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가족’이라고 하면 우리는 무엇을 떠올릴까? 아마도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화목한 가정을 먼저 머릿속에 그리게 될 것이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결혼하고, 자녀를 낳아 가정을 이루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가족의 모습’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이혼율 증가에 따라 편부모 가정이나 재혼가정이 늘고 있고 자녀들을 출가시킨 후 노인들만 남은 가정, 자녀교육을 위해 부부가 따로 사는 가정, 주말부부를 하는 가정, 동거를 통해 부부가 된 가정 등 다양한 가족 형태가 존재한다.
이 뿐만 아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법적으로 인정받고 있지 못하지만 동성(同性)이 부부가 되어 가정을 이룬 ‘동성 가정’도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는 곧잘 이런 다양한 형태의 가정을 ‘비정상적 가정’ 혹은 ‘결손가정’이라 생각하기 쉽다.
안성 도피안사(주지 송암)와 본사가 공동 주최하는 구국구세대법회 ‘가정의 가치 불교에 묻는다’의 다섯 번째 강사로 나선 옥선화 교수(서울대ㆍ한국가족학회 이사)는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가족형태를 짚어보고, 이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해 강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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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한 가족형태의 등장
옥 교수는 먼저 “산업사회를 거치며 다양한 가족형태가 등장하고 있지만, 가족주의 가치관이 널리 퍼져있는 우리나라에서는 나와 다른 가족의 형태를 쉽게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채택한 조선시대 이후 개인보다는 가족 전체에 가치의 중심을 두는 ‘가족주의’가 만연해 있기 때문에, 다양한 가족형태를 인정하고 수용하려는 자세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가족주의는 서양에서도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사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이성계가 조선의 통치이념으로 예치주의를 채택하면서 예의 근본인 가족 안에서의 가치와 질서를 중시하는 가족주의가 널리 퍼지게 됐다는 것이 옥 교수의 설명이다.
“농경사회와 집합문화를 이루었던 조선시대에는 가족주의가 사회질서를 이루는 바탕이 됐습니다. 또한 일제 치하를 거쳐 외세에 의한 독립을 이룬 후에도 가족중심적인 가치가 그대로 계승됐고, 이로 인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을 정도로 가족주의, 집합주의에 의해 유지된 나라가 됐습니다.”
그러나 세계화의 바람 속에서 외국여행이나 국제결혼 등 다양한 방식으로 세계화를 경험하게 되면서, 단일민족이면서 가족주의로 무장됐던 우리 사회가 빠른 속도로 변화를 경험하게 됐다. 또한 20세기 산업사회로 접어들면서 직업이나 학업에 따른 이동이 빈번히 일어나며, 각자가 자신에게 맞는 삶의 방식을 선택하게 됨으로써 다양한 가정의 형태가 나타나게 된 것이다.
“오늘날 나타나는 다양한 형태의 삶이나 그들이 이룬 가정의 형태를 거부하는 것은 그 구성원들을 거부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와 다른 가족 형태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다른 형태의 삶을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 다양한 가족의 존재양태
그렇다면 산업사회를 거치며 나타나고 있는 다양한 가족의 형태는 얼마나 되며,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옥 교수는 지난 10년간의 신문기사를 분석함으로써 그 속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가족형태와 그것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각을 알아봤다.
신문지상에 다양한 가족형태에 대한 기사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부터다. 왜 90년대일까? 옥 교수는 그 원인을 86년 아시안게임과 88년 서울올림픽에서 찾는다. 경제적 수준이 향상되어 우리의 경제력을 세계에 알리게 된 두 사건은, 국민들이 직접 다양한 인종을 만나고 부대끼면서 ‘서로 다름’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다양성의 인정’이라는 사고방식의 변화는 가족형태에 대한 이해에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가족이라고 하면 남녀가 만나 아이를 낳고 사는 것이라는 획일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결혼과 성에 대한 인식도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죠.”
옥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다루어진 기사 중 이혼(30%)과 동거(20%) 문제가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이 맞벌이 가족(10%)이었다. 맞벌이 가족이 다양한 가정의 한 형태로 등장한 것은 남편과 부인의 역할이 뚜렷하게 구분되어졌던 전통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 밖에 입양가족(7%)이나 독신문제(7%)를 비롯해 동성애 가족, 노인가족, 주말부부, 기러기 가족 등도 다루어졌다.
“가족이란 혈연관계나 혼인관계 혹은 법적인 혈연관계에 있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생활 공동체를 말합니다. 이것은 곧 일상생활을 함께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그런 측면에서 기러기가족이나 별거가족 등은 생활의 공유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많은 문제점이 나타나고 이것이 사회 문제로까지 대두되고 있습니다.”
# 동성가족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옥 교수는 많은 가족형태 중 특히 ‘동성가족’에 대한 일반인들의 거부감이 가장 크다는 점을 지적하고, 동성애와 동성가족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설명했다.
“매슬로우는 ‘욕구이론’에서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 중 첫 번째로 생리적인 욕구를 꼽았습니다. 그러나 생리적 욕구, 즉 성적 욕구는 개인차가 무척 큰 사항입니다. 하지만 그 차이는 옳다 그르다라는 가치판단의 문제가 아니라, 마치 식사량이 개인마다 다른 것처럼 개개인이 가진 특성으로 볼 수 있습니다. 성인 남녀 1인씩이 결합해서 이룬 것만이 가정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러한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물론 동성끼리의 결합을 두고 ‘종의 원리에 어긋난다’거나 ‘인간 본성을 거스르는 행위다’라고 비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러한 선택을 하게 된 계기와 과정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여자는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길러진다’는 말이 있다. 어릴 때부터 남자나 여자로서의 성정체성을 강요받고, 또 그렇게 생각하도록 키워진다는 말이다. 하지만 실제 기혼자를 대상으로 남성성과 여성성을 조사해보면 자기 성에 가까운 사람이 더 많고 미혼은 다른 성 지향성 가진 경우가 높다고 옥 교수는 말한다. 남자로 태어났으면 남성성이 높고 여자로 태어났으면 여성성이 좀 더 높을 뿐이지 그것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사회적인 규범 등에 의해 억눌려져 표출되지 않을 뿐이지 자신 안에서 이성(異性)의 성향을 발견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남성성이나 여성성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것은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구하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내가 어떤 것을 했을 때 가장 행복한 것인가를 끊임없이 관찰할 때 비로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끊임없는 관찰 후에 자신의 성 정체성을 확인하게 됐고, 그것이 자신이 알고 있던 것과 다를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옥 교수는 미국에서 겪은 일화를 예로 들었다.
“가족생활교육 프로그램 개발 차 미국에 갔을 때, 아들이 게이인 것을 알게 된 부모를 인터뷰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부모는 자녀에 대한 분노와 미움 등으로 몹시 좌절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상대방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가족들이 서로가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할 때 비로소 그 갈등은 해소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경우 옥 교수는 ‘동성애를 지지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라는 질문은 옳지 않다고 말한다. 단지 상대의 선택과 판단을 이해하고 존중해줄 뿐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성 정체성을 정확히 알지도 못한 채 그렇게 됐다면 선택을 바꿀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인정하고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성애자를 이해하라는 것은 어려운 문제입니다. 왜냐면 순리롭지 못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그들이 그러한 삶이 진정 행복하다 느끼고 심사숙고한 후 결정한 사항이라면 존중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일은 다양한 삶의 방식을 그들이 지원을 요청할 때 어떻게 도와줄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입니다.”
옥 교수는 “이제 국가가 앞장 서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이 겪고 있는 문제점을 해결하고 그들을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와 똑같아야 정상이고 다르면 비정상이라는 흑백논리는 이제 지양되어야 합니다. 다양성이 인정되고, 그들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할 때 보다 나은 사회가 될 것입니다. 동성애나 문제에 대해 닫힌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면 이제 좀 더 넓은 마음으로 문제를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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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사범대학 가정교육학과 졸업한 뒤 1989년 동 대학원 가정관리학 박사를 취득했다.
가족과 지역사회간의 상호작용의 이해를 위한 체계적이고 발전적인 틀 개발에 주력해 왔으며, 한국가족상담교육연구소장과 서울가정법원 가사조정위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 서울대 생활과학대학 소비자아동학부 가족아동학전공 교수로 재직 중이고, 고령화 및 미래사회위원회 전문위원과 한국가족학회 이사, 대한가정학회 부회장 등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결혼과 가족> <가족학> <한국 가족문제-진단과 전망>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