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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 연극인 손숙, 이윤택 국립극단 예술감독, 정동영 통일부장관, 최완수 간송미술관 연구실장, 소설가 한승원, 목판화가 이철수 등 이 시대 13명의 명사가 부르는 사모곡 또는 사부곡이 한 권의 책으로 묶어졌다. 제목은 <사랑합니다 내게 하나뿐인 당신>이다.
글 속의 지은이들은 이 책에서 코흘리개 유년시절 아이로, 마냥 어리광을 부리는 초등학생 시절로 돌아간다. 때로는 학업과 진로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반항하는 사춘기 소년소녀로, 사랑찾아 훌쩍 부모의 품을 떠나는 이십대의 청춘남녀가 되기도 한다. 그런 그들옆에는 언제나 든든한 성벽이자,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푸는 아름다운 궁전이자, 때로는 좀 떠나보고 싶기도 한 품을 가진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었다. 그들은 남다른 자식교육으로 사회 각계 저명인사가 된 지은이들을 있게 한 장본인이기도 했다. 지은이들의 부모들은 여러 공통점이 있었다. 지은이들을 키우는 동안 그들에게 긍정의 힘과 자신감을 불어넣고, 자율과 책임을 가르치고, 우리 것에 대한 미덕을 알게 해 주었다. 그것은 바로 ‘자식’이라는 나무에 정성스럽게 거름을 주며 거목으로 성장하게 이끈 빛나는 가르침들이었다.
김수환 추기경의 어머니는 옹기장수 아버지와 혼인해 일찍 남편을 여읜 뒤 평생을 가난에 쫓겨 살면서도 ‘아비없는 자식’이라는 말을 들어서는 안된다며 엄하게 교육했다. 찢어지게 가난했지만, 남들은 학창시절 김수환을 보면 귀하게 자란 부잣집 아들로 보았는데, “그것은 순전히 어머니가 가난 속에서도 귀하게 키우셨기 때문”이다. 김 추기경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신 분, 나를 있게 하고, 나를 가장 사랑하신 분”, “오로지 자식들을 피어나게 하기 위해 당신은 밑거름이 되신 분”이라고 어머니에게 헌사를 바친다.
이윤택 감독의 어머니는 집 밖으로 도는 아버지 때문에 평소 마음고생이 심했다. 이 감독 역시 아버지의 역마살을 잠재울 수 없었다. 그때부터 어머니의 잔소리가 시작됐지만, 바로 그것이 이 씨를 지켜주는 힘이 됐다. 항상 그의 어머니는 “누가 뭐래도 너는 이율곡 같은 선생이 될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을 준 것이 그를 절망에서 구해준 원동력이 됐다고 회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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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숙씨의 어머니 회상록은 참으로 가슴시리다. 열여섯의 어린 나이에 천석꾼의 2대독자로 귀하게 자라 지독한 이기주의자였던 아버지가 공부한다고 훌쩍 일본으로 떠나 새살림을 차렸다. 그쪽 아이들과 비교해서 내 자식이 못되면 안된다는 생각으로 어머니는 손숙씨 형제들을 들들 볶아댔다.
그런 어머니가 부당하게 느껴졌던 손씨는 무엇이건 해서 약올려 주고 싶었다. 그리고 손씨는 “지긋지긋한 집구석 미련없이 떠날거다”며 대학도 졸업하지 않고 가난한 연극배우 남자와 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집을 나갔다. 막상 집을 떠날 때 떠나는 것도 내다보지 않고 방안에 누워계시던 어머니가 안쓰러워 그녀는 소리내어 울고 말았다고 한다.
왜소함을 단단함과 야무짐으로 극복했던 한승원의 아버지는 소설가를 꿈꾸는 그를 무척 싫어했다. 어느 날 아버지는 한번도 쟁기질을 해본 적이 없던 그에게 쟁기짐을 지우고 일을 시켰다. 새때가 되자 아버지는 손수 사발에 술을 따라주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좌우간 가능하면 남의 그늘에 묻혀 살지를 않아야 쓴다. 내 불 내가 켜들고 내 게를 잡으면서 살아야 쓴다.” 한승원의 좌우명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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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가 홍신자의 어머니는 “여자는 남자와 달라 한번 혼인한 다음에는 배울 기회가 없으니 혼인 전에 남자보다 더 많이 배워놓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홍신자가 외국유학까지 하며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걸을 수 있었던 힘이다.
이렇게 삶의 지표를 제시해 주었던 지은이들의 부모들. 이들이 부모들에 대해 지금 갖고 있는 공통적인 생각은 뭘까. 바로 ‘풍수지탄(風樹之嘆)’이었다. 효도하고자 하나 이미 부모는 곁에 없어 슬프다는.
■ 사랑합니다 내게 하나뿐인 당신
김수환·한승원·최윤 외 지음 | 그림 장욱진
옹기장이 펴냄 | 1만8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