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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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건집 교수의 연표로 보는 차문화사

32. 조선시대 ⑦

<한국>
조선시대
1506 중종반정(中宗反正)
1509 보우대사(普雨大師) 출생 ①
일본 사신 다례(동평관에서)
@회강다례(會講茶禮) ②
1511 유생들의 음다(飮茶) 주장 ③
1513 감찰방에서 다시(茶時)
1516 사찰 노비를 속공(屬公)시킴
1518 <속동문선>(신용개)
1520 서산대사(西山大師) 출생 ④
1521 일본사신 내조(22, 23년 등 매년)
1524 전라도 양전(量田)을 마침
1525 중궁전의 다완을 만듦 ⑤
봉선전 다례

<중국>
명대
@전춘년(錢椿年)의 활동 ⑥
1509 육수성(陸樹聲)의 출생 ⑦
@ 서헌충의 활동 ⑧
1518 이시진(李時珍)의 출생 ⑨
1521 서위(徐渭)의 출생 ⑩
1526 왕세정(王世貞)의 출생 ⑪

<일본>
@ 예아미(藝阿彌) 상아미(相阿彌)의 사원다례법 제정 ⑫
시옥종장(柴屋宗長)의 차심기 노래
1522 천리휴(千利休, 센리큐)의 출생 ⑬

왕가에서는 거의 모든 의례에 차가 빠지지 않았으니 세자궁의 회강다례도 그 한 예이다. 다기는 도자 외에 고급 은제 다기를 사용했다. 이런 풍조는 관원과 선비들에게도 불어와, 유생들이 모여 강론을 한 다음에 차를 마시자고 했을 정도다. 사사(寺社) 혁파운동은 계속되었으나 이 때에도 선승들의 차 생활은 이어졌고 뒷날 선문(禪門)을 빛낸 고승 차인들도 탄생했다.
을묘사화가 일어나 큰 소용돌이가 쳐서 많은 인적자원이 손실됐고 개혁이 중단되기도 했지만 문적(文籍)이나 문화적 기록들을 정비하는 일에 힘을 기울였다. 그리고 각 지방의 토지 이용 현황과 거기서 생산되는 산물의 종류나 생산량을파악하려 애썼다.
일본과의 교류는 잦아졌고, 그들은 우리 문화에 관한 것을 배우고 경서, 서책 등을 얻어갔다. 이때 일본 다도의 큰 인물인 천리휴가 태어났으니, 그는 현재 일본 다도의 기틀을 확립한 천가(千家)의 시원이 된다.
중국은 선비 중에 많은 차 마니아들이 속출하여 차 생활을 즐겼고, 또 저술을 남겨 차문화 발전에 기여했다.

① 보우대사(1509~1565): 조선 명종 때 문정왕후의 추천으로 봉은사 주지가 되어 선종사찰로 지정했다. 후에 제주도에 유배되었으며 많은 다시를 남겼다.
② 회양다례: 한 달에 두세 차례 왕세자가 스승과 빈객들을 모아 강론하고 난 후 행하던 다례.
③ 유생들의 강론이 끝나면 차를 마시게 하는 것이 옳다고 한 주장.
④ 서산대사(1520~?): 법호는 청허(淸虛), 법휘는 서산(西山), 법명은 휴정(休靜)이다. 승과에 급제하여 교종선종판사가 됐고 봉은사 주지를 지냈다. 임란 때 승군을 이끌었고 다시 여러 편을 남겼다. ‘달그림자 밝으며 시냇물 길어 차 달이는 연기 하늘 가르네’라는 구절이 유명하다.
⑤ 중궁전의 다완과 세자궁의 밥주발을 은으로 만들도록 상의원(常衣院)에 일렀다.
⑥ 전춘년: 명대 문인으로 옛것을 널리 좋아하고 차를 즐겼다. 특히 찻일을 정치하게 알아서 <다보(茶譜)>를 찬술했다.
⑦ 육수성(1509~1605): 명대 사람으로 호를 평천(平泉)이라 했다. 예부상서를 지냈고 <다료기(茶寮記)>를 찬술하여 인품(人品), 품천(品泉), 팽점(烹點) 등 일곱 가지 지켜야 할 것을 지적했다.
⑧ 서헌충: 명대인으로 오흥에서 벼슬살이를 했다. 수천 두 권에 37군데 물에 관한 품평와 차 끓이는 일을 적었다.
⑨ 이시진(1518~1593): 명대 세업의약인으로 참주 사람이다. 본초강목을 짓고 거기에 차에 관한 것을 쓴 것을 보면 조예가 일반인을 능가했음을 알 수 있다.
⑩ 서위(1521~1593): 명대 문인으로 호를 천지산인이라 했다. 시문화서에 모두 능해 많은 저술을 남겼으니 <다경> 한 권도 있다.
⑪ 왕세정(1526~1590): 명대 문인으로 형부상서를 지냈으며 차를 즐겨 차에 관한 사를 짓기도 했다.
⑫ 예아미와 상아미가 동산어물(東山御物)의 정리 및 서원(書院)의 장식과 점다법 등을 만들어 ‘동산류(東山流)’가 형성되었다.
⑬ 천리휴(1522~1591): 항구 사까이의 생선가게 아들. 능아미의 제자에게 서원식 차를 배우다가 무야소구(武野紹鷗)에게 15년 동안 사사하고 대덕사에서 성을 천(千)으로 바꾼다. 58살에 고려 직전신장(織田信長)의 다두(茶頭)가 되고 후에 풍신수길의 다두가 된다. 그의 기본은 초암차였으며 고려 다완을 아주 좋아했다. 후에 풍신수길은 역모가 있다며 그를 죽였다.
유건집 교수 |
2005-06-08 오후 1: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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