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7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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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순간 순간 재발심해야 합니다
도륜 스님(보성 봉갑사 회주)



부처는 어떤 조화를 부려서 따로 온 신격화된 존재가 아니라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 태어나 부처가 됐으므로 정진하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하는 도륜 스님.


멀찍이서 걸어오는 스님을 보니 천성이 수행자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거리가 가까울수록 작은 체구에 꼿꼿하고 당당한 모습은 한치의 흐트러짐 없는 ‘수행 잘하는 스님’ 그대로였다.

“무슨 말을 듣고자 애쓰지 마세요. 오랜만에 도반끼리 만나서 차 마시며 절대자유인인 부처가 되는데 제대로 가고 있는지 서로를 점검해 보기로 해요. 수행도, 대화도 혼자서만 하면 외롭잖아요” 합장하며 환하게 웃는 스님의 얼굴에서 ‘어디서 본 듯한데…’ 하는 느낌이 들었다. 격의 없이 손자와 장난하며 놀아주던 친할아버지 같기도 하고, 한순간도 자신을 높이지 않고 똑같은 눈높이로 대해주던 청화 스님을 대하는 듯도 했다.
“우리가 완전무결한 인격을 갖출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다른 종교에서 말하듯 성인은 특별한 존재이고 인간은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불완전한 존재라고 생각하는지요?”
“… 생각해본 지가 오래되어서…”

어! 이게 아닌데, 이 질문은 내가 하고 스님의 답을 들어야 하건만 처음부터 주객이 바뀐 느낌이었다. 거기에다가 답변마저 궁색했다. 스님의 물음은 학창시절에야 누구나 한번쯤 가져봄직 했던 의문이지만 생활에 얽매이면서 서서히 멀어져 버린 오래된 추억(?) 아니든가.

“나는 어려서부터 큰 의문이 있었는데 ‘왜, 어떻게 사는가’였습니다. 이것을 알기위해 인류는 누구나 배워야한다고 생각했지만 어디까지 배워야 하는지가 궁금했습니다. 이 문제를 풀고자 유교 경전을 보고, 도교에 심취했지만 의문 덩어리는 더욱 커져만 갔습니다. 철이 들 무렵인 17~18세쯤 되어서는 가지고 있던 모든 책들을 싸들고 절에 들어갔습니다. 그 당시 공부하기에는 절이 제격이었지요.
그런데 절에서 생활하다 보니 거기에 ‘산다는 것’에 대한 답이 있는 겁니다. 그것도 과거 현재 미래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불교관을 안 후로는 그야말로 감격과 환희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래서 주저없이 머리를 깎았습니다. 저뿐 아니라 주위에서도 모두 설마 내가 중이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막상 머리를 깍고 나니 전생에 공부하던 중생이었으니 금생에는 공부를 마쳐야한다는 발심으로 이어졌습니다.”

다행히 도륜 스님은 질문에 대한 답변이 부실했음에도 대화를 이어갔다. 애당초 스님의 말씀을 듣고자 찾아간 자리였기에 스님의 결론을 학수고대하며 스님 얼굴만 빤히 바라본 효험이 있었다. 그 모양새가 애처로웠는지 스님은 말씀을 이으면서 ‘허물이 있으면 지적해 달라’고 또다시 주문한다.

목표 정해지면 어떻게든 갈 수 있다고 말하는 도륜 스님.
“목표가 정해지면 어떻게든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목표가 없으면 멈출 수밖에 없는 것이 진리입니다. 대부분 완전무결한 인격은 갖출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유교든 도교든 성인의 가르침을 따라 실천하라고는 하되, 궁극에 가서 절대자유인이 되라는 가르침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불교는 완전무결한 존재가 될 수 있으며 그를 일러 부처라 합니다. 부처는 어떤 조화를 부려서 따로 온 분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 와서 부처가 되었고, 누구나 다 부처가 될 수 있다고 설파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가르침을 가슴에 명확히 새겨야 합니다.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선언은 인류 최고의 말씀입니다.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목표가 있기에 어떤 고난도 돌파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이론적으로 보면 부처가 되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수월한 일입니다. 어려운 수학문제도 공식을 알면 쉽게 풀 수 있듯이, 알고 행하면 부처도 쉽게 되는 것입니다.
견성성불(見性成佛)은 수행하는 이들에게 부처가 되는 공식이라 하겠습니다. 이는 ‘자성불(自性佛)’에 귀의하는 것을 말합니다. 자성은 ‘우리의 본심’입니다. 천지가 다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불성이자 깨달을 수 있는 성품입니다. 만물에는 본래 불성이 갖춰져 있고 무한대의 공덕으로 꽉 차 있으니 내 것을 스스로 계발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부처님 전에 예를 올리기 위해 들렀던 법당 기둥에 ‘자성본래불(自性本來佛)’이란 글이 쓰여 있던 것이 생각났다. 스스로의 성품을 보면 부처를 볼 수 있다는 것은 불자라면 한번쯤 들어봄직한 말이다. 누구나 알고 있건만 그게 잘 안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답답한 마음에 스님에게 ‘어떻게 하면 되는지’ 단도직입으로 물었다. 그러자 스님의 반문이 돌아왔다.

“무의식을 인정합니까, 부정합니까?”
“가끔 무의식을 체험합니다.”
“무의식은 나도 모르게 의식이 단절되는 것으로 불가능하게 보이는 일도 무의식중에는 지혜나 힘이 생겨 처리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잠재의식은 있습니까, 없습니까?”
“누구에게나 알 수 없는 잠재의식이 있습니다.”

“잠재력은 무의식중에 나옵니다. 의식이 막고 있지요. 그렇다면 누가 주었을까요. 부처님이 준 것도, 부모가 준 것도 아닙니다. 자기 것입니다. 그런데 왜 아끼고 있습니까. 내 것이면 계발하고 발전시켜야 합니다. 참선, 기도, 염불이 바로 잠재력 계발이라 하겠습니다. 숨겨놓지 말고 계발해서 자신이 쓰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 계발하자는 것이 제가 말하고자 하는 요체입니다.”

어디에서 힘이 솟는지 시간이 흐르면서 노구의 스님은 도리어 한마디 한마디에 기운이 넘쳐났다. 방편과 비유로 근기에 따라 대기설법 하던 부처님이 그러하듯 스님도 초심자를 대하듯 쉽게쉽게 말을 이어갔다. 그렇지만 스님이 초지일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함께 부처 되자’는 것이었다.

“방편으로 근기가 있습니다. 크게 상 중 하근기로 나눕니다. 상근기는 인간으로서 가야할 길이기에 목표를 향해 지금 이 순간부터 그 길을 쭉 갑니다. 중근기는 법당 밖으로 나가면서 부처되겠다는 생각을 잊고 있다가 다시 법담 나누는 자리가 있으면 부처되야지 하는 이들입니다. 그러니 자꾸자꾸 자성본래불을 찾고 실천해야 합니다. 저도 중근기여서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답니다. 하근기는 ‘배부른 소리하고 있네’ 라며 당초 부처되는 소리조차 듣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렇지만 하근기라 할지라도 불성이 있어 언젠가는 부처가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인연으로든 일단 불교를 접했다면 중근기 이상입니다. 분명히 부처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부처가 되는 기회를 자꾸 늘려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인연에 따라 참선이나 염불, 기도, 경전 보는 것에 의지해 불성을 찾는 것은 좋은 방편이 될 것입니다. 어느 것이든 한시도 놓치지 않고 자성을 바로보고자 하는 것이 바로 선(禪)이지요. 특히 우리 민족은 오래전부터 불성을 계발해 온 복이 많은 민족입니다. 건국이념인 홍익인간(弘益人間)이 불법과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것은 인간의 완성을 뜻하며, 불교의 화엄사상과 상통합니다. 오랫동안 닦아온 성품이기에 조금만 공부하면 누구나 쉽게 부처가 될 수 있습니다. 한시도 불성을 놓치지 말고 바로 보아야 하겠습니다.”

도륜 스님(오른쪽)은 만물에는 본래 불성이 갖춰져 있고 무한대의 공덕으로 꽉 차 있으니 내것을 스스로 계발하고 말한다. 왼쪽은 봉갑사 주지 각안 스님.
스님은 복원중인 봉갑사를 “인성교육도량으로 가꾸겠다”고 했다. ‘의식개조를 통해 자성을 계발하고 내 자신이 훌륭하다는 것을 알아 지상극락을 이루자’는 것이다. 그러면서 “진정한 자기완성은 선도 악도 떠난 자리이다”고 강조한다.

“악의 근본은 보리(菩提)이며 보리는 진리입니다. 상대가 있기에 선 악이란 대상을 두는 것입니다. 선은 악을 떠나 아무리 해도 진리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선이 없어야 악도 사라지는 것입니다. 선이 있으면 상대적으로 악도 나오는 것입니다. 자타가 없고, 선악이 없을 때 자기완성이 이루어집니다. 나는 일생 공부하는 사람입니다. 좀더 공부합시다. 그리고 언제든 오세요. 부처님 제자답게 수시로 자신이 어떠한가 함께 점검해 보기로 합시다.”

‘더 열심히 공부하자’는 스님의 말씀이 공부하지 않는 오늘의 우리에게 질책과 격려가 되어 다가왔다. ‘매 순간 순간이 재발심’되어야 한다는 스님의 가르침이 천봉산을 내려오는 내내 귓가에 맴돌고 있었다.




도륜 스님은

오랫동안 탁발·토굴 생활…숨은 도인으로 통해

자타가 없고 선악이 없을 때 비로소 자기를 완성할 수 있다고 말하는 보성 봉갑사 회주 도륜 스님.
1927년 전남 보성 生. 부친이 한약방을 운영하여 비교적 부유한 가정에서 일찍이 유교를 접했다. 어려서부터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골몰하다 도교에 심취하기도 했다.
청년기에 유교와 도교를 섭렵하고자 공부할 장소로 사찰을 선택했고, 뜻하지 않게 그동안 풀리지 않던 의문이 불교에서 찾을수 있음을 알고 출가했다.
고창 선운사에서 박한영 스님의 마지막 제자인 청우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도륜 스님은 해남 대흥사에서 10여년간 은사를 모시고 사중일을 보며 강원 이력을 마쳤다.
그후 탁발구도에 나서 10년간 바랑하나 메고 전국을 다니며 법을 구했다. 2년전 열반한 청화 스님은 출가 전부터 인연이 있어 진불암, 해운사 등 토굴에서 방을 같이 쓰며 가장 오랜동안 함께 정진한 스승이기도 하다.
15년전, 마라난타 존자가 창건했다는 호남의 3갑(불갑사, 도갑사, 봉갑사)중 하나인 봉갑사터에서 발걸음을 멈췄고, 토굴을 짓고 정진하며 봉갑사 중창을 발원하고 있다.
스님은 오랫동안 탁발과 토굴을 전전해온 탓에 지역에서 ‘숨은 도인’으로 통하고 있다. 찾아오는 이가 있으면 누구도 마다않고 손을 맞잡고 법담을 나누기에 봉갑사를 찾는 불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인터뷰 내내 스님은 법력과 나이를 내세운 일방적인 훈시가 아니라 함께 정진하는 도반이 되어 마주앉아 묻고, 답하고, 모순이 있으면 지적해 주기를 청했다.
글=이준엽 기자·사진=고영배 기자 |
2005-05-28 오전 11: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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