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9. 7.2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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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발자취가 남아있는 호국사찰들
흥국사, 석천사 등 호국사찰과 KBS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세트장
<한산대첩> 기록화.


이순신 열풍이 그 어느때보다 거세다. 특히 KBS 1TV 대하사극 ‘불멸의 이순신’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가족 단위로 이순신 장군의 발자취와 흔적을 찾아 떠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전북 부안의 촬영지는 물론 여수 흥국사와 석천사도 충무공 이순신과 관련이 깊은 사찰들이다.

주말에 그곳을 찾아가 충무공의 숨결을 느껴본다면 독도문제, 야스쿠니신사 참배 등 역사왜곡으로 답답해진 마음이 확 풀어질 듯 하다. 일본인들은 이순신 이름 석자만 들어도 벌벌 떨었으니 말이다.




여수 흥국사

흥국사(주지 명선)는 임진왜란 당시 700여명의 의병수군이 나라를 지키며 수행하던 사찰이다. 여수는 조선말까지 전라좌수영 본영이 있던 군사요충지로 임란당시 삼도수군 절도사 충무공이 거북선을 만들고 수군을 지휘하던 곳이다. 이런 인연으로 충무공은 수시로 흥국사를 찾곤 했다.


흥국사 <의병수군유물 전시관>의 의병훈련 모형물.


흥국사 내에 자리한 ‘의병수군유물전시관’에는 의병 활동을 엿볼 수 있는 유물들이 전시돼 있다. 그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것은 충무공 친필로 전하는 현판 ‘공북루(拱北樓. 262×98cm)’이다. 보는이로 하여금 힘이 솟구치게 하는 것이 무인의 기상을 엿보게 한다.


충무공 친필이라 전해지는 현판 <공북루>.


공북루는 흥국사 입구 성문 옆에 세워진 누각이다. 지금은 누각이 사라지고 없지만 충무공이 승병들을 훈련시키고 의승장들과 회합하던 곳이다. 충무공은 이 누각의 현판을 임진란이 일어난 다음해 겨울에 썼다.

‘공북루’는 무슨 뜻일까. 흥국사 주지 명선 스님이 들려주는 현판에 얽힌 이야기는 자못 흥미롭다.


세계 4대 해전으로 꼽히는 <한산대첩>기록화(서울전쟁기념관). 불을 뿜으며 왜선으로 돌진하는 거북선의 위용에서 통쾌함이 느껴진다.


영웅 충무공도 전쟁초기에는 시행착오가 있었다. 충무공은 병사들을 엄한 군율로 다스렸는데 보이는 곳에서는 잘 따르는 듯 했다. 그러나 충무공이 없는 자리에서는 제멋대로였다. 병사들의 횡포로 해안가 주민들이 타지역으로 도망가는 일들이 발생했다. 전쟁 중에 주민이탈은 큰 문제였다. 농사와 병사모집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충무공은 고심끝에 흥국사 의병장 옥형·자운 스님에게 자문을 구했다. 스님들은 충무공에게 불교의 동사섭(同事攝. 중생과 더불어 고락을 같이함)을 설하고 주민을 포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병사와 주민위에 군림하는 장군이 아니라 함께하는 덕장이 되라 했다. 구체적인 방안으로 군 관 민이 모두 북쪽에 있는 왕에게 예를 올리도록 했다. 그때가 겨울로 승병의 지휘소였던 누각을 공북루라 하고 매일 북쪽을 향해 예를 올렸다. 위로는 장군에서 아래로는 병사와 주민이 모두 한마음으로 나라를 지키자며 함께 고개숙였다. 민간인에게 해를 끼치는 병사는 엄벌에 처한다는 방을 붙이고 시행했다.

이런 소문이 돌자 이듬해 봄까지 주민들이 다시 돌아와 농사를 짓고 싸움에서 승리하는 초석이 되었던 것이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전쟁에서 산화한 충무공 등 고혼들을 위해 수륙재를 지낼 때 쓰여졌던 흥국사 괘불.(보물 1331호).


임진왜란이 끝나고 선조는 백미 600석을 내려 충무공과 전장에서 산화한 영가를 위해 수륙재를 지내도록 했다. 흥국사를 비롯해 충무공 유적지를 돌며 310여년간 수륙재가 이어졌다. 이때 쓰던 괘불(보물 1331호)이 흥국사 유물전시관에 전시되어 있다.

임란이후 흥국사는 18세기까지 의승수군 300명이 주석하며 왜구의 침입을 막으며 주민과 나라를 지켜왔다. 사찰 구석구석은 의승들의 손길이 남아있어 그대로가 의승유물관이다.

대웅전 기단을 비롯해 경내 곳곳에 새겨진 거북, 게, 용, 해초 등의 조각물은 400년전 충무공과 승병들이 꾸며놓은 무대가 되어 찾는이를 맞이하고 있다. 특히 대웅전 계단의 용조각상은 거북선의 머리부분의 모델이 됐다는 설도 있다. (061)685-5633


의병장 옥형ㆍ자운 스님의 제사를 지냈던 여수 석천사.


여수 석천사

여수 중심지 마래산 자락에는 석천사(石泉寺)와 충민사(忠愍祠)가 함께 자리해 있다. 충민사는 충무공의 충절을 기리는 사당으로 아산 현충사보다 103년 전에 지은 충무공 사당 제1호(사적 제381호)이다. 충민사 유래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그 가운데 의승수군장 옥형과 자운 스님이 건립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임진, 정유재란이 끝나고 충무공과 함께 전장에서 활약한 옥형·자운 스님은 충무공이 평소 즐겨 오르던 석천(石泉)가에 초당을 짓고 재를 지냈다. 충무공과 임란당시 전사한 고혼들의 극락왕생을 빌던 스님들이 주석하던 곳이 바로 석천사이다. 그 뒤 초당은 선조 34(1601)년 영의정 이항복의 제청으로 통제사 이사언이 규모를 갖춘 충민사로 조성했다.

충민사와 나란히 자리한 석천사는 옥형·자운 스님의 영정을 모시고 매년 3월 제사를 지냈다. 유림의 압력으로 제사를 흥국사로 옮기기도 했으나 그나마 일제 때 중단되고 말았다. 스님들의 영정은 일본인 서장이 가져간 뒤 행방이 묘연하다.


<노량해전> 기록화.


오늘의 석천사는 주지 진옥 스님이 포교에 힘써 지역의 중심사찰로 자리잡고 있다. 어린이에서 노인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복지사업을 펼쳐 예나 지금이나 석천사는 지역민과 나라에 봉사하는 사찰로 맥을 잇고 있다.(061)666-1770



KBS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세트장은….

KBS1-TV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세트장은 100억원 이상의 예산을 투입해 사실적 배경 묘사와 아름다운 풍광을 담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KBS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포스터.


전북 부안군에 위치한 촬영세트장은 크게 부안 영상테마파크와 전라좌수영이 중심이 되는 궁항 등지의 해상세트로 나누어볼 수 있다. 또한 오픈 세트 외에도 거북선, 판옥선, 세키부네와 같이 다양한 종류의 선박을 재현하고 있어 어느 사극보다 눈요기 거리가 많아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다.

세트의 유지보수와 재료의 무게 및 예산을 고려해 시멘트 등의 인조물을 첨가한 부분도 있지만 고증범위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했다. 특히 문짝 디자인, 단청작화 및 위치 크기·색감과 같은 미세한 부분까지도 고증위원들의 2~3차에 걸친 고증과 재시공으로 만들어져 금방이라도 그 시대 전장 터의 함성이 울려 퍼질 것 같은 기운이 느껴진다.


왜군진지(성천면).


석불산영상랜드 - 국내 유일 최대의 왜관거리가 있고 삼도수군통제영이 조성돼 있다. 특히 석불산 정상에서 굽어보는 서해의 낙조와 운해는 천하제일로 꼽힌다.


군선세트(격포항).


군선세트 - 시간의 바다를 건너 부활한 ‘거북선’이 있는 곳. 길이 20m, 폭 7m, 높이 15m, 무게 80t에 달하는 거북선은 300마력의 엔진을 탑재하고 있으며 50명의 인원을 태우고 시속 20km로 운항할 수 있다.


전라좌수영세트(궁항).


전라좌수영세트 -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큰 칼 옆에 차고….’란 시조 구절에 등장하는 수루가 있다. 동헌, 내아 등을 비롯 총 19동의 건물이 들어서 있다.


조선군 진지(위도).


부안영상테마파크 - 성곽, 왕가, 서민촌까지 원스톱 촬영이 가능한 종합촬영장으로 각광받고 있는 곳.



찾아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부안IC→부안읍→지방도 30번→석불산영상랜드(부안군 하서면)→군선세트(격포항)→전라좌수영세트(궁항)→부안영상테마파크(부안군 변산면)
여수 호국사찰=이준엽 기자ㆍKBS 이순신 세트장=노병철 기자 |
2005-05-31 오전 10: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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