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 시대인 서기 821년(헌덕왕 13). 당나라 유학을 마치고 서라벌로 돌아온 도의(道義·생몰연대 미상) 국사는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을 외친다. “문자에 입각하지 않으며, 경전의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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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조(曹溪宗祖) 도의 국사가 주석했던 양양 진전사(주지 대전)가 복원됐다. 6월 26일 진전사 대웅전 낙성식 및 점안식 앞두고 22일 찾은 진전사는 조금은 들뜬 표정을 하고 있었다. 여전히 선기(禪機)가 배어나고 있었지만 진전사 들머리 6.5km부터 늘어선 오색연등이 환하게 미소 지으며 조계종찰(曹溪宗刹) 중창 복원을 축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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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전사 중창 복원 불사는 동국대 석좌교수를 지낸 정영호 박사(71·단국대 석주선박물관장)가 3,150평을 당시 신흥사 회주 오현 스님에게 기증하면서 본격화됐다. 1965년부터 도의 국사와 진전사지 연구에 몰두한 그는, 30여 년 전 매입했던 진전사지를 오현 스님의 복원 의지를 확인하고는 아무런 조건 없이 기꺼이 시주했다.
이후 신흥사가 6,611평을 매입하고 양양군이 4,969평을 추가로 매입했다. 강원문화재연구소가 2001년 9월부터 2002년 2월까지 발굴조사와 학술조사를 했으며, 2004년 4월 착공식이 봉행됐다. 1년여 동안 총 18억5200만원의 공사비가 투입돼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정 박사는 “도의 국사와 진전사지를 연구한지 40여년 만에 진전사가 중창 복원돼 눈물이 날 정도”라며 감격에 겨워했다.
진전사 인근에 위치한 국보 제122호 진전사지 삼층석탑과 도의국사 부도로 추정되는 보물 제439호 부도는 그 옛날 명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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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각원당형 부도 양식의 시초인 보물 제439호 부도는 일반적인 부도와 달리 팔각형의 탑신(塔身)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 아래부분이 석탑에서와 같은 2단의 4각 기단(基壇)을 하고 있어 보는 이의 호기심을 자아낸다.
도의 국사가 왕즉불이 아닌 자심즉불(自心卽佛)을 외치며 인간 본연의 평등과 존엄성의 가치를 일깨우며 변혁을 꿈꿨던 곳. 남종의 조사선이 최초로 전해진 곳 진전사. 진전사 중창 복원으로 한국 선(禪)불교가 새로운 중흥을 꿈꾸고 있다.
진전사와 도의 국사
진전사지는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가지산문(迦智山門) 개산조 도의 국사가 주석했을 뿐 아니라 염거(廉居) 화상이나 보조(普照) 국사 일연 선사 같은 고승들이 진전사에서 사자상승(師資相承)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큰 절터다.
중국의 달마대사가 인도로부터 선종을 들여와 1조가 됐듯, 도의 국사 또한 육조혜능(六祖慧能)의 법을 이은 서당지장(西堂智藏) 선사에게 법을 받아 남종의 조사선을 우리나라에 최초로 전했다. 이후 도의 국사는 염거 스님에게, 염거스님은 보조 체징스님에게 법을 전하자 장흥 보림사에서 가지산문이 열렸다.
조계종 종헌 제1조에 적시된 것처럼 ‘본종은 신라 도의 국사가 창수한 가지산문에서 기원’하기 때문에, 우리나라 선불교의 1초조인 도의 국사가 주석했던 진전사가 조계종찰로서 위상을 갖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