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당(碧岩)당 동일(東日) 대종사(大宗師) 원적과 관련, 조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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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장 스님은 추도사를 통해 “예로부터 조사들은 성(盛)한 것에서 쇠(衰)한 것을 보고 삶에서 죽음을 보아야 지혜로운 안목이라 했다”며 “오늘 큰스님께서 이렇게 화창한 봄날에 원적을 보이신 것도 바로 이 소식을 전해주고자 함이니 그 대자대비에 다만 머리가 숙여질 뿐”이라고 원적을 애도했다.
법장 스님은 또 “큰스님께서는 이렇게 80여 성상(星霜)을 하루같이 오직 반야지(般若智)로써 법등을 밝히고 대자비로써 후학을 이끌어주셨으니 그 공덕은 계룡산의 흙을 퍼서 서해를 막는다 해도 다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큰스님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종문(宗門)에는 요즘도 부끄러운 일도 적지 않습니다”라고 지적하고 “이에 종도들은 스님께서 굳이 꽃피는 봄에 입적한 뜻을 되새기면서 우리가 잘못한 일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제불제조(諸佛諸祖) 앞에 부끄럽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인지를 곰곰이 생각해볼 것”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추도사 전문.
추 도 사
벽암당 동일대종사님
신록은 산천에 푸르고 백화(百花)는 제방(齊放)하는 계절입니다. 그러나 이 좋은 계절에도 생멸의 법칙은 어김이 없으니 어제까지 붉던 꽃도 열흘을 넘기지 못하고 낙화(洛花)를 면치 못합니다. 그러므로 예로부터 조사들은 성(盛)한 것에서 쇠(衰)한 것을 보고 삶에서 죽음을 보아야 지혜로운 안목이라 했습니다. 오늘 큰스님께서 이렇게 화창한 봄날에 원적을 보이신 것도 바로 이 소식을 전해주고자 함이니 그 대자대비에 다만 머리가 숙여질 뿐이옵니다.
돌아보면 큰스님은 오늘 이 마지막 법문을 하시기 전에도 우리들에게 수많은 가르침을 남긴 종단의 원로이셨습니다. 한때 사판에 나와 불국사 주지, 동국학원 이사장, 중앙종회의장과 같은 주요 승직(僧職)을 두루 거치면서 스님이 보여준 행적은 지금도 종도들에게 큰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사무를 처리함에는 늘 원칙을 소중하게 여기시되 화합을 중시했고, 먼 미래를 내다보되 실용적 현실도 소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하여 스님이 지나간 자리에는 티끌만한 말썽도 생기지 않았으니 연꽃처럼 진흙에 발을 담그되 물들지 않는 처염상정(處染常淨)이 스님의 생전면목(生前面目)이었습니다.
큰스님께 저희들이 수학(修學)할 일은 실로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 중에서도 종도들이 오래오래 기억해야할 것은 원적에 즈음해서 조사(祖師)의 뜻을 묻는 제자들에게 ‘박수미회(拍手未會)에 작창가(作唱歌)라’ 즉 ‘박수도 치기 전에 노래부르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남을 칭찬하고 도와주는 좋은 일은 박수가 나오기 전에 언제나 먼저 나서서 하되, 잘못된 길이라면 어리석게 먼저 나서서 춤추는 짓을 삼가라는 가르침이야말로 모든 종도들이 가슴에 새겨야할 잠계(箴戒)라 할 것입니다.
벽암당 동일대종사님
큰스님께서는 이렇게 80여 성상(星霜)을 하루같이 오직 반야지(般若智)로써 법등을 밝히고 대자비로써 후학을 이끌어주셨으니 그 공덕은 계룡산의 흙을 퍼서 서해를 막는다 해도 다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큰스님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종문(宗門)에는 요즘도 부끄러운 일도 적지 않습니다. 이는 우리들의 수행이 부족한 탓이어서 몸 둘 바를 모를 지경입니다.
다만 이러한 때일수록 큰스님 같은 어른들이 오래도록 주세(住世)하면서 무언지교(無言之敎)로 이끌어주시기를 바랐으나 이제는 그 청을 말하기가 이미 너무 늦었습니다. 이에 종도들은 스님께서 굳이 꽃피는 봄에 입적한 뜻을 되새기면서 우리가 잘못한 일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제불제조(諸佛諸祖) 앞에 부끄럽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인지를 곰곰이 생각해볼 것입니다.
하오니 큰스님께서는 임종을 지켜보지 못한 가섭에게 관 밖으로 두 발을 드러내서 정법안장(正法眼藏)과 열반묘심(涅槃妙心)을 전해주신 부처님처럼 곽시쌍부(槨示雙趺)를 보여 말후일계(末後一誡)를 내려주소서.
삼가 시회대중(時會大衆)은 큰스님 영구(靈柩)에 가사를 덮고 문루(抆淚)를 감추나이다.
불기 2549년 5월 10일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법장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