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국 대위님. 18년 전 태백시 어평분교에 다녔던 3학년 1반 권대영입니다. 김대위님이 우리학교에 도시락 배달할 때 반찬 맛없다고 투정부리며 김대위님에게 매일 빵하고 우유 사달라고 졸랐던 그 대영이 기억하시죠? 그런 철부지 저에게 늘 김대위님은 다음번엔 꼭 소시지 반찬 싸오겠다며 알사탕 하나를 제 손에 쥐어 주셨는데….” 강원도 탄광촌에서 어렵게 자란 권대영씨(28)가 보내 온 감사의 편지. “김거사 보시게나. 매일 점심때 마다 이렇게 도시락을 배달해 주시니 이 늙은이는 그 공덕으로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오. 이 은혜 어떻게 다 갚아야 할지….” 비뚤빼뚤 알아보기 힘들게 쓴 글씨지만 원주시 행구동에 사는 이칠룡(78) 할아버지가 보내 온 정성이 가득 담긴 사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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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매주 월요일~수요일마다 강원도 원주시 행구동 일대에 사는 독거노인 및 불우이웃 8명을 찾아가 무료 점심 도시락 배달 봉사를 하고 있다.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는 고령의 독거노인들과 다쓰러져 가는 축사에서 병든 몸을 의탁하며 사는 불우이웃들에게 점심 도시락을 배달하느라 정작 자신은 끼니를 건너 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점심 도시락 너무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는 감사의 말 한마디에 언제나 싱글벙글 웃으며 삶의 보람을 찾는다는 김씨.
김씨는 1988년 강원도 태백시 소도동에서 예비군 동대장을 시작하면서부터 무료 도시락배달을 시작했다. “부모님이 탄광에서 일하는 어평분교 11명의 학생들은 점심을 굶을 때가 거의 태반이었죠. 저 또한 가난했던 유년시절을 경험해 봤기에 배고픈 설움을 잘 알고 있죠. 아이들이 좋아하는 소시지 반찬은 못 싸주더라도 김치에 콩나물 무침을 찬합에 담아 도시락 배달을 한 것이 지금까지 오게 됐네요.”
그로부터 9년 동안 김씨는 어평분교에 도시락 배달은 물론 소풍과 운동회 때면 자비를 털어 가면서 공책, 연필 등을 학생들에게 지급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당시 김씨는 한 달에 한번 부대의 군의관과 이발병에게 도움을 요청해 벽지 학생들의 건강검진은 물론 이발까지도 책임지는 그야말로 ‘사랑의 예비군 동대장’으로 칭찬이 자자했다.
김씨의 봉사활동은 1996년 고향인 강원도 원주시 행구동 예비군 동대장으로 보임하면서부터 더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군장병들의 인성교육과 부모에 대한 효심을 길러주기 위해 이등병 4~5명과 함께 매주 토요일이면 복지관을 찾아 지체장애인들에게 목욕봉사 및 도시락을 배달했다. 처음 3년 동안은 행구동 일대의 복지관과 무의탁 노인 7명에게 사재를 털어가며 반찬을 만들어 배달했다. 하지만 5년 전 심혈관 질환으로 대수술을 받아 목돈이 한꺼번에 병원비로 들어가는 바람에 지금은 복지관에서 만들어 온 도시락 8개를 인근 독거노인들에게 성치 않은 몸으로 배달하고 있다. 이런 김씨의 선행이 군수뇌부까지 알려지게 되자 대통령이 직접 육필로 쓴 치하의 편지, 육군참모총장 표창, 36사단장 표창 등을 받았지만 그는 부끄럽다며 손사래를 친다.
3년 넘게 김제국씨를 지켜 본 36사단 108연대장 조준호 대령과 행구동사무소 서무계 홍영옥씨(40)는 “점심시간까지 반납하며 도시락 배달하는 것이 절대 쉬운 일은 아니죠. 특히 요즘 무늬만 자원봉사 한답시고 생색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김제국 동대장은 대한민국 군의 대민봉사에 대한 새로운 모델을 제시해준 이 시대 진정한 모범 군인입니다”고 입을 모아 칭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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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런 생각이 들수록 “이 땡볕에 얼만치 고생이 많은가. 자네 땜시 내가 오늘도 밥 챙겨 묵고 다니는구만 그래이”라며 자신을 사랑해 주는 독거노인들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려 도저히 중간에 이일을 놓을 수 없었다.
“예닐곱 살 때 어머니 손을 잡고 원주 치악산 자락에 있는 영금사를 찾아 어머니를 따라 절도하고 스님이 하는 염불도 중얼중얼 흉내 냈던 일이 어제 일처럼 눈에 선합니다. 특히 어머니는 아침저녁으로 <천수경>을 봉독하셨는데, 5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참회의 마음 , 자식을 위한 어머니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습니다. 이제는 저도 그 마음의 <천수경>을 항상 되새기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요.”
남이 알아주건 말건, 자신이 조금이나마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어 한없이 기쁘고 오히려 그들에게 더욱 감사하다는 김씨. 이제 그는 30년 간 피땀으로 지켜온 조국수호의 사명을 바탕으로 뜻있는 원주시 예비군 동대장 10명과 함께 ‘자비손 도시락 급식회(가칭)’를 올 9월에 창립할 예정이다.
“이제 우리나라도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노인복지분야는 사각지대가 너무도 많습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시설과 최대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은 아니더라도 무의탁어르신들이 한 끼라도 맛난 음식을 드실 수 있게 무료 도시락 급식회를 만드는 게 꿈입니다.”
조국을 위해 신었던 군화와 국민을 위해 총을 잡았던 그 손. 그리고 어려운 이웃들에게 든든한 바람막이가 되었던 그의 얼룩무늬 군복. 이런 김씨의 사연들을 아는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자비의 군복’이라 부른다. 반짝반짝 광나는 군화보다 칼 주름 잡힌 군복보다 김씨의 구릿빛 얼굴이 더 아름답고 미더워 보이는 것은 사람과 삶을 사랑하는 그의 보살행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