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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장애인과 하나 되기’를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청소년들이 있다. 대한불교청소년교화연합회가 주최하는 ‘2005 자원봉사한마당’에 참가해 하루 동안 장애 청소년과 함께 박물관 견학탐방을 한 청소년 불자들은 “내 자신의 편견이 가장 큰 장애임을 깨달았다”고 입을 모았다.
“은재야, 오늘 하루 동안 누나랑 투호놀이도 하고 박물관 견학도 하면서 재미있게 놀자.”
햇살이 밝은 아침, 국립민속박물관 앞마당에서 고3 주연이(19·혜성여고)는 하루 동안 짝이 된 은재(10·주몽재활원 초록반)에게 말을 걸었다.
“응! 근데 누나, 투호놀이가 뭐야?”
“몇 발자국 떨어진 항아리에 긴 물건을 쑹~하고 던져 넣는 거야.”
“은재가 날아가는 거야?”
깜짝 놀란 얼굴로 은재가 묻는다. 누나가 자기를 던져서 항아리에 넣는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웃음이 나오는 걸 참으며 주연이가 다시 “아니, 나무화살을 던져 넣는 거야”라고 설명하자 은재는 조금 풀이 죽은 목소리로 작게 속삭인다.
“나 그런 거 못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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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이 얼굴에 ‘아차!’하는 표정이 스친다. 어제 두 시간동안이나 장애인 자원봉사 교육도 받았는데, 구김살 없는 해맑은 얼굴의 은재를 보고 그만 또래의 다른 아이들과 똑같다고 생각해버렸다. 1급 지체장애인 은재는 선천적인 기형 때문에 팔이 자라지 않았다. 여린 어깨뼈 양쪽에는 고사리 같은 작은 손만 튀어나와 있다. 주연이는 그 손을 꼭 잡고 오늘 하루 은재의 손이 돼주겠다고 다짐한다.
6월 12일 열린 대한불교청소년교화연합회(회장 현성스님, 이하 청교련) ‘2005 청소년 자원봉사 한마당’의 첫 행사에는 장애 청소년 30여명과 서울 지역 12개 중ㆍ고교에서 자원한 50여명이 함께 했다. 얼굴도 본 적 없고, 평소 마주칠 일도 없었던 장애ㆍ비장애 청소년들이지만 같은 또래라는 이유만으로도 마음은 벌써 하나가 됐다.
조달현 사무총장이 말하는 “이 기회를 통해 장애ㆍ비장애 청소년들이 함께 어울려 친구가 되어 ‘더불어 사는 의미’를 깨닫게 되길 바란다”는 만남의 순간부터 빛을 발한 셈이다.
청소년들은 10인 1조가 되어 박물관 탐방, 점심 식사, 만들기와 놀이 한마당 등을 함께 하며 점차 서로를 이해하고 마음의 벽을 허물어 갔다. 언제나 엄마가 차려주는 밥만 먹었던 비장애 청소년들이지만 오늘은 다른 사람의 손이 되어 도시락을 챙기고, 다른 사람의 발이 되어 휠체어를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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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아, 경사면에서는 휠체어를 뒤로 돌려서 내려가야지!”
담당 교사의 충고에 경사면을 내려가던 정현이(18·동대부고)가 재빨리 서정근씨(24·주몽재활원 풍경반)를 태운 휠체어의 방향을 바꿨다. 형에게 기념품점 구경시키겠다는 생각에 ‘경사면에서 휠체어를 앞세우면 장애인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은 것이다. 단단히 교육받았건만, 난생처음 휠체어를 작동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정현이는 “아무 불편 없이 돌아다니던 평소 습관이 몸에 배어서 무심코 실수를 하게 된다”고 멋쩍게 웃더니 “그 동안 내가 얼마나 편하게 살아왔는지, ‘나 중심적’인 태도를 벗고 남을 배려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새삼 깨닫게 됐다”고 덧붙였다.
“학교 게시판에 붙은 자원봉사자 모집 공고를 보고 참가하게 됐다”는 영식이(18·면목고)는 희성이(19·주몽재활원 행복반)와 함께 박물관을 돌아봤다.
“‘우리가 봉사한다’고 생각하며 나왔는데 내 생각이 짧았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비록 육체는 어렵지만 공부도 많이 하고, 우리들보다 더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형에게 많은 것을 배웠어요.”
영식이와 같은 학교를 다니는 재홍이(18·면목고)도 “형이 우리보다 국사도 더 많이 알아서 박물관에서는 우리에게 설명해줬다”고 거들었다. 희성이가 천천히 “우리는…일반 학생들과 다르지 않아요”라고 힘겹게 말을 맺자 주변의 친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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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스태프를 맡은 지수연씨는 “비장애 청소년들이 처음에는 낯설어하지만 행사를 기회로 봉사활동에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마음을 갖게 돼, 다시 참가를 희망하는 경우가 많다”며 “오늘 참가자 중에도 작년 자원봉사한마당을 참가하고서 또다시 하고 싶어서 지원한 아이들도 꽤 된다”고 뿌듯해 했다.
고교 2학년에 재학 중인 기성이(18·동대부고)가 바로 그런 경우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청교련에서 주최한 자원봉사한마당에 참가한 기성이는 “작년에는 꼬마 아가씨랑 짝이 되어 롯데월드를 함께 구경했는데, 올해는 그 친구가 나오지 않았네요”라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 친구를 만나기 전에는 장애인에게 다가가기 쉽지 않았는데, 함께 친구가 되어 어울리고 서로 알아가게 되면서 장애는 병이 아니라 단지 나보다 조금 더 몸이 불편한 사람임을 알게 됐다”고 기성이는 말했다.
헤어질 시간이 다가올수록 참가자들의 얼굴에는 아쉬운 빛이 더욱 짙게 떠올랐다. 은재와 듬뿍 정이 든 주연이는 은재가 열심히 그린 부채를 들고 담담하게 말했다. “‘자주 만나고 싶지만 저도 이제 고3이라서 약속하기 어려운데다가 아직 은재가 어려서 그런 말을 섣불리 는 못하겠어요. 하지만 오늘 오기를 정말 잘했어요. 집에 있었으면 어차피 다른 날과 비슷하게 보냈겠죠. 은재와 만나게 돼서 정말 다행이에요.” 누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은재가 누나에게 ‘나 잘 뛰지?’라고 묻는 것처럼 신이 나서 뛰어가자 주연이는 짐짓 천천히 따라가며 외쳤다.
“은재야, 너무 빨리 뛰어서 누나가 못 쫓아가겠어!”
■ 청교련 ‘2005 자원봉사한마당’ 일정표
-9월 11일 장애·비장애청소년이 함께 떠나는 ‘오이도 갯벌생태체험’
-10월 22일 혜명 양로원 할머니·할아버지 ‘손녀, 손자 되는 날’
-11월 13일 골수기증희망신청자를 돕는 ‘나눔의 기쁨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