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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경사에서 무엇을 보아야 할까
[불자 세상보기] 김징자 칼럼니스트


김징자 논설위원.
자녀출산은 하늘이 그 부모들에게 천국과 지옥을 동시에 선물한 것이라고도 한다. 여기서 천국이라면 생명 탄생에 대한 표현할 수 없는 신비한 느낌, 그들 스스로 그 신비한 생명탄생에 기여했다는 벅찬 감격,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사랑스럽기 만한 천진무구 그 자체의 아기 얼굴 등 일 것이고, 지옥이라면 탄생 그 순간부터 온 밤, 잠을 설치며 온 신경을 열어두고 전력을 기울이며 양육의 험로를 걸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세상이 아무리 변했다 해도 아직 대부분의 부모들은 ‘지옥’ 같은 그 양육의 험로를 ‘천국’적 감격으로 덮어가며 ‘지옥’을 행복의 수순으로 바꾸어 간다. 이른바 모성애나 부성애와 같은 본능적 사랑이 지옥조차 천국으로 바꿀 힘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혈육이 아닌 타인이라면 어떨까?

부모에게 버림받은 고아들을 입양할 때까지 맡아 키워주는 위탁 모 들에게서도 우리는 모성애 비슷한 것을 발견한다. ‘낳은 정’ 못지않은 ‘키운 정’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불과 몇 달을 돌보았어도 자신의 품을 떠나는 아기를 보며 위탁 모들은 눈물을 쏟는다.

자비라든가 사랑 측은지심 등의 종교적 심성도 세상을 지옥에서 천국으로 바꿀 힘을 가지고 있다. 예부터 동 서양 여러 종교단체에서 고아나 노약자 사회적 약자 등을 보호하고 돌보아오지 않았던가.

한국전쟁으로 한 때 최대의 고아 발생국이 되었던 한국에서도 당시 종교단체들의 눈부신 활약을 보아 온 터다.
하지만 자비나 사랑 등 종교적 심성을 우리는 눈에 보이게 계량해 낼 수 없다. 뿐만 아니라 거룩한 ‘초발심’이 한번 일었다 해서 그것에 지속성이 있는 것도 아니다. 현실적 어려움은 여기서 출발한다.

진실을 파헤치는 역을 맡은 서양문학은 중세이후 서양 복지 시설과 그 운영의 참상, 그 거대한 위선을 끊임없이 고발해 왔다. 한국 현대 문학도 한국 고아원의 참상과 운영자들의 위선을 파헤치는데 그동안 게으르지 않았다. 그러나 복지시설의 올바른 경영은 문학이 아닌 행정의 몫이다.

얼마 전 한 방송사가 미인가 복지시설 수경사의 아동학대와 아동매매 등을 폭로한 프로는 자칫 선한 행위가 얼마나 쉽게 혐오할만한 위선으로 돌아 설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한 가지 사례라 할 수 있다.

굳게 닫힌 수경사의 정문. 현대불교 자료사진.
사찰에 첫 업둥이를 받아 들였을 때의 수경사 비구 비구니 두 스님의 초심은 자비였을 것이라 믿고 싶다. 그들을 변질시킨 것은 당국에 인가 받을 수 없을 만큼 열악한 환경 등 모든 조건들과 함께 방송 신문 등의 검증 없는 선행 과장보도도 한몫 했을 것이다. 한편 수경사는 그 과장보도들 때문에 지금 더 심한 사회적 몰매를 맞고 있다.

수경사 등 복지시설뿐 아니라 어린이 집 등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아동 학대는 심각한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성의식에 눈뜨기 전부터 출산의 경험을 갖게 된다는 오늘의 신세대 성의식은 영 유아 유기 율을 높여가고 있으며 수경사 식 거래를 가능하게 만들어 가고 있다.

당국에서도 복지시설의 인가 기준을 높이는 등 제도적 정비를 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이들에 대한 적극적 지도나 감독, 지원을 하는데 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이번 일이 행정당국의 안이함에 대한 일깨움이 되어야 할 것이며, 산하에 복지시설을 두고 있는 여러 종교단체에서도 새로운 배려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김징자 칼럼니스트(본지 논설위원) |
2005-07-02 오후 12: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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