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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화호 항공 환경감시 하는 양창호 비행단장
【 아름다운 삶사람】 양창호 시화호 항공환경감시단장
비행기가 날아오른다. 무게 255kg의 초경량 비행기가 가볍게 육지에서 바퀴를 떼고 하늘로 향한다. 발 아래로 펼쳐지는 1만2000평의 호수.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죽음의 호수’ 시화호다.

시화호항공환경감시단 회원들은 매일 하루 두 차례씩 시화호의 환경을 감시하고 있다. 왼쪽부터 안재성 교관ㆍ 김수근 교관ㆍ 양창호 단장ㆍ 이성규 교관. 사진=박재완 기자
20여 년간 지속된 난개발과 수질오염으로 ‘환경오염의 대명사’ ‘간척사업 실패의 표본’으로 일컬어지는 시화호. 국토개발에만 치중한 채 환경의 중요성을 간과했던 정부는 지난 2001년, 결국 여의도의 20배에 이르는 담수호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포기하고 하루 두 차례씩 수문을 열어 바닷물을 끌어들였다. 시화호의 목숨부터 살리자는 것이다. 덕분에 지난해에는 쇠돌고래과인 상괭이가 발견될 정도로 빠른 회복을 보이고 있다. 사람들은 이 같은 시화호의 변화를 자연의 놀라운 자정능력 때문이라고만 생각하지만, 그 곁에 시화호항공환경감시단 양창호 단장(40, 안산항공 대표)이 있다는 사실은 거의 알지 못한다.

“아직도 시화호에 몰래 폐수를 버리거나 금지된 어업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는 조금씩 살아나고 있는 시화호를 다시 죽음으로 몰아가는 행위입니다.”

양 단장이 항공 감시활동을 시작한 것은 시화호의 물막이 공사가 한창이던 지난 1990년부터다. 호주에서 초경량 비행기를 처음 만나 매료된 그는 안산 시화호 근처에 직접 비행장을 만들었다. 하루에도 수차례씩 시화호 상공을 비행하던 양 단장은 우연히 공장폐수를 몰래 버리는 현장을 목격했다.

“당시에는 시화호의 수질오염문제가 언론에 드러나기 전이었어요. 하지만 맑은 시화호에 독성이 함유된 오폐수를 버리는 것을 두고 볼 수만은 없었습니다. 그 후 매일 항공 감시활동을 벌이며 불법 행위를 신고하게 됐죠.”

양 단장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시화호의 수질은 날로 악화됐다. 시화호 인근에 형성된 공단과 도시에서 폐수가 빗물관을 타고 흘러 시화호를 오염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돈에 눈이 먼 공장들은 밤이나 비 오는 날이면 폐수를 시화호에 그대로 토해냈다. 개인의 힘만으로는 역부족임을 절감한 양 단장은 99년 정식으로 항공환경감시단을 발족했다.

시화호 항공사진을 보며 감시활동을 설명하는 항공환경감시단 양창호 단장 사진=박재완 기자
양 단장을 비롯한 단원들은 매일 오전 9시 사무실에 도착한다. 전날 직접 촬영해 둔 항공사진을 정리하고, 불법 행위를 적발했을 때 찍은 증거사진을 CD에 담아 두기 위해서다. 검찰이나 경찰에 고발할 때 꼭 필요한 자료들이다.

오전 11시면 격납고 문이 열린다. 한 대에 무려 1억원을 호가하는 CH701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성규(40) 김수근 (42) 안재성(40) 교관이 차례로 비행기의 상태를 점검한 후 본격적인 감시활동을 시작한다. 항공감시가 시작됨과 동시에 다른 단원들은 보트를 타고 시화호를 돌아본다. 고기잡이가 금지된 시화호 안에서 불법어로를 벌이는 어선은 없는지, 밀렵행위를 하는 사람들은 없는지 감시하기 위해서다. 뙤약볕 아래 두 시간에 걸쳐 감시활동을 마치고 나면 직접 싸온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한다.

식사 후 양 단장이 경찰서나 법원에 적발된 사건을 접수하러가는 사이에도 전화벨은 쉬지 않고 울린다. 익명의 제보자들이다. 불법행위를 목격했다 하더라도 개인이 신고를 할 경우 민원이 잘 처리되는지 확인할 수도 없을뿐더러, 신분이 노출되기 때문에 항공감시단에 제보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폐수를 몰래 흘려보내는 공장의 내부 고발자들은 폐수가 방류되는 내부 구조도를 직접 그려 보내기도 한다.

오후 3시, 한 차례 더 정기 감시활동을 벌이고 나면 단원들은 그야말로 파김치가 되기 일쑤다. 초경량 비행기를 타고 수면에서 고작 200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상공을 저공비행하며 호숫가를 둘러보는 일은 시종 고도의 긴장상태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비가 오거나 바람이 세게 부는 날이면 불법행위가 더 잦아 웬만해서는 감시활동을 쉴 수도 없다.
그동안 양 단장과 단원들이 적발한 불법행위는 어림잡아 600~700건. 사법권을 가지고 있는 경찰이나 공무원이 아닌 민간 감시단에 의해 고소당한 사람들이 법 절차에 순순히 따를 리는 만무할 터. 협박 전화를 거는 사람들은 그나마 얌전(?)한 편이다. 감시 배에다 구멍을 뚫어 시화호에 수장시키기도 하고 살해 위협을 가하기도 한다.

14년간에 걸친 꾸준한 활동으로 현재 감시단 회원은 120여명으로 늘었다. 규모가 커짐에 따라 지출해야할 경비도 만만치 않지만, 양 단장은 비행기와 보트 등은 물론 항공장비와 카메라 등도 양 단장이 자비를 들여 구입하고 있다. 시나 지방자치단체에서 활동 지원비를 받게 되면 혹여 감시 고발 활동에 객관성을 잃게 되지 않을까 우려해서다.

매일 오전 11시와 오후 3시면 어김 없이 초경량 비행기로 감시활동을 펼친다. 김수근 교관(왼쪽)과 양창호 단장. 사진=박재완 기자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서서히 잊혀져가고 있지만, 결코 시화호 문제는 완전히 해결된 것이 아닙니다. 이 같은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근본 원인을 찾아내 해결해야 할 것입니다.”
매일 같이 긴장 속에 살아야 하는 양 단장이 마음의 여유를 찾는 곳은 사찰이다. 주말이면 근처 수리사를 찾아 법회 참가자들을 위해 자동차 운전 봉사를 하는 양 단장은 “고즈넉한 산사에 가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여유를 찾게 된다”고 말한다.

하루하루 봉사활동에 매진하는 양 단장이지만, 최근 들어 “감시활동을 시작한 것이 후회된다”고 말하는 일이 잦아졌다. 개인의 힘으로 관공서나 정부 조직을 상대하기가 너무나 벅차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감시활동을 그만둘 수 없는 것은 한 번 오염된 자연은 치유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시화호를 통해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자연을 아끼고 가꾸지 않는다면 우리 아이들이 어떤 환경에서 자라야 할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저 혼자 힘으로 모든 환경오염을 막을 순 없겠지만, 사명감을 가지고 시화호를 지키는 일에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 시화호란?


1984년 정부는 반월만에 12.7㎞의 시화호 방조제를 건설해 여의도의 20배에 이르는 담수호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공사가 시작되자 예상치 못했던 일이 벌어진다. 시화호 인근에 형성된 공단과 도시에서 폐수가 빗물관을 타고 흘러 시화호를 오염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자연의 자정능력을 넘어서는 이 같은 오염은 결국 시화호를 ‘죽음의 호수’로 만들어 놓았다. 1996년 언론에 시화호의 상황이 보도된 후에도 수자원관리공사는 뚜렷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채 갈팡질팡하다, 지난 2001년 담수화를 포기하고 바닷물로 시화호를 채우게 된다. 이 과정에서 관계 공무원 18명이 징계됐고, 하수배출업체 18개가 고발조취 됐다. 이제 남은 일은 바닷물로 채워진 시화호를 어떻게 활용한 것인가다. 최근 조수간만차를 이용한 조력발전소 건립이 추진되고 있고, 해양스포츠단지를 만들자는 의견도 제기됐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은 시화호의 갯벌을 살리자고 입을 모은다. ‘갯벌 국립공원 추진운동본부’는 시화호를 포함한 서남해안 갯벌 전체를 국립공원으로 지정하는 운동을 펼치고 있다.
여수령 기자 | snoopy@buddhapia.com
2005-06-23 오전 10: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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