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제주도 한 사찰의 합창단은 모 음악협회가 발간한 찬불가 악보집을 일괄적으로 구매해 공연을 준비했다. 그러나 합창단이 사용하는 찬불가 악보집은 무게가 상당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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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불가 악보집을 발간한 모 음악협회측은 이에 대해 “저작권법에 저촉되는 행위”라고 문제삼았다. 악보집을 가지고 있더라도 이를 복사해서 사용하는 행위는 불법이라는 것이다. 결국 이 문제는 저작권심의조정위원회에 넘겨졌고, 위원회는 “악보집을 구매한 당사자가 비영리적인 목적으로 내용의 일부를 복사한 것은 ‘사적복제’에 해당되기 때문에 범법행위가 아니다”고 판결했다.
합창단과 협회측의 저작권 문제는 이렇게 일단락됐지만, 이것으로 끝이 아닌 듯하다. 불교음악계 전반에 저작권법 적용 범위와 대상 등의 문제가 환기되면서 많은 논란을 빚고 있다. 특히 저작권법을 적용시키기 이전에 포교의 목적으로 사용되는 찬불가의 특수성을 헤아려야 한다는 주장도 상당한 설득력을 얻고 있다. 불교음악과 저작권에 대해 알아본다.
▽불교음악계도 저작권 문제 피해갈 수 없다
사찰에서 저작권 문제와 직접적으로 맞닿은 것은 ‘악보 사용의 문제’다. 앞서 제시한 제주도 합창단 사례에서는 개인이 악보전집을 구매한 상태에서 본인의 자료를 직접 복사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타인의 자료집을 대여한 후 임의대로 몇 곡을 발췌 복사하는 것은 명백한 저작권 침해 사유에 해당된다. 음성공양을 올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악보집을 구매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인터넷상에서 찬불가를 듣고 활용하는 것도 역시 문제가 된다. 올해 1월 7일 관련 저작권법이 개정됨에 따라 음악 저작권자 등과의 합의 없이 그들의 음악을 전송하거나 다운로드하는 것은 저작권 침해행위가 됐다. ‘불교음악감상실’ 등 찬불가 음악파일을 무료로 들려주던 인터넷사이트에서는 이제 곡의 일부밖에 들을 수 없다.
찬불가를 응용한 문화상품 고안에도 제동이 걸렸다. 최근 좋은 벗 풍경소리는 100여 곡의 찬불가를 노래방에 서비스하기 위해 노래방 반주기 전문업체인 (주)금영 측과 1차적인 합의를 끝냈다. 그러나 소요비용의 절반에 가까운 7천여 만 원을 저작권협회에 지불해야 할 상황이라 자금 압박으로 난항을 겪고 있다.
▽불교계 “저작권 준수할 상황 못되거나, 준수할 생각이 없거나”
저작권법은 실정법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지켜야 하는 법이며, 그렇지 않을 경우 형사처벌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찬불가는 ‘포교’라는 특수성을 안고 있기 때문에 저작권법과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찬불가 저작자에게 지급하는 저작권료 지불 문제다. 문화포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찬불가 악보나 음원 제공에 대한 요청도 늘고 있지만, 이들은 모두 저작권이라는 굴레에 묶여있어 사용이 제한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불교계에서는 이미 생산된 찬불가를 악보나 음반 등에서 사용하는 경우, 작곡ㆍ작사자에게 개인적인 양해를 구해 노래를 빼오는(?) 사례가 많은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노래방에 찬불가를 보급하는 과제와 같이 한 곡당 150만원 이상의 거액이 투자될 수밖에 없는 사업의 경우, 저작자에게 ‘헌정’을 부탁하면서 저작권료로 지출되는 비용의 출혈을 줄이기도 한다. 한국음반저작권협회 관계자는 “저작권자의 문제제기가 없다면 법적인 처리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이처럼 ‘공리’를 내세워 저작권법을 비껴간 사례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경우가 횡행하면서 명백한 범법 행위까지 행해지고 있다. 저작자 소재를 파악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작품을 임의대로 도용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음반이나 서적 등에 사용하거나 또한 임의대로 편곡할 계획을 세웠다면, 원작자에게 허락을 맡아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저작자와 연락이 닿지 않거나 그 저작자를 알 수 없다면 공식적인 절차를 밟아 저작권심의조정위원회로부터 ‘법정허락’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불교계는 이를 외면했다. 불교음악계 한 관계자는 “현재 불교계에서 사용되는 찬불가 악보집의 일부 작품들의 경우 법정허락의 과정을 임의대로 생략하고 사용된 경우가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일부 음악인들의 경우 저작권법과 관련한 부족한 문화마인드를 지적받기도 한다. 불교음악계 한 관계자는 “몇몇 불교음악가의 경우 저작권협의회 회원 등록 과정이 귀찮고 돈이 든다는 이유로 등록을 거부하는 경우가 있다”며 “그 가운데 일부 작곡가는 자신의 권리가 무엇인지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문제 알아도 답은 못찾아
‘문화포교’의 걸음을 막 떼기 시작한 불교계가 ‘저작권법’의 강풍을 맞기 시작하면서 불교음악계는 좀처럼 일어서지 못하고 있다. 모두가 어느 정도 문제점을 공감하고는 있지만,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의견이 하나로 모아지지 않은 상태다.
불교음악협회 황학현 사무처장은 “저작권법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찬불가 악보나 음반 등을 저렴하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저작료 등은 공정하고 정당하게 지불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제작비가 많이 드는 악보집을 출간하는 대신 낱장의 악보를 배포하는 등 방법상의 변화를 꾀함으로써 비용을 줄인다는 생각이다. 그것은 곧 불교음악인을 보호하고자 하는 방침이다. 황 사무처장은 “지금껏 그래왔듯 작곡가나 작사자에게 헌정이나 보시만을 요구ㆍ강요한다면 음악인들로부터 창작 의욕을 저해시키게 되고 결과적으로 불교음악 발전에 걸림돌로 작용할 뿐”이라고 말했다.
무조건적인 저작권 적용이 원활한 포교를 가로막을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다. 좋은 벗 풍경소리 이종만(작곡가)씨는 “생산된 찬불가를 활용함에 있어 그 목적이 중시돼야 한다”며 “포교나 불교음악 자료 확보 차원에서 활용하는 경우, 영리를 목적으로 사용되는 경우를 구별해야 한다”고 밝혔다.
종단 차원에서 저작권을 일괄 관리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개신교의 경우 교단에 헌정한 곡이 상당해, 필요한 경우 저작권에 대한 부담없이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불교계에서도 이와 비슷한 모델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입장들을 정리하고 저작권 문제를 공론화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다. 즉, ‘찬불가와 저작권’에 대한 불교계의 정확한 상황판단이다. 현재 저작권법이 불교음악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그로 인한 어려움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정확하고 면밀하게 분석하는 작업이 요청된다. 또한 불교계가 저작권법을 위반한 사례들을 밝히고 이에 대한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