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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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반갑습니다 희망 안고 잘 살래요"
‘하나원’ 원생들 도선사 불교 체험·홈스테이


경전을 보관하는 윤장대를 직접 돌려보는 모습.


“올 때가 다 됐는데….”

5월 26일 서울 도선사(주지 혜자). 조계종 포교사단 통일협력위원회(위원장 김용익) 포교사들이 버스가 들어올 때마다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며 초조하게 누군가를 기다린다.

그러기를 몇 차례, 포교사들이 “드디어 왔구나”라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다. 특별한 손님들이 도착한 것이다. 내리자마자 포교사들에게 “반갑습니다” 인사를 하는 21명의 손님들. 남한 정착 교육을 받는 성남 하나원의 72기 원생들이다.

<하나원 교육생 홈스테이>에 참여하기 위해 5월 26일 도선사를 찾은 하나원생들. 석불전을 둘러보던 원생들이 식구들의 건강과 먼저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명복을 빌며 절하고 있다.
하나원생들은 5월 26일과 27일 양일에 걸쳐 포교사단과 도선사가 공동으로 주최한 ‘하나원 교육생 홈스테이’에 참여하기 위해 도선사에 왔다. 탈북인들이 바로 남한 사회에 정착하는 것 보다는 어느 한 가정 속에 들어가 드라마에서만 접했던 일반 사람들의 생활을 직접 살펴보는 쪽이 훨씬 도움이 되기에 하나원에서 시행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농촌 가정을 체험했지만 이번 도선사 방문은 하나원에서 불법을 전하고 있는 포교사들과 도선사 신도들이 원생들에게 한국 문화의 근간인 불교문화를 보여주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자는데 의기투합했고 하나원 측에서 흔쾌히 승낙해 이뤄졌다.

본격적으로 홈스테이에 들어가기 앞서, 남한의 불교문화를 체험하는 시간. 도선사에서 원생들을 가장 처음 맞은 사람은 도선사의 역사와 설화를 직접 설명하기 위해 나선 前 주지 동광 스님이다. 스님은 사찰 소개 뿐 아니라 도선사에서 준비한 붉은색 단주도 하나하나 원생들에게 건네주었다.


포대화상의 푸근한 모습을 재밌어하며 배를 쓰다듬고 있다.


요즘 탈북인들은 중국에서 넘어오고, 또 일정기간 체류하다 온 경우가 많아 남한에 대한 지식이 어느 정도 있는 편이지만 이들에게 ‘스님’이라는 말은 아직 낯설다. 북에서는 그저 ‘중’이라고만 하고,‘절'에 가본 경험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문득문득 쓰는 언어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 때마다 원생들은 신기하고 또 마음이 새롭다.

“아이고, 이건 또 뭐네. 참 재밌게 생겼다 야.”

동광 스님의 설명을 듣고 난 이후 절을 한 바퀴 둘러보던 한 원생이 불룩한 배에 걸망을 짊어진 모습을 하고 있는 ‘포대화상’에 관심을 보인다. 그러자 모두들 모여들어 포대화상의 배를 쓰다듬는다. 영문을 모르는 도선사 신도들은 놀란 표정을 짓지만 인자하고 푸근한 포대화상은 미소만 보낼 뿐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성남 하나원을 찾아가는 허정희 포교사(통일 6팀장)도 미소를 띠며 도선사 신도들에게 설명한다.


우경대 도선사 사무장(사진 왼쪽)과 함께 지하철을 타고 있는 도희(가명)씨.


“불교, 아니 종교라는 것 자체를 잘 모르니까 처음에는 이렇게 무조건 불교문화를 체험 하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 좋아요.”

실제로 사찰에 처음 와 보는 원생들이 많다 보니 도선사 곳곳의 불상도 전각도, 또 심지어는 길게 늘어선 장독까지도 새롭다.
몇몇은 자발적으로 법당에 들어가 기도를 하기도 한다. 은주(가명ㆍ27)씨는 “저 멀리 있는 고향 땅 부모 형제가 건강하게 살아만 있게 해달라고 빌었다”며 멋쩍게 웃는다. 옆에 있던 명숙(가명ㆍ26)씨는 “북에서 탈출했을 때 자신의 목숨을 바쳐 나를 살려낸 한 할아버지의 명복을 빌었다”며 숙연해 하기도 했다.

점심을 먹고 난 뒤, 드디어 원생들의 홈스테이를 기꺼이 돕겠다고 나선 도선사 신도와 원생들 간의 만남이 이뤄졌다. 시작은 역시 ‘반갑습니다’다.


원생들은 도선사 신도의 집에서 1박을 하고 식구들과 환담을 나누기도 했다.


“동포 여러분 형제 여러분, 이렇게 모이니 반갑습니다.”

한껏 흥을 넣어 부르는 노랫소리에 남북 모두 노랫말처럼 마음속 깊이 반가움이 교차한다. 그러나 반갑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도선사 신도들의 마음이다. 남한에서 이제 터를 잡고 살아갈 이들에게 자신의 실제 생활 모습을 보여주고 남측 생활은 어떤 것인지 정확하게 짚어주어야 할 임무가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도선사 우경배(71) 사무장도 원생 박경미(가명ㆍ27), 이도희(가명ㆍ32)씨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기로 결정했다. 우 사무장은 우이동 도선사에서부터 돈암동 집까지, 버스 한 번 전철 한 번을 타고 가기로 했다. 승용차나 택시보다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편이 이들의 남한의 실생활을 알리는데 도움이 된다는 판단이다.

경미씨나 도희씨 모두 중국에서 6년 이상 살아온 탓에 지하철이나 버스가 신기하지는 않다. 집으로 가는 길에 들른 대형상점도 우리에게조차 생소해져버린 재래시장의 모습도 그들에게는 경이롭거나 낯설지 않다. 그저 “남한 땅에 있다는 그 자체가 자유의 향기로 느껴져 기분이 좋고 희망적”이라고 입을 모으며 명랑하게 웃어 보인다.

그런데 우 사무장은 이들의 웃음이 정착하기 위해 이 땅에 발을 디뎠을 때도 유지 될 것인지 걱정부터 앞선다. 실제로 탈북인들이 남한사회에 제대로 정착하는 경우가 절반에도 크게 못 미치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들이 살아온 시간동안 길들여진 체제 밖에서 처음 자유를 맛봤지만 그 기대가 현실이 되는 순간에 찾아오는 적막감을 이겨낼 힘이 필요한 것이다.


27일 도선사 다도 시연에 참여하고 있는 모습.


“처음에 기반 잡기 위해서는 열심히 일해요. 그 수밖에 없어. 열심히 일하고 착한 생각 하면 꼭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스스로 믿음을 가져요.”

저녁 시간, 우 사무장은 부인 이부미자(63)씨가 준비해놓은 미역국을 맛있게 먹는 경미씨와 도희씨에게 아버지 같은 마음으로 이야기한다.

다른 체제에서 살다 처음 남한을 체험하고 있는 하나원생들이 남한에서 살아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겠지만 자유의 땅을 찾아 고생 끝에 도착한 그들의 희망을 꺾지 않아야 한다는 심정이다.

다음날 일정은 다시 도선사로 돌아와 남한 차 문화를 체험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각자 도선사 신도의 집으로 흩어졌던 하나원생들이 다시 만나자 또 ‘반갑습니다’다.

“남한에 와서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어 다행입니다. 이 희망 그대로 안고 산다면 잘 정착할 수 있겠지요.”

처음 가본 사찰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과 함께한 시간. 즐거움이 깊어가는 동안 피로도 쌓였다. 그러나 하나원생들 가슴 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는 희망의 싹은 도선사 신도들과 함께 하는 동안 한 발 더 키가 컸다. 이제 남은 것은 자신들의 의지. 도선사 신도들과 하나원생 모두 어느 한 쪽에서 현실의 괴로움을 대신해 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마음속에 남은 동포애를 바탕으로 원생들이 그렇게 꿈꿔왔던 삶에 조금 더 다가가기를 서로, 바라고 또 바란다.
글=김강진 기자·사진=고영배 기자 |
2005-05-28 오전 10:00:00
 
한마디
예, 불자님 말씀대로 아직 개신교가 무척 활발히 북한 동포들에게 전도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예산 규모나 접근 방식을 보면 너무 적극적이지요. 불교의 경우, 아직 많은 분은 아니지만 꾸준히, 또 묵묵히 전법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 분들이 계시기에 하나원 내에서도 불교를 믿어보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생기는 것이지요. 사실 예산상 문제 등 어려움이 많습니다. 함께 일어날 수 있도록, 불교가 희망을 줄 수 있도록 도와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감사합니다.
(2005-05-30 오후 5:32:15)
73
개신교가 100% 독점해온 사업인데 불교사찰이 참여하여 개신교 독점구조를 깨는것을 보니 매우 고무됩니다.
(2005-05-29 오후 2:52:20)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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