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수조가 지상에 노출돼 겨울철 동파 우려가 큰 화암사, 소화전 관로가 훼손돼 사용할 수 없는 송광사, 자동화재탐지시설이 없는 김제 금산사 미륵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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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1일과 6월 1일 양일에 걸쳐 이뤄진 김제 금산사, 완주 송광사·화암사·위봉사 등 전북 일원 4개 사찰에 대한 조계종 문화부의 실태조사를 동행해보니, 소방시설 현황은 생각보다 훨씬 열악했다.
△소화전 배치 및 작동 △안전선 설정 △소방수 급수 시설 △자체 소방계획 △경보시스템 설치 △소방로 설치 △유관기관 연계대응 등 10개 항목을 점검한 결과에 따르면 조사 대상 4개 사찰(완주 송광사·금산사·위봉사·화암사) 가운데 안심할 수 있는 곳은 하나도 없었다. 1984년 대적광전 화재 이후 방화시설을 비교적 잘 갖춘 편인 금산사조차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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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일의 삼층목조건축물인 금산사 미륵전(국보 제62호)에는 방범 카메라와 센서는 설치돼 있었지만, 자동화재탐지설비는 찾아볼 수 없었다. 160톤 규모의 소방수조가 마련돼 있지만, 펌프 없이 자연낙차에 의지한 설비로서 소화전 물줄기 위력에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우리나라에 단 하나뿐인 하앙식(下昻式, 지붕의 하중을 받는 공포 위에 하앙을 덧대 도리를 더 얹을 수 있게 해서 서까래를 건물의 바깥쪽으로 길게 뽑을 수 있게 만든 백제계 건축 양식) 구조를 갖춘 극락전(보물 제663호) 등을 보유하고 있는 화암사에는 3개의 소화전이 설치돼 있으나, 이 가운데 물이 나오는 것은 1개에 불과했다.
또 FRP소방수조와 배관 일부는 아무런 보온시설 없이 지상에 노출돼 있어 겨울철 동파 위험을 안고 있었다. FRP수조는 통상 50~60cm 이상 깊이의 매설 혹은 보온 시설을 필요로 한다. 소방차 접근이 용이하지 않다는 점도 화암사가 안고 있는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깊은 산속에 위치해 있는 화암사에 이르는 비포장도로가 협소하고 구불구불해 소방차가 신속하게 도달하기도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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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것으로는 유일한 십자형 종루(보물 제1244호)와 대웅전(제1243호), 그리고 5m 높이의 거대한 소조삼존불(보물 제1274호) 등을 보유하고 있는 유서 깊은 사찰 완주 송광사에는 현재 소화전 시설이 없다.
종루·지장전·나한전 등 전각들이 30cm 가량 흙에 묻혀 있어, 비가 오면 기둥들이 물에 잠기는 일이 잦아 문화재청의 지시에 따라 이뤄진 절토(마당의 흙을 깎아내는 공사) 및 주요전각 이전 공사 와중에 소화전 배관이 손상된 것. 완주군청은 금년 중에 송광사의 소화 시설 전면 재정비 사업에 착수할 계획이다.
위봉사는 소화전 시설을 갖추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교육 또한 중요함을 보여주는 사례다. 위봉사에는 2003년 국고보조로 소화전이 설치됐으나, 작동방법을 잘 모르는 사찰측은 사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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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이뤄진 조사결과에 따르면 안동 봉정사나 영암 도갑사 등 몇 곳을 제외하고는 방화시설에 약점이 발견돼, 개선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물 부족으로 소화용수 확보가 어려운 강화 보문사, 소화전이 없는 안동 개목사 등은 문제가 심각했다.
가장 확실한 설비로 간주되는 수막설비를 운영하기 위한 용수 확보도 해결해야 할 과제로 드러났다. 수막설비는 소화전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많은 소화용수 확보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안전선(산림과 전각 사이에 나무를 베어내 20~30m 간격을 둔 것)을 설정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도 고민해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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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조사에 동행한 한 방재전문가는 “화재방지 최상의 시나리오는 초기발견 및 진화”라며 “소방차 도착에 20~30분이 소요되는 사찰의 경우 초기진화하지 못할 경우 화재의 확산을 막기 어려운 만큼 기본적인 설비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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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문화부 도윤수 연구원은 “화재 대비책 수립 필요성에 대한 사찰이나 지자체의 인식수준이 아직 낮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 지적하고 “사찰 현실에 맞는 소방시설을 갖추는 한편, 그에 따른 매뉴얼을 속히 마련해 실제 적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사찰과 지자체의 관심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