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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축특집]의식주에서 찾는 느림의 미학
천연염색ㆍ 다도ㆍ 사찰음식ㆍ 흙집짓기에서 찾는 느림
40여년간 전통천연염색을 연구하며 그 맥을 이어오고 있는 경주 해회선원 무산 스님이 치자물을 들이고 있다.


옷은 정성이다

너무나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이를 쫓아가기라도 하듯 항상 입고 있는 옷조차 유행 따라 취향 따라 너무도 쉽게 입고 버린다. 하지만 지금도 실을 뽑아 천을 만들고, 염색하는 까다로운 과정을 감수하면서도 우리옷을 직접 만들어 입는 사람들이 있다. 해회선원의 무산 스님, 누비장 김해자씨, 천연염색을 고집하는 한복 디자이너 이나경씨 등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에게 “직접 옷을 만들면 시간도 많이 걸리고 귀찮지 않느냐”고 물으면 “옷은 단순히 몸을 가리고 맵시를 내기 위한 소모품이 아니다”고 입을 모은다. “직접 만들어서 땀과 정성이 배어 들어간 옷은 단순한 의복과 달리 자기자신과의 일체감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옷에는 모름지기 정성이 들어가야 한다. 정성들여 만든 음식 맛이 다르듯이, 작은 바느질선 하나에 따라서도 옷맵시가 달라진다. 염색 또한 그러하다. 자연의 빛깔이 그대로 천에 내려앉은 천연염색은 화학염색이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깊이 있고 맑은 색을 낸다.

뿐만 아니라 천연염색은 자연과 같은 색감을 지녀 눈을 피로하지 않게 하고 정서를 차분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자연의 빛깔이 곧 인간의 마음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또 화학염료를 쓰거나 고착제, 유연제를 첨가하지 않기 때문에 환경을 덜 오염시키고 인체에 해롭지 않다.

이렇게 이점이 많지만 작업과정은 긴 시간과 인내를 요한다. 천연염색을 하는 이는 우선 차분하고 느슨한 마음으로 작업에 임해야 한다. 보통 화학염색은 한 번에 원하는 색을 얻어내지만, 천연염색은 햇빛, 바람 등에 따라 모두 다른 색을 내므로 엷게 여러 차례 반복 염색해야 한다. 이런 수십 차례의 반복을 거쳐야 비로소 자연의 참 빛깔을 얻을 수 있다. 여러 번 물들이는 수고로움 뿐 아니라 염색 과정 과정마다 들어가는 정성 또한 남달라야 한다.

회분을 얻기 위해 조개를 구워서 곱게 빻고, 염료가 섬유에 염착되도록 만드는 매염제 역시 간편한 화학매염제 대신 콩대나 짚을 태운 잿물로 쓴다. 화학매염제는 해로운 중금속을 함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토양과 수질을 오염시킨다. 어떻게 자연을 해치고 얻어낸 색에서 자연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단 말인가. 천연염색을 한다면 비록 불편하더라도 항상 환경을 생각하는 자세를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지론이다. “자연의 색 역시 자연의 일부입니다. 그렇다면 더 좋은 색을 얻기 위해 다른 것을 소모할 것이 아니라 보다 도움이 되고, 살아있는 모든 것들과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염색을 마친 천을 한 땀 한 땀 바느질해서 완성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의 이유이다. 요즘 대량으로 만들어지는 옷은 재봉틀 작업이 들어가지만 그렇게 만들면 옷자락의 흐름이 자연스럽지 못하다고 한다.

천연염색 한복디자이너 이나경(52·아라가야 대표)씨는 “귀찮고 힘든 과정이지만 오랜 기다림 속에서 원하는 색이 우러나오고 손바느질로 옷을 완성했을 때 얻어지는 희열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말한다.

화려하고 간편한 것을 쫓고, 변화무쌍한 유행에 따르는 것이 미덕인 현실에서 느리지만 일관된 삶을 살기란 결코 녹록치 않다. 그것은 단순히 화학염료를 쓰지 않고 옛 전통을 고수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다소 불편하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더욱 풍성해져가는 삶이 있기에 이들은 오늘도 느림의 삶을 선택한다. 편리의 달콤한 유혹을 포기하면서까지. 느리지만 꾸준하게.

이은비 기자


찻물이 우러나오기까지 천천히 다도의 과정을 즐기며 한 호흡을 고르는 것은 느림 속에서 찾는 삶의 멋이다.


차 한잔의 여유

물이 끓는다. 끓는 물을 그릇에 붓고 잠시 식힌다. 다관과 찻잔을 따뜻하게 데운 후 찻잎을 덜어 다관에 넣고 더운 물을 붓는다. 태곳적 비밀을 간직한 듯 또르르 말려 있던 찻잎이 기지개를 펴며 남녘의 태양열과 녹음을 뿜어낸다. 찻물이 충분히 우러나기를 기다려 찻잔에 따른다. 차 한 잔이 완성되는 순간이다.

차 한 잔 마시는 일이 뭐 그리 복잡하냐고 물을 수 있다. 하긴 자판기에 동전 몇 개만 넣으면 녹차 캔 음료수를 마실 수 있는 요즈음, 찻물을 끓이고 다구를 데우고 차가 우러나기를 기다리는 일은 ‘시간낭비’로 취급받기 십상이다.

하지만 차를 마시는 것은 단순히 마른 목을 축이는 일만은 아니다. 찻잎을 우리며 기다림의 여유를 배우고 그윽한 차 향기 속에서 자신을 되돌아보며 삶의 의미를 찾는 일. 그것이 바로 차를 마시는 이유다.

많은 사람들이 거부감고 무거움을 느끼는 다도(茶道)나 다례(茶禮) 같은 문턱을 넘고 나면, 차에서 느림의 여유를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다. 소설가 한승원씨는 “차인들이 흔히 말하는 다선일미(茶禪一味)란 차를 마시는 일이 순리대로 흘러가는 것을 말한다. 가장 편한 삶 자체가 순리이고, 그것이 곧 다선일미의 차 정신”이라고 말한다. 물론 이때의 차는 고즈넉한 산사나 엄숙한 다실에서 마시는 차만을 일컫지는 않는다. 사무실이나 가정에서 마시는 차 역시 생활에 여유를 가져다준다. 경기도박물관 등에서 차를 가르치고 있는 김미려씨(한국차인연합회 다례랑지회장)는 “처음엔 차 마시는 절차의 복잡함이나 다구 준비의 번거로움 때문에 차를 꺼리던 사람들도 조금만 익숙해지고 나면 차 마시는 시간을 자기 수양의 시간으로 삼게 된다”고 말한다.

“차와 다구의 가격은 크게 중요치 않습니다. 자신이 차를 대하는 마음을 어떻게 갖느냐에 따라 차는 단순한 건강음료가 되기도 하고, 자기 수양의 방편이 되기도 합니다.”
차에서 삶의 여유를 찾는 일이 ‘베테랑 차인’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은 아니다. 지난해 처음 차를 접하고 숙명여대 한국음식연구원 ‘티 테라피’ 강의를 듣고 있는 한혜진씨에게 차는 일상사의 시름과 스트레스를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매개체다. “찻물이 끓고 차가 우러나기를 기다리기 위해서는 우선 내 마음을 먼저 가라앉혀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는 한씨는 “가족이나 친구, 직장 동료들 간의 대화에서도 차는 분위기를 부드럽게 이끌어주는 일등 공신”이라고 말한다.

차 생활 15년째를 맞는 윤영애 한국차문화협회 수원지부장은 여기에 더해 “차는 자연과 이웃을 돌아보게 한다”고 말한다. 윤씨는 “하나하나 정성들여 딴 찻잎을 뜨거운 솥에서 덖고 비비기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차를 보며 자연과 사람의 소중함을 느끼게 된다”며 “때문에 혼자 차를 마실 때는 내 마음을 반추해보고, 여럿이 함께 차를 마실 때는 상대에 대한 나눔과 배려의 정신을 배우게 된다”고 설명한다.

최근 우리 사회의 최대 웰빙 식품으로 떠오른 차. 단순히 병을 예방하고 건강을 지키기 위해마실 수도 있다. 하지만 천천히 우러나는 찻물을 감상하며 가쁜 숨을 고른다면, 삶이 좀 더 여유로워지지 않을까?

여수령 기자


순천 선암사 산내 암자 운수암에서 만든 무말랭이.


자연 버무리기

순천 선암사 암자 가운데 북쪽에 위치한 운수암(雲水菴. 주지 지명)은 태고종 유일의 비구니 교육도량이다. 시기적으로 입맛도 없고, 나른한 봄날이 한창인 이즈음. 운수암 대중들의 발우에는 붉은빛이 도는 무말랭이가 공양의 즐거움을 만끽하게 한다.

사시사철 언제든 먹을 수 있는 무말랭이는 사찰뿐 아니라 일반의 밥상에 즐겨 오르는 대표적 밑반찬이다. 보기에는 말린 무에 양념을 버무린 간단한 음식 같지만 밥상에 오르기까지는 여간 복잡하지가 않다.

운수암은 지금도 대중들이 직접 밭을 일궈 음식의 대부분을 자체 조달한다. 9월 경 처서 무렵이면 김장무를 파종해 11월경 김장을 끝내고 무를 다듬기 시작한다. 무말랭이에 쓰일 무는 동글동글하고 이쁘장하며 무청이 많아야 달고 맛있게 된다. 대중방과 마루에서 무를 채로 썰어 채반지에 널어 말릴 때면 도량이 온통 하얀 무로 뒤덮여진다.

운수암은 무를 비교적 크게 써는 편이다. 손가락 크기의 두께여서 씹을 때 아삭아삭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채로 썬 무는 실에 꿰어 요사채 벽면에 걸어둔다. 닷새쯤 지나면 길다란 무타래가 5분의 1쯤 줄어든다. 밤에는 서리를 맞고 낮에는 싸늘한 가을햇볕에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20여일을 말리면 하얗던 무가 누렇게 변하며 나무처럼 단단해진다. 늦가을 왕성한 기운 속에서 말려야 무에 깊은 맛이 든다. 이처럼 깊은 산중에 자리한 운수암은 맑은 공기, 무농약 무, 따사로운 햇살 등 무말랭이 제조에 있어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음식은 먹을 때뿐 아니라 만들 때도 철이 있다. 무말랭이는 꼭 가을 김장무로 만든다. 요즘 나오는 봄 무나 철지난 무는 쉽게 썩고 제 맛이 나지 않는다.

무말랭이는 수분을 몽땅 빼내야 한다. 그러기위해 넓은 대중방에 널고 방바닥을 덮혀 완전히 말린 후 비닐에 담아 보관한다. 보관을 잘못하여 대기의 수분을 머금게 되면 무가 말랑말랑하며 곰팡이가 핀다. 이럴 때면 대중스님들은 방에서 쫓겨나고 대중방은 무말랭이 차지가 된다. 불을 때서 또 말려야하기 때문이다.

말린 무는 일년 내내 언제든 먹을 수 있다. 말려져있으니 쉽게 먹을 것 같지만 만만치가 않다. 일단 물에 불려 단단한 기운을 빼야한다. 너무 오래 불려서는 안되고 5분가량 따뜻한 물에 담갔다가 겨우내 묻은 먼지를 씻어낸다. 다시 양념을 한 간장에 6시간 담가두어 염분이 충분히 배게 한다.

그런 뒤 운수암만의 비법이 추가되어 천하제일의 무말랭이가 된다. 그것은 찹쌀죽이다. 김장김치에 죽을 넣듯 무말랭이에도 찹쌀죽과 표고버섯 등 갖은 양념으로 반죽한 후 마지막에 고춧가루로 마무리를 한다. 이렇게 완성된 운수암 무말랭이는 오래두면 둘수록 찹쌀이 삭혀져서 깊은 맛을 낸다. 그래서인지 운수암 무말랭이가 담긴 그릇은 항상 깨끗하다. 그대로가 양념덩어리인 무말랭이를 다 먹은 후 양념까지 밥에 비벼 먹기 때문이다.

현대인에게 육체의 병은 마음뿐 아니라 음식에 의한 공해병이 주원인이라 한다. 음식을 쉽고 빠르게 만들어 먹다보니 병도 쉽게 찾아드는 것이다. 정성껏 자연과 함께 버무려 만든 사찰음식을 통해 오늘의 세속병을 다스려봄직하다.

이준엽 기자


흙과 나무를 이용해 스스로 집을 짓는 흙집짓기 동호회 회원들.


흙은 숨을 쉰다

요즈음 흙을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 ‘잘먹고 잘살자’는 참살이 붐이 몰아닥치면서 병든 식탁과 함께 병든 집을 돌아보는 이들이 늘어난 까닭이다. 흙을 대신해 최근 1세기 동안 영화를 누렸던 콘크리트와 시멘트가 ‘친환경’의 무게에 눌려 갈 곳을 잃어버린 것과 대조적이다. 그에 비해 황토 등의 흙은 이 시대 건강한 주생활(住生活)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 재료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이 시기 흙을 주목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물론 건강을 지키기 위한 방편으로도 중시되지만, 이제는 흙을 통해 새로운 삶의 방식- ‘느리지만 올곧은 삶’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전국 곳곳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흙집짓기’ 움직임이 그것을 반영한다.

언제부터인지, 사람들이 흙을 직접 쓰다듬고 포개서 집을 지어 올리는 것에 관심 갖기 시작했다. 일반인이 흙집을 손수 짓기 위해서는 거쳐야 할 과정이 무척 험난하지만, 그들은 그야말로 맨땅을 일구어 무(無)에서 유(有)를 창출해 낸다.

흙집짓기의 원을 세운 이들은 집터 물색을 시작으로 집 세우기 과정에 돌입한다. 그리곤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앉아 집의 형태와 쓰임새를 고민하는 가운데 설계도면을 그린다. 그 과정에서 의견충돌도 일어나기 마련이지만, 아버지와 아들이 머리를 맞대고 속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드문 기회도 갖게 된다.

본격적인 집의 형태는 문꼴이 서면서 잡히기 시작한다. 이제는 흙을 이용해 벽체를 쌓아야 한다. 벽체 쌓기의 관건은 바로 흙을 반죽하는 일. 먼저 땅 깊은 곳에 숨어있던 흙의 속살을 뒤집고 버무린다. 짚을 썰어서 넣고 발로 이갠 다음에 다시 손수레에 퍼 얹어 대나무로 찌르고 친다.

포크레인으로도 가능한 일이지만, 꼬박 이틀간 손과 발로 치대는 정성을 따라갈 수 없다. 반죽을 끝낸 흙은 손끝에 착착 감긴다. 그들의 애정 어린 손길이 닿으면 닿을수록 흙은 빵반죽처럼 부드러워지기 때문이다. 그리곤 1주일간 숙성(?)의 기간을 맞는다. 그 기간이 없다면 흙의 거친 기운이 삭지 않아 갈라지는 경우가 많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렇게 부드러워진 흙은 이제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한다. 매끈하게 다듬은 통나무 토막을 곳곳에 끼우고 그 사이에 두치에서 세치정도의 흙을 매우 쳐서 꼼꼼이 채워넣는다. 통나무 토막을 망치로 두드려 반듯하게 고정하고 쌓아주는 것이 요령이다. 숙련이 돼서 일이 수월하다 하더라도 욕심을 내서는 안 된다. 하루에 한 자 정도, 높아야 두 자 이하로 쌓아야 한다. 무리하면 벽체가 기울거나 균열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것을 아는 까닭에 흙집 만드는 현장에서는 마치 흙과 같은 ‘찰진’ 대화와 웃음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흙벽쌓기가 마무리되면 껍질을 벗겨 한 달간 건조시킨 나무를 이용해 써까래를 올린다. 그렇게 흙집마련의 꿈은 현실화되는 것이다.

기다림없이 쌓고 바르면 끝나는 콘크리트ㆍ시멘트와는 달리 나무와 흙을 이용한 집짓기 과정은 오랜 기다림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기다림의 시간은 잊고 지냈던 삶을 오롯이 되받는 시간이다. 3년에 걸쳐 흙으로 만든 보금자리를 마련한 충북 진천의 김진수(38)씨는 “그 늘어난 시간 속에서 잊고 지냈던 ‘지금’을 배웠다”며 “속도에 지쳐 무감하게 스쳐 지나고 말았던 그 아름다운 세상의 현재를 이제서야 제대로 읽고 느낄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그들에게 느림은 곧 배움의 시간이었던 것이다.

강신재 기자





글ㆍ사진=이준엽ㆍ여수령ㆍ강신재ㆍ이은비 기자 |
2005-05-10 오전 11: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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