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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산의 진면목은 국립공원 매표소가 있는 홍류동 계곡에서부터 시작된다. ‘紅流洞’은 가을이면 단풍의 붉은 그림자가 물길 따라 흐른다고 해서 붙은 이름일 뿐, 동네 이름이 아니다. 그러나 홍류동 계곡엔 이름과 달리 단풍 드는 활엽수보다 소나무가 더 많다.
홍류동 계곡은 원앙계곡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원앙들이 많이 서식하고 있다. 크고 작은 소(沼)마다 몇 쌍씩 노닐고 있다. 원앙은 오리과의 새들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새이다. 암컷은 적들의 눈에 잘 띄지 않은 보호색을 띠고 있지만, 수컷은 외모에 공을 엄청 들였다.
주차장에서 해인사 큰 절까지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다. 이 길 뿐만 아니다. 가야산의 크고 작은 절들은 한결같이 시멘트를 좋아한다. 계곡 등산로가 아니면 도무지 흙길을 밟아볼 기회가 없다.
홍류동 숲길과는 달리 일주문까지의 진입로는 온통 활엽수림이다. 특히 해인사 주변 활엽수림에서 눈에 띠는 것은 겨우살이 군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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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影池)는 물의 투영성(投影性)을 이용한 ‘그림자 연못’이다. 외국의 영지는 가까운 주위의 건물들을 물 위에 비치게 하는 차경(借景)인 데 비해 우리 사찰의 영지는 수 km나 떨어진 곳의 자연물을 물 위에 비치게 하는 인경(引景 : pulled scenery)이다. 해인사 영지가 그렇다.
영지의 인경을 방해하는 나무들을 솎아내고, 물 위에 띄운 연꽃을 걷어내어 영지의 기능을 되살렸으면 한다. 그리고 요사채에서 정화되지 않은 생활하수가 그대로 영지로 유입되는 바람에 녹조류 해캄이 군데군데 엉켜있을 정도로 수질이 떨어져 있다.
해인사의 가람배치는 가장 높은 곳에 장경각을 안좌시키고, 그 아래쪽에다 대적광전을 놓고, 다시 석탑과 석등을 그 아래 공간에 구광루와 함께 배치했다. 해탈문은 중심축에서 약간 벗어나게 놓고, 아래쪽 봉황문과 일주문은 다시 중심축으로 되돌려 놓았다. 이러한 배치는 자연지형과의 합일을 도모한 고도의 슬기이다. 전통건축의 기술은 얼마나 자연에 합일되느냐에 성패가 달려있다.
일주문에서 일직선상에 사천왕문인 봉황문이 있다. 직선은 팽팽한 대립을 강조한다. 이 팽팽한 대립을 원융으로 바꿔놓는 것이 주변의 숲이다. 주로 키 큰 나무들로 조경되어 있지만, 침엽수와 활엽수들이 골고루 배치되어 대화엄을 보여주고 있다.
대적광전은 가파른 석축 위에 간살이가 넓어서 안정감을 주고 있다. 조선 중기 문인 정시한(丁時翰)도 <산중일기>에서 ‘섬돌이 높고 견고한 것과 불전이 장엄하고 기교한 것과 불상이 높고 엄숙한 것이 마치 하늘의 조화인 듯하고 인력(人力)으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닌 듯했다’고 격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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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적광전을 돌아가면 가파른 석축 위에 장경각(藏經閣)이 안좌해 있다. 장경각의 문화재 공식명칭은 일제가 지은 ‘대장경판고(經板庫)’이다. 단순히 ‘경판을 보관하고 있는 창고’라는 뜻이다. 이제는 대장경판전(大藏經板殿)으로 고쳐서 불러야 한다. 추사 김정희도 서울 봉은사에 있는 경판고를 일찍이 ‘판전(版殿)’으로 부르고 현판까지 써서 걸었다.
건축은 자연의 완성이라는 말이 있다. 경판전이 그러한 명제를 여실하게 증명해주고 있다.
경판전 위치는 햇볕을 적절하게 받을 수 있도록 고려된 서남향이다. 자외선은 이끼나 곰팡이를 막아주고, 적외선은 찬 흙바닥을 데워서 공기의 대류를 촉진시켜 온도를 균일하게 해준다. 경판전 천정이 연등천정인 까닭은 우물천정을 했을 때 생길 수 있는 벌레들의 서식을 차단하기 위함이다.
경판전 광창은 남창과 북창의 크기와 배열이 각기 다르다. 이것은 외부 공기가 큰 창을 통해서 들어오고 작은 창을 통해서 나가도록 하기 위함이다. 또, 그렇게 함으로써 외부의 건조한 공기가 경판전 내부에 골고루 퍼지게 하였다.
얼마 전, 경판전 내외부의 일교차를 조사 비교한 바에 따르면 외부의 일교차는 10도까지 이르지만, 내부의 일교차는 기껏 5도 정도였다고 한다.
경판전의 흙바닥은 온도의 차이로 생기는 습기를 흡수하도록 한 배려로 보인다. 창건 당시 한 자 두께로 흙과 소금과 숯을 깔았는데, 이는 습기와 병충해의 방지를 위한 것으로 보인다.
경판전 뒤쪽 담장 너머에 수미정상탑이 자리하고 있다. 해인사가 앉은 형국은 피안으로 가는 한 척의 행주(行舟)이다. 배는 돛대가 있어야 한다. 높이 약 14미터의 팔각칠층석탑이 바로 해인사의 돛이다. 말하자면, 풍수비보로 세운 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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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대 전나무는 신라 말 고운 최치원이 짚고 다니다가 거꾸로 꽂아둔 전나무 지팡이가 자라서 된 것이라고 한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대개의 전나무가 두 팔을 V자형으로 한껏 벌린 형태인 데 비해 학사대 전나무는 가지가 모두 아래로 처져 거꾸로 자라고 있는 느낌을 준다.
해인사는 또 산내암자를 16개나 거느리고 있다. 그리고 저마다 독특한 암자문화들을 갖고 있어서 암자를 순례하는 맛이 쏠쏠하다.
가야산의 녹지 자연도는 8등급이 전체의 61.7%로서 자연보존성이 양호하다. 8등급이란, 20~50년생으로 이루어진 원시림 또는 자연식생림에 가까운 2차림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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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산 정상 주변에 이르면 신갈나무숲에 쫓겨 올라온 소나무를 비롯하여 추위에 잘 견디는 잣나무와 구상나무 등이 관찰된다. 해발이 높아지면 그에 상응해서 기온이 떨어지기 때문에 잣나무가 나타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잣나무는 건축재로서도 부족함이 없다. 경판전인 수다라장 기둥도 바로 이 잣나무로 세운 것이다.
구상나무는 소나무, 잣나무와 함께 가야산 3대 침엽수이다. 구상나무는 해발 1,350미터에서부터 1,420미터 사이의 아고산대에 나타나는 우리나라 특산종으로, 가야산 구상나무는 덕유산과 더불어 분포의 북한계(北限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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