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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美학자 야나기 무네요시의 <미의 법문>

이 사람에 대한 평가는 양극단을 달린다. 일본인으로 조선의 예술을 사랑해 식민통치를 반대할 만큼 양심적인 지식인이거나 호도된 한국인의 미의식을 정착시킨 사람.

바로 일본 미학자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1889~1961)다. 그는 누구도 ‘예술품’이라 생각하지 않았던 도자기나 공예품을 ‘민예(民藝)’라 칭하고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민예운동의 창시자로, 일본 미술의 발견자라 평가받고 있다.


야나기는 조선 사발에서 범부성불의 가능성을 읽어낸다. 사진은 일본 대덕사에 소장된 기자에몽.


이러한 야나기 무네요시는 1916년 우리나라를 여행하며 합천 해인사와 경주 불국사, 석굴암 등을 답사한 후 조선 예술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는 조선을 동양 민예의 총화라 여겼고, ‘조선의 소반’ ‘조선의 항아리’ ‘석굴암의 조각에 대하여’ ‘조선과 그 예술’ 등 조선의 미학에 대한 글을 신문과 잡지에 기고했다.

또한 당대 일본 총독부의 광화문 말살정책을 저지하려 노력했고 일본의 조선 수탈정책과 제국주의를 비판하기도 했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해 대한민국 정부는 1984년 9월 야나기에게 ‘보관문화훈장’을 추서했고, 그의 민예관은 미술사학자들에 의해 계승돼 오늘날까지도 우리나라 미의식의 기반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야나기의 미의식은 비판의 도마에 오르기 시작했다. 그의 민예 운동이 오리엔탈리즘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자신의 직관과 심미안을 강조함으로써 정작 그 민예품을 쓰는 민중들은 이해할 수 있는 미의식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또한 그가 ‘한국의 미’로 내세운 비애(悲哀)와 애상(哀傷)이 나약함이나 패배의식, 식민지 숙명론 등을 저변에 깔고 있다는 것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

일본 미학자 야나기 무네요시의 미의식이 불교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보여주는 <미의 법문>
이처럼 야나기의 미의식은 한때는 ‘야나기 신드롬’으로 불리며 숭상 받았고 오늘날에는 ‘극복’이 학계의 주요과제로 거론될 만큼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반증이라 할 수 있다.

최근 출간된 <미(美)의 법문(法門)>은 야나기의 미의식이 그 사상적 기반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를 확연히 보여준다. 이 책은 불교미학에 관한 4부작 <미의 법문> <무유호추의 원> <미의 정토> <법과 미>를 번역한 것으로, 야나기 자신이 “미(美)에 관한 나의 사상을 총결산하고자 했다”고 할 만큼 그의 미학사상의 근본을 반추해 볼 수 있는 저술이다.

이들 책에서 야나기는 예술이 서양사상을 중심으로 해명되는 것을 비판하면서, 동양적 체험에 입각한 동양미학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이러한 미의식의 전거(典據)를 야나기는 불교에서 찾고 있다.

“가장 원숙한 동양적 관점은 불교사상, 특히 대승불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불교적 사색으로 미의 세계를 반성함으로써 서양인이 보지 못했던 수많은 진리를 밝혀낼 수 있을 것입니다.”

야나기는 동양 전통의 밑바탕에는 불교적 세계관이 자리 잡고 있으며, 미추(美醜)란 상대적이고 조작적이고, 인간의 분별에 의한 가치판단의 개념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따라서 아름다움과 추함을 초월한 불성(佛性)으로 돌아가는 방편으로서의 미학을 주장한다.

“지금까지 민예론은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내가 이 영역에 마음이 끌렸던 것은 처음부터 민예품에서 아름다움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범인(凡人)이 범인인 채로 이러한 아름다운 것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경탄이었습니다. 즉 미의 나라에서도 중생제도의 비원이 완수될 수 있는 가능성을 민예를 통해 어렴풋하게나마 확인했던 것입니다.”

도자기나 공예품을 통해 ‘범부성불(凡夫成佛)’이나 ‘불이(不二) 사상’을 읽어내려 했던 미학자이자 종교철학자인 야나기 무네요시. <미의 법문>은 아픈 몸을 병상에 누인 상태에서도 자신의 미학을 정리하려 했던 야나기의 집념과 심미안(審美眼)을 느껴볼 수 있는 책이다.

<미의 법문>(야나기 무네요시 지음, 최재목ㆍ기정희 옮김, 이학사, 1만2천원)

여수령 기자 | snoopy@buddhapia.com
2005-05-25 오후 6: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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