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수(智首) 스님은 내가 운문암(雲門庵) 선원에서 연이어 두 번 살 때 여름 안거를 같이 산 스님이다. 스님은 전 철에 눈이 많기로 유명한 수도암(修道庵)에서 입승을 살며 겨울 안거를 마치고 운문암으로 오셨다.
나는 그때 불전 예불과 청소 담당인 지전(知殿) 소임을 살았고, 지수 스님은 한주(閒主) 소임을 사셨다.
운문암은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구름과 안개로 유명하다. 어떤 때는 며칠씩 구름에 싸여 햇빛을 볼 수 없을 때도 있었다. 산도 구름, 하늘도 구름, 산 밑도 구름이어서 그야말로 고립무원이 되어버린 때도 많았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방문을 열어놓고 산 아래에 펼쳐진 광경을 보며 단정히 앉아 차를 마시는 스님의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스님은 그렇게 차를 좋아하시고 꽃과 새 같은 자연에 관심이 많았다.
지수 스님은 일반 선승의 경력에 비교하면 화려한 편이다. 스님은 한때 송광사에서 강사를 역임하시고 대흥사에서 수련원장을 하며 재가불자들을 지도했다.
그러다가 해외 포교에 대한 원력이 있으셨는지 영국에 포교당을 개원하였다. 10여 년 동안 영국이나 포르투갈 등 유럽을 오가며, 선(禪)을 지도해서 무명(無明)에 싸여있는 외국인들에게 혜안을 밝혀주었다. 스님은 지금도 안거가 끝나면 유럽을 돌며 법회를 열고 참선 지도를 하는 일을 계속 하고 있다.
보통 스님들이 직책을 갖게 되면 그 달콤함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게 된다. 마치 칼날 위의 꿀을 혀로 맛있다고 핥아먹고 있는 격이다.
그러나 지수 스님은 그런 생활을 접고 당당하게 선(禪)의 길을 택했다. 이판과 사판의 길은 둘이 아니며 하나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요즘 본사 주지나 총무원 소임을 마친 스님들이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걸망을 지고 선원에 가는 모습을 보면 같은 수행자로서 존경스럽다.
내가 지수 스님을 처음 보았을 때의 느낌은 깔끔하고 깐깐함 그 자체였다. 그러나 나중에 안 일이지만, 작고 아름다운 것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따뜻한 마음도 가지고 계셨다.
스님은 점심 발우공양이 끝나면 스님의 상징인 까만 선글라스와 밀짚모자를 쓰고 지팡이를 들고 제일 먼저 산행을 나서곤 했다. 나를 비롯해 몇몇 젊은 스님들이 스님의 산행에 가끔씩 동행을 했다.
한번은 의견이 모아져서 절에서 가인봉까지 속도를 높여 가기로 한 적이 있었다. 거의 십리 거리의 산길을 거의 뛰다시피 하였다. 지수 스님이 앞장서서 참나무 숲과 돌밭 길을 지나고 시누대나무 사이를 번개처럼 달렸다.
스님은 얼마나 체력이 좋은지 오히려 젊은 스님들이 뒤쳐져서 낙오자가 생겨났다.
스님은 중년에 접어들었지만 체력은 넘쳐흘러 젊은 사람들도 쩔쩔맸던 그런 기억이 난다. 그런만큼 스님은 몸 관리를 철저히 하셨다.
젊은 스님들이 해제철이라고 해서 몸을 함부로 놀리거나 아니면 공부한답시고 몸을 다 버려서 고생할 때도 스님은 아픈 티를 내지 않았다. 사실 수행자가 몸이 아픈 것은 자기 자신이 마음을 잘못 쓰거나, 아니면 몸 관리를 하지 않고 게을러 그런 경향이 많다.
지수 스님은 자기 관리에 철저했다. 건강도 수행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그렇게 스님과 산행을 하면서 나는 스님에게 새나 꽃 이름에 대해서 많이 배웠다. 운문암의 상왕봉과 사자봉 주위에는 내가 모르는 이름모를 꽃들이 무수히 피어났다. 물레나물, 동자꽃, 노루오줌풀 같은 꽃들은 다 운문암 주위에 피는 꽃인데, 모두 다 지수 스님에게서 처음 듣고 배운 꽃이름들이다.
스님은 꽃말에 얽힌 이야기도 구수하게 해주었다. 그중에서 며느리밥풀 꽃에 얽힌 이야기는 지금도 기억에 남는 슬픈 이야기다.
또 아름다운 새소리가 들리면 저 소리는 되지빠귀다, 으스스한 저 소리는 호랑지빠귀다 하며 자상하게 가르쳐 주었다. 내가 매일 오르는 상왕봉 등성이에서 매일 콧대높게 울어대는 새소리가 휘파람새라는 것도 스님에게 배웠다.
스님은 현재 길상사에서 시민선방의 선원장을 맡고 계신다. 이제 안거가 시작되면 스님은 번잡한 도심을 떠나 다시 걸망을 싸서 선원으로 들어갈 것이다.
직책이 따라다니면서도 흐르는 강물처럼 거기에 얽매이지 않는 스님, 녹차를 즐기는 스님, 꽃과 새, 자연을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스님, 젊은 스님들이 잘못하면 지적하고 꾸중할 줄 아는 깐깐한 스님.
스님의 수행이 날로 수승해져서 황벽 스님의 시구(詩句)처럼 ‘뼈에 사무치는 추위를 만나고 나서, 코를 찌르듯 진한 매화 향기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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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성 스님은 괴산 공림사에서 출가했다. 중앙승가대를 졸업했고 매 안거마다 송광사, 운문암 등에서 참선정진하고 있으며 현재는 충북 청원 현암사에서 총무소임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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