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건집 교수의 연표로 보는 차 문화사>
30. 조선시대 ⑤
고려의 차 행사가 주로 사찰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데 반해, 조선은 서서히 왕실의 종묘나 봉선다례를 위주로 변화되지 시작했다. 따라서 찻일이 사찰보다는 왕실 제례나 사신 맞이 행사에서 자주 나타난다. 이에 유학자들이 차를 많이 즐겼고, 그 중에서도 점필재의 문하들이 깊은 차의 정신세계를 추구하게 된다.
일본은 선진문화에 대한 욕구로 유교 경전에 관한 지식이나 대장경을 얻기 위해 꾸준히 사자가 왔다. 그리고 상시(商市)도 허용되어 왕래가 잦았다.
한편 사찰은 그 수를 줄이고 새로운 창건을 막았으며, 풍속의 순화를 위해 예(禮)의 규범을 정비했다. 국토의 현황을 파악하려고 팔도지리지나 동국여지승람 등을 편찬했으니, 그 기록들 속에 차에 관한 것들이 실렸다. 은제(銀製) 다관에 관한 것도 보인다.
중국은 문사 차인들이 나와 차에 관한 기록들을 저술하여 <다보(茶譜)> <운림유사(雲林遺事)> <품다요록보(品茶要錄補)> 등 전대에 부족했던 부분들이 보충된다. 일본은 계속 사찰 중심의 차가 이어졌다.
① 이목(1471~1498): 호는 한재. 김종직의 문하로 사부(詞賦)에 뛰어났다. 중국을 다녀오고 스승의 영향을 받아 차를 좋아해서 명문인 <다부(茶賦)>와 다시를 남겼다. 다선(茶仙)으로 추앙 받는다.
② 김종직이 다원을 만들어 백성들의 공다세(貢茶稅)를 납부해 주었다.
③ 3월에 대왕대비와 인수대비 그리고 왕대비가 광릉에 제사하고 봉선전에 다례를 올렸다.
④ 선초부터 정비한 오례(五禮)에 관한 것을 신숙주 등이 완성한 책으로 접빈다례의 내용이 들어 있다.
⑤ 대마도주가 우리 사신을 처음 다례로 맞았다.
⑥ 김안국(1478~1543): 호는 모재. 김종직의 문하인 김굉필에게 사사했다. 찬성을 지낸 차인으로 그의 글에 ‘홍다(紅茶)’가 나온다.
⑦ 8월 인정전에서 중국 사신에게 저포, 호피 등과 작설(雀舌) 두 말을 주었다.
⑧ 문징명(1470~1559): 명대의 문인 서화가인 차인이다. <용다록고(龍茶錄考)>를 썼다. 직접 차를 끓이고 품평하고 그윽한 아취에 젖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았다. 그림으로는 ‘품다도’와 ‘혜산다회도’가 유명하다.
⑨ 구준이 주자의 학설을 엮은 <가례의절>에는 당시의 산차를 우려마신다고 했다.
⑩ 정백이: 명대 사람으로 <품다요록보>를 남겼다.
⑪ 서정경(1479~1511): 명대 문인으로 시를 잘 지어서 ‘오중사자(吳中四子)’에 들었으며 차를 좋아해서 여러 편의 다시를 썼다.
⑫ 주우빈: 명나라 헌종의 여섯 째 아들 익왕(益王)이다. 그는 차를 좋아해 <다보> 12권을 편찬했다.
⑬ 고원경(1487~1565): 명대 차인으로 <다보> <운림유사> 등의 저서를 남겼다.
<한국>
조선시대
1471 이목(李穆)의 출생 ①
점필재 함양에서 다원 ②
광능에서 별제(別祭) 다례
1472 일본 사신에게 후차를 내리다
1473 봉선전 다례 ③
1474 <국조오례의> 완성 ④
봉선전이나 왕실제례에 술 대신 차를 쓰게 함
1475 봉선전 다례
1476 대마도주 김자정을 다례로 맞다 ⑤
사신행다례를 10여회 행함
1477 사찰 창건 금지령
1478 동문선, 팔도지리지 완성
김안국(金安國)의 출생 ⑥
일본에 ‘밀판다식’을 주다
@ 신숙주 수미왕사 차 선물
1481 <동국여지승람> ⑦
중국 사신에게 차를 주다
봉선전 다례
1485 상인들 왜인(倭人)과 상시 허가
1486 전라도 공부(公賦) 공역(貢役) 과중
1488 사치스러움을 다례로 간소화하자는 상소(유자광)
<중국>
명대
1470 문징명(文徵明)의 출생 ⑧
1472 산서, 섬서, 하남 등지에서 다음 해 조세 선납
1474 구준(丘濬)의 <가례의절(家禮儀節)> ⑨
@ 정백이(程伯二)의 활동 ⑩
1479 서정경(徐禎卿)의 출생 ⑪
@ 주우빈(朱祐檳)의 활동 ⑫
1487 고원경(顧元慶)의 출생 ⑬
<일본>
@ 강호성(江戶城)에 온 상품 중 관동(關東)의 차가 있었다
@ 촌전주광(村田珠光)이 대자사에서 정법안장(正法眼藏)과 묵보(墨寶)를 받다
1486 족리의정이 승려 등견을 조선에 보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