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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쳇말로 요즘 뜨는 광고 카피다.
흔히 광고를 ‘산업사회의 꽃’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산업사회의 기점을 근대라 한다면 그 시절 광고는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하나의 역사책이 될 수 있다.
수백개의 신문 광고를 통해 우리나라의 근대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해 낸 <꼿가치 피어 매혹케 하라>는 그런 점에서 하나의 역사책이라 할 수 있다.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때 신문들은 ‘캬라멜도 싸우고 있다.’는 광고를 내보낸다. 그러면서 후방을 강화하기 위해 영양이 풍부한 과자를 섭취하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일제의 병력 확보를 위한 출산 장려정책을 광고에 이용하기도 한다. ‘부인네 일생의 정말 행복은 어떠한 것이라고 생각들 하십니까?’라는 글은 아들 낳는 효험이 있는 ‘부인병 약’의 광고 카피다. 당시나 지금이나 한 줄의 광고카피는 그 시대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명쾌하게 시대의 흐름을 읽고 있다.
50여년전 광고라고 무시하면 큰 코 다친다. 요즈음 것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 ‘명구’가 많다. 과자를 ‘포케트에 너흘 수 있는 호화로운 식탁’으로, 삭구(콘돔)를 ‘가정 화합의 벗’으로 묘사한 것을 듣는 순간 기발함에 무릎이 탁 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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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즐겨 먹는 커피를 그때 당시는 맛이 씁쓰름한 데다 색깔도 검어 ‘양탕국’으로 불렀다. 먹고 사는 것이 절실했던 시대, 포도주조차도 한가로운 기호품으로 그칠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칼슘 철 등 귀중한 영양계를 가지고 있어 식욕부진 허약 등 인(人)에게는 참으로 절호한 음료’로 선전되었다. 세발제(洗髮劑) 광고는 '일주 일차(一週 一次) 머리감기를 잊지 마시고…'라고 강조한다. 구두 광고는 ‘부럽도다 시원한 청풍 부는 곳에 산뜻한 양화(洋靴) 신고 활발히 걸어가는 저 청년의 보조’를 예찬하고 있다.
영화 광고와 라디오 수신기 광고도 눈에 띈다. ‘예술 지상주의의 작가 채플린 씨가 실로 수년간 고심 결정해 짜낸 영화를 감상할 수도 있고, 우리의 청각신경을 만족케 하는 진육성(眞肉聲)을 발휘하는 라디오 수신기를 벗삼아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또한 연예인 누드 열풍이 한창인 오늘날 신문에도 보기 어려운 미인 사진 책 광고도 일제 강점기 신문에 실렸었다. ‘절세의 미인이 몸에 일사(一紗)도 부(附)치 아니한 나체 사진이외다. 밤의 쾌락을 맛볼라는 남녀에게 권합니다.’는 오늘날 기준으로도 위험 수위를 넘어서는 과감한 광고라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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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적군의 응징은 폭탄으로 하지만은 설사 복통의 폭격은 헤루푸로 하자는 반(半)격문성 약 광고를 마지막으로 근대 신문에도 한글 광고는 자취를 감추게 된다.
이렇듯 ‘칼의 노래’를 쓴 소설가 김훈이 보증하는 지은이의 재치와 감각은 신문광고 속에 숨어 있는 시대적 의미와 징후들을 날카롭게 포착해 이를 맛깔스러운 글로 옮겨 놓았다.
깔끔하게 보정, 정리되어 수록된 수백 컷의 영인본과 사진들은 본문의 이해를 돕는 동시에 근대 신문광고의 원문을 직접 읽어보는 쏠쏠한 재미도 느낄 수 있게 한다. 길고 지루한 원론적, 연대기적 설명 대신 당시의 신문광고를 통해 이해하는 역사 이야기라는 점에서도 이 책은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꼿가치 피어 매혹케 하라>
김태수 지음
황소자리 펴냄/1만 7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