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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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성 스님의 법오 스님이야기


법오(法悟) 스님은 친화력이 좋다. 만나는 사람마다 금방 친구가 된다. 선원의 공양주 보살들은 선승들처럼 약간 콧대가 높고 무뚝뚝하다. 그래서 스님이 잘 살지 못하고 맘에 들지 않으면 스님들하고도 싸우는 공양주도 있다.

그러던 보살도 법오 스님을 만나 며칠만 지나면 “우리 스님! 우리 스님!” 하며 따른다.

스님은 매사를 좋고 긍정적으로 보려는 경향이 있다. 선원 분위기가 어둡거나 침침한 것은 더욱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당시 내가 하안거를 지낸 선방이 그랬다. 출세간 속의 세간이라고 해야 할까. 선원에는 ‘용’도 모이고 ‘뱀’도 모이고 ‘뱀 꼬리’도 모인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이다보니 가끔씩 분란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러면 입승(立繩)이 나서서 대중들의 소란을 수습하고 정리한다. 그러나 중립을 지켜야 할 입승까지 이 세파에 휩쓸렸다면 어떻게 할까.

선원에 법랍이 많은 선덕(禪德)이나 한주(閒主)스님들이 많이 계시면 위에서 꽉 눌러서 이런 분란도 잘 수습될 수가 있다.
그러나 그것도 아니라면 안거가 깨질 수가 있다. 다툼으로 인해 안거를 다 마치지 못하고 걸망을 싸서 떠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서로가 서로를 알게 되자 인간의 상(相)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선원은 술렁거렸고, 그런 분위기는 반 철이 되어 더 심해졌다.

그러자 법오 스님은 그런 분위기가 맘에 들지 않는다며 공부나 하겠다고 입을 굳게 닫고 큰방으로 들어갔다. 스님들이 끼리끼리 모여 파벌을 이루는 동안에도 법오 스님은 홀로 큰방에 앉아서 공부를 했다. 대중들은 가끔씩 큰방에서 혼자 정진하는 스님을 보곤 했다.

그러다가 힘의 양 축이었던 한 스님이 뒷방 공사를 자제하고 법오 스님과 같이 가행정진에 들어갔다. 파벌을 짓는 것이 부처님 법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고, 법오 스님을 보면서 이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두 스님은 남들이 불을 끄고 잘 때도 어둠 속에서 두 시간씩 더 공부했다. 대중들은 모르는 체 했지만 다 보고 있었다. 차츰 선원에는 쉬는 시간에도 잡담하는 사람이 없어졌다. 하나 둘 스님들이 가행정진 수행에 동참했다. 나도 끄트머리에 동참했다. 그러자 선원은 정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잠잠해져 버렸다.

해제할 무렵 스님들은 서로서로 이해하고 참회하는 마음으로 안거를 마무리했다. 중간에 그 상판스님이 마음을 내기는 했지만 시작을 한 스님은 법오 스님이었다.

스님은 또한 주위 사람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끝까지 격려해주고 힘을 주는 스님이다. 타고난 성격이 좋은 것도 있지만 스님은 만사에 긍정적이다.

어느 설날, 원주스님이 급한 일이 있어 차량 운행을 못하게 되자 나에게 운전을 부탁했다. 내가 차 운전을 하고 눈이 쌓인 암자를 내려와 인근 마을에서 물건을 싣고 다시 올라가게 되었다.
당시 내가 정진하던 그 암자는 눈이 많이 오는 곳으로 길이 험했다. 차에는 법오 스님을 위시해서 네 명의 스님이 탔다.

평지에는 눈이 녹아 바퀴에 장착했던 체인을 벗기고 다녔는데 그 상태 그대로 절에 오르게 되었다. 그런데 체인을 벗긴 것이 실수였다.

몇 번의 커브를 돌고 낭떠러지 길에서 차가 미끄러지기 시작하더니 뒤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나는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정신을 차리고 브레이크 페달을 힘껏 밟았다. 다행히 눈이 녹은 부분에서 브레이크가 들면서 차는 아슬아슬하게 낭떠러지에 걸렸다. 한 바퀴가 공중에 떴고, 차는 곧 기울어 구를 것 같았다.

레커가 차를 끌어낼 때도 나는 운전대를 잡고 있었는데 바로 전에 사고를 당할 뻔 했으므로 손과 다리가 심하게 후들거렸다. 그때 법오 스님은 나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할 수 있다면서 암자까지 차를 몰고 올라가라고 하였다.

사실 사고 직후라 마음도 떨리고 손도 떨렸다. 다른 사람 같으면 자기가 운전하겠다고 운전대를 빼앗았을 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떨리는 손임에도 불구하고 눈이 쌓인 그 험한 산길을 무사히 올라갈 수 있었다.

만약 법오 스님이 없었다면 다른 스님이 대신 운전해서 올라왔을 것이고, 이후로 나는 실패로 인한 패배감과 운전 공포 때문에 한동안 힘들었을 지도 모른다.

수행자라면 무릇 마음을 비우는 참선을 하고 나서 포교를 해도 늦지 않다고 본다. 마음을 가을 하늘처럼 비울대로 비워본 사람만이, 부처님 진리의 가르침도 제대로 받아들일 수가 있는 것이다.

법오 스님은 이번 여름 안거에도 여전히 선방에 들어갔다. 스님의 수행이 무르익어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타파하는 한 경계 얻기를 바란다.
2005-06-13 오후 5: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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