. 기독교 학교의 횡포를 제대로 알고 대처하려는 수행자들이 없다. 기독교 학교의 횡포를 막으려면 승려들이 나서야 한다. 그러나 이는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도저히 가능치 않다. 그런 거대한 운동에 대한 승려들의 안목은 거의 무지에 가깝다. 기독교의 횡포 속에 (2005-07-17 오전 12:5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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