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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을 해치는 병인을 티베트의학에서는 크게 원인(遠因)과 근인(近因)으로 파악한다. 티베트의서에 만병의 근원은 무지(無智)라 하였다. 마치 새가 제아무리 높게 날아올라도 자기 그림자는 떨쳐버리지 못하듯이 우리 중생도 타고난 무지를 벗어날 수 없다고 했다. 그 근본적인 무지로부터 84000가지나 되는 병고(病苦)가 생긴다. 84000가지 병은 1616가지로, 그것은 다시 404가지 질병으로 분류된다.
이 404가지 병 역시 기본에너지의 불균형에 기초하여 다시 101가지 일차 질환으로 압축된다. 한편, 부처님께서는 무지로부터 탐진치 삼독이 생긴다고 하셨다. 불교의 이 탐진치 마음의 삼독을 각기 룽·때빠·왜껜이라는 세 기본에너지와 상관지음으로써 티베트의학의 불교적 세계관과 전인의학적 정체성이 확립된 것이다. 무지와 탐진치 삼독을 장기적으로 만병의 근원적 원인으로 파악한 것이다.
탐(貪)욕은 마시면 마실수록 갈증만 더 키우는 소금물과 같다. 욕망에는 끝이 없어 만족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애착 집착 욕심 욕망 갈망 그 모두 탐심이 아닌가. 영원한 행복을 가져다 줄 것처럼 보이는 무언가를 갈구하지만 영원한 행복이란 물질적 안락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이 행복이라면 물질적 풍요를 구가하는 현대 산업사회의 사람들은 벌써 행복의 찬가로 목이 다 쉬어버렸을 것이다.
불교에서는 영원불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일체 무상의 교지를 말한다. 내일 일도 당장 어찌될지 모르면서 먼 미래를 미리 기약하고 걱정하는 것이 어쩌면 어리석은 일인지도 모른다. 공수래공수거! 인연 따라 왔다가 때 되면 언젠가 홀연히 이승으로 떠나면 그만이다. 그 같은 믿음으로 해서 티베트인들은 항상 있는 그대로 만족해하며 즐겁게 산다. ‘빚 없으니 부자’라는 순박함이야말로 궁핍 속에서도 티베트인들의 얼굴에 충만한 행복감의 원천일 것이다. 애착은 탐욕을 낳고 그 탐욕이 채워지지 않을 때 안절부절 못하고 불면증에 시달리게 된다. 불면증은 다시 불안과 긴장을 고조시켜 룽의 미세한 흐름을 방해해서 심한 경우 광기로까지 발전할 수 있다. 티베트의서에는 탐욕이 붉은 수탉으로 상징되는데 수탉은 동물계에서 성욕이 가장 유별난 동물로 여겨지고 있다.
진(瞋)은 자신과 다른 사람 모두에 가장 유해한 내부의 적이다.
진, 즉 성냄은 시기 질투 자만 이기심 그리고 ‘난 옳고 넌 그르다’는 마음가짐에서 비롯된다. 성난 사람은 일을 자초지종 찬찬히 헤아려 볼 참을성과 여유를 가지지 못한다. 한꺼번에 다 해치우려는 조급함으로 해서 일을 그르치는 불운과 실패가 잇따른다. 그리고는 다른 사람 탓이라 비난하고 독설을 퍼붓고 폭력을 휘두르며 심지어는 상해와 살인까지 저지를 수 있다. 화났을 때 마치 화가 우리 몸 중간쯤 간과 담낭 부근에서 오는 느낌을 받는다. 화났을 때 우리는 ‘피가 끓는다’거나 ‘열 받는다’는 말을 자주 쓰는데 틀린 말이 아니다. 화가 나면 실제 안색이 변하고 체온이 올라가니까 말이다. 화난 상태가 지속되면 열에너지를 교란시켜 때빠 관련 장애를 초래할 수 있다.
티베트의서에 진의 상징은 초록 뱀이다. 화나려고 할 때는 자신이 불같은 화를 녹여버릴 수 있는 눈 덮인 설산 앞에 서있는 모습을 그려보면 화가 조금 잦아들 것이다. 성난 사람의 잔뜩 일그러진 흉측한 얼굴을 떠올려보는 것도 화를 삭이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