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 우리 땅 독도에 연등이 걸렸다. 오랜, 아주 오랜 세월동안 사람들은 독도를 ‘지도상의 땅’으로만 생각해왔다. 밟을 수 없었기에, 느낄 수 없었기에 머릿속 저편에만 있었던 땅. 그 땅에 부처님의 자비광명으로 빛나는 연등이 밝혀졌다.
| ||||
조계사(주지 원담)는 5월 10일 사회국장 범성 스님과 실무자 4명을 독도에 파견해 20여개의 ‘독도 지킴이 등’을 등대 주위에 설치했다. 이날 행사에는 독도를 방문한 서암사 신도 10여명도 동참했다.
범성 스님은 “최근 불거진 일본의 역사왜곡 문제를 찬찬히 되돌아보는 것은 물론 독도에서 외롭게 각자 소임을 수행하고 있는 경비대원들을 위로하기 위해 등을 설치하게 됐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 ||||
#부처님도 어찌할 수 없는 독도 입도(入島)
지난 3월 28일부터 독도 관광이 전면 자유화 되면서 물밀듯이 밀려오는 관광객들. 그러나 막상 독도에 발을 디딘 사람은 많지 않다.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 동해의 특성상 1년 중 40여일만 독도 입도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조계사 실무자들의 입도도 쉽지 않았다. 5월 9일 새벽 3시 서울을 출발, 오후 4시 40분경 독도에 도착했으나 파도가 높아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5월 10일 오전에도 실패하기는 마찬가지. 다행스럽게도 5월 10일 오후 부처님이 마음을 내셨는지 30분간 독도에 입도할 수 있었다. 서울을 출발한지 34시간 만이었다.
5월 9일 친구들과 함께 독도를 찾은 홍해월(58 ․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씨는 “독도를 본 것만으로도 만족하지만 직접 땅을 밟았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고 아쉬움을 표한다.
| ||||
#한국 역사상 최초로 독도에서 연등이 빛을 내다
5월 10일 독도에 도착하자마자 실무자들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30분 동안 연등을 설치하고 위령재를 봉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조계사 김경석 관리계장과 심재선 주임은 연등을 갖고 등대로 올라갔다. 그리고 재빠르게 설치한다. 등을 설치하고 나서는 예를 갖추고 장병들과 함께 고불문을 낭독했다.
“오늘 저희가 밝힌 등이 평화의 씨를 뿌리는
작은 등불이 되도록 서원드립니다.
우리를 침략한 저들이 저지른 만행의 과보를 씻고,
뜻을 세우다 부처님의 땅으로 가신 많은 영령들의 혼을 달래는
자비의 등불이 되도록 서원드립니다.”
| ||||
#경비대와 하나가 된 조계사
김 계장이 등을 설치하는 사이 범성 스님은 독도경비대원, 불자들과 함께 독도를 지키다 순국한 5명의 영령들을 위한 위령재를 봉행했다.
‘관음시식’으로 위령재가 시작되자 독도를 찾은 불자들도 합장을 하며 자연스럽게 동참한다. 독도경비대원 조준형 수경은 “얼굴도 모르는 선배들이지만, 그분들이 있었기에 저 역시 열심히 근무할 수 있는 것 같다”며 예를 올렸다.
경기도 평택시 서암사 신도라고 자신을 소개한 박갑례(58)씨 역시 “스님이 이렇게 직접 오셔서 위령재를 올리고 평화를 발원하게 돼 자랑스럽다”고 덧붙였다.
위령재를 마치고 범성 스님은 경비대원들에게 위문품을 전달했다. 독도경비대 부대장 석장준 경장은 “연등을 설치하고 위령재를 지내준 것도 고마운데 이렇게 지원품까지 받게 돼 감사할 따름”이라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함께 위령재를 봉행한 불자들도 십시일반 주머니돈을 챙겨 ‘성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5월 18일까지 동해의 모든 생명들과 같이 숨을 쉬게 될 연등은 이미 한국과 일본은 물론 온 인류의 ‘생명과 평화’를 기원하며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다.
| ||||
#독도에 연등이 설치되기까지
조계사가 독도에 연등을 설치하게 된 것은 한 종무원의 제안에서 출발했다. 관리계장을 맡고 있는 김경석씨가 아이디어를 낸 것이다. 조계사 시설관리를 총괄하고 있는 책임자다운 발상이었다.
김씨는 “최근 일본의 역사왜곡과 ‘다케시마의 날’ 제정을 계기로 독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에서 아이디어를 제안했다”며 “부처님이 모든 중생을 똑같이 사랑하고 아끼신 것처럼 세계의 국민들이 평화롭게 살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씨는 또 “불자로서 독도에 등을 설치하게 된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애초 해군 경비정을 이용해 조계사 주지스님을 비롯한 주요 소임자들과 신도회 관계자들이 함께 독도를 방문하려 했으나, 막판에 해군 측이 난색을 표해 결국 정기여객선을 통해 독도에 입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