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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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사리장엄 없는 경천사지 석탑
신대현 박사 "탑에 동판만 넣는 것은 종교적 의미 훼손"


신대현 박사.
요즘 경천사 10층석탑의 해체 복원에 따른 문제로 논란이 뜨겁다. 복원을 마치고 용산 국립박물관으로 옮겨 전시하기로 하면서 탑의 사리공에 사리장엄을 갖추지 않고 대신 이건기(移建記)를 새긴 동판만 넣기로 해서다. 국립박물관 측에서는 경천사 탑을 해체할 때 이미 사리장엄이 없어져 있었기에 지금 새로운 사리장엄을 넣을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고, 불교계에서는 탑에 사리장엄 없이 단순히 동판만을 넣는 것은 탑의 의미를 훼손시키는 행위라는 것이다.

경천사탑은 고려시대인 1349년 지금은 북한 지역인 경기 개풍군 광덕면 경천사에 있었던 탑인데, 이 탑의 아름다움에 반한 일제가 1909년 일본으로 불법 반출하였다가 그 뒤 우여곡절 끝에 반환되어 경복궁에 놓이게 되었다. 몇 차례 옮겨지는 과정에서 손상이 많아 근래 국립문화재연구소가 해체 복원하였고, 최근 국립박물관이 용산으로 옮기면서 이 탑을 박물관 뜰에 두기로 한 것이다.

이런 과정을 잘 뜯어보면 이 탑의 사리장엄이 언제 없어졌는가는 명확해진다. 일제가 자기나라로 가져갈 때 없어진 것이며, 지금도 일본 어디엔가 경천사 탑의 사리장엄이 있을 것이다. 이런 과정을 잘 아는 국립박물관 측에서 ‘사리장엄이 없었기 때문에 새로 만들어 넣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은 너무 안이한 생각이 아닌가 한다. 본래부터 없었던 게 아니라 일제에 의해 절취된 것인데, 지금 조사해 보니 없다고 해서 사리장엄을 안 두기로 한다는 것은 얼마나 무책임한 말인가?

이전되기 전의 경천사지10층석탑. 현대불교 자료사진.
탑이라는 것은 불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세우는 것이다. 석가부처님이 열반한 뒤 제자들이 다비하여 나온 사리를 인도의 여덟 나라에서 골고루 나누었고, 이 불사리를 봉안하기 위하여 세운 것이 탑이다. 사리장엄은 불사리를 담기 위한 일체의 그릇과 장엄물(莊嚴物)을 말한다. 그 뒤로 불사리는 불신(佛身)의 상징으로 여겨져 불사리가 곧 석가부처님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역사상 불교를 믿은 나라치고 이 불사리에 대한 신앙이 발달하지 않은 나라가 없었던 것도 다 이런 까닭에서다. 중국의 경우 지금 남아 있는 기록만 보더라도 6세기 남북조시대부터 수나라 당나라에 이르기까지 불사리에 대한 지극한 존숭의 행사가 그치지 않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사리감응기>라는 글을 보면 수나라에 불사리가 전해지자 황제 이하 온 국민이 나와서 불사리를 친견하고, 나아가 불사리를 탑에 봉안하는 행사가 범국가적인 관심 속에 이루어졌다고 나와 있다. 이와 비슷한 행사는 역사에 기록된 것만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렇게 탑에 불사리를 봉안하는 일이 불교도 최고의 행사가 되었기 때문에 사리를 담는 사리장엄도 최고의 미의식과 기술력이 동원되어 만들어지게 마련이었고, 지금에 와서는 그 당시 불교공예의 최우수품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건기가 들어갈 경천사지10층석탑의 내부. 현대불교 자료사진.
이 같은 사리존숭은 우리나라라고 물론 예외가 아니었다. 기록에는 우리나라에 불사리가 처음 들어온 것은 549년 중국 양나라에서 신라에 보내온 것이다. 이 때 진흥왕은 여러 신하와 함께 흥륜사 앞까지 나아가 불사리를 맞이하며 최대의 경배를 올렸다. 그 뒤 신라의 자장 스님은 643년 사리 100립을 당나라에서 가져와 통도사에 안치하였는데 지금 금강계단에 봉안된 것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기록에 나와 있지 않은 불사리 봉안의 역사는 이보다 훨씬 오래되었을 것이다. 그때마다 온 나라 사람들의 존경과 참여를 가져왔을 터인데, 지금까지 남아 있는 수 백 수 천의 탑은 곧 이 같은 사리신앙의 정도를 엿보게 하는 실물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사람들이 경천사 탑에 사리장엄을 넣지 않고 이건기만 넣는다면 탑이 아니라 돌무더기에 지나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당연한 말이다. 사리장엄이 없다면 탑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그 옛날 탑을 세웠을 당시 사람들이 탑에 보낸 존경과 경배를 완전히 무시하는 처사에 다름 아닌 것이다. 혹자는 문화재는 문화재일 뿐, 종교적 색채가 없어야 한다고 할 지 모른다. 하지만 불교문화재는 문화재 이전에 종교심에 따른 경배의 대상이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불교문화재는 보통 문화재에 비해 좀 더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경천사지10층석탑에 들어갈 이건기. 현대불교 자료사진.
경천사 탑을 사리장엄 없이 복원한다는 얘기에 항의와 지적이 잇따르자 국립박물관에서는 여론을 수렴해서 이건기 외에 사리장엄을 새로 만들어 함께 봉안할 것을 적극 검토할 것이며, 8.15 광복절을 기념해서 성대한 낙성식도 준비하겠다고 하는 모양이다. 여기에 대한 결말은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일단 올바른 쪽으로 가닥이 잡혀져 가는 듯해서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경천사 탑은 특히 우리 근대사의 질곡을 고스란히 떠안은 아픈 상처가 있기에 지금 우리의 손으로라도 사리장엄을 봉안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경천사 탑에 사리장엄을 봉안해 넣는 일이 여기에 국한한 일회성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는 숱하게 많은 탑이 있다. 굳이 불교사와 미술사를 들추지 않더라도 삼국시대, 통일신라, 그리고 고려시대를 거치면서 수천 기의 탑이 세워졌던 것을 잘 알고 있다. 숭유억불의 시대였던 조선에서도 탑은 꾸준히 조성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법등을 밝히고 있는 사찰에 있는 탑이라면 이런 복원이 이루어질 때 설령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 안에 사리장엄이 없어졌거나 심하게 훼손되어 있다면 당연히 새로운 사리장엄을 만들어 봉안할 테니까 별다른 문제는 없다. 하지만 폐사지에 있는 탑의 경우는 그런 손길을 받지 못하는 데 문제가 있다. 이들 탑이 당국에 의해 수리복원이 이루어질 때 경천사 탑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사리장엄의 봉안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 탑을 경배할 수 있겠는가? 복원을 하려면 단순히 외양만 보아서는 안 되고 거기에 담긴 의미를 잘 담아내어야 제대로 된 복원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경천사 탑 사리장엄 봉안의 논의는 앞으로의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불사리는 수량 면에서 제한적이므로 탑마다 반드시 불사리를 넣을 필요는 없다. 대신에 법신(法身)사리를 넣으면 되는 것이다. 법신사리란 부처님의 가르침이 담긴 경전 등을 말한다. 오랜 옛날부터 법신사리와 진신사리의 구분을 특별히 하지 않았던 것도 모든 탑마다 진신사리를 봉안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경전의 말씀을 따르는 것은 곧 석가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행하는 일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어서였다.
그리고 사리장엄도 반드시 옛날처럼 지나치게 화려하게 할 필요도 없다. 단지 불교의 이념이나 부처님의 말씀에 잘 부합하는 것으로 법신사리를 대신하면 되는 것이다. 탑의 복원이 늘 일어나는 일은 아니므로 사리장엄을 새로 만드는 비용은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사리장엄을 만들 때 당국은 불교계와 협의해서 그 때 그 때 알맞은 사리장엄을 봉안하면 될 것이다. 이렇게 해야 비로소 진정한 복원이 되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불교문화재는 불교문화재 다울 때 진정한 문화재 복원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신대현 사찰문화연구원 연구위원 |
2005-06-09 오후 1: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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