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당(碧岩)당 동일(東日) 대종사(大宗師) 원적과 관련, 조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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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산 스님은 영결사를 통해 “어제 밤 계룡산 산상(山上)에 뿔달린 상서로운 금계(金鷄)가 울더니 오늘 새벽 60년간 불가(佛家)를 밝히던 혜광(慧光)이 스러졌구려”라며 “오늘 대종사께서 계룡산을 검게 물들이고 조수(鳥獸)들마저 울음을 멈추게 하시며 원적(圓寂)을 보이신 것은 제불조사(諸佛祖師)들이 보이신 그것과 다름이 없으며 실상의 도리를 일러 주심”이라고 원적을 애도했다.
종산 스님은 또 “이제 대종사님께서는 오늘로써 팔십 이년의 세연(世緣)의 끈을 놓으시고 생과 사의 걸림이 없는 대법계의 자유인이 되셨다”며 “부디 고통과 번뇌가 없는 불국토에서 영원하시기 바란다”고 발원했다.
다음은 영결사 전문.
영결사
대한불교조계종 원로이신 신원사 조실 벽암당(碧岩堂) 동일(東日) 대종사(大宗師)님.
어제 밤 계룡산 산상(山上)에 뿔달린 상서로운 금계(金鷄)가 울더니 오늘 새벽 60년간 불가(佛家)를 밝히던 혜광(慧光)이 스러졌구려.
고해무변(苦海無邊) 회두시안(回頭是岸)이요, 생자기야(生者寄也) 사자귀야(死者歸也)라. 고해는 끝이 없으나 고개를 돌리면 곧 피안이요, 삶이란 묵어가는 것이요 죽음이란 돌아가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삶과 죽음이 아침과 저녁과 같음이요 모든 우주 만유(萬有)가 생명의 법칙 속에 움직이는 것이라 만나면 헤어지는 것이 실상의 도(道)라고 하겠습니다.
오늘 대종사께서 계룡산을 검게 물들이고 조수(鳥獸)들마저 울음을 멈추게 하시며 원적(圓寂)을 보이신 것은 제불조사(諸佛祖師)들이 보이신 그것과 다름이 없으며 실상의 도리를 일러 주심이라 하겠습니다.
하오나 헤어짐의 슬픔은 세간사(世間事)의 일인지라. 오늘 사부대중들이 이처럼 한자리에 모여 대종사를 영결(永訣)하려고 하니 저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가슴에 소리 없는 울음이 웅크리고 있어서 목이 메이나이다.
벽암당 동일대종사님.
대종사께서는 일찍이 일본 관서공업전문대학에서 공학(工學)을 이수하시고 덕숭산 수덕사에서 축발(祝髮)하신 뒤 당대의 선지식 적음(寂音) 선사를 모시고 묘유정법(妙有正法)을 체득하신 이래 법랍이 환력(還曆)에 이르도록 수선안거(修禪安居)로써 승가의 대기(大機)를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조계종단이 어려움을 처했을 때마다 앞장서서 구종(求宗)의 정신으로 책임을 한 몸에 지니시고 외풍에 당당히 맞서, 굳은 일을 도맡아 하심으로써 오늘의 조계종이 반듯하게 갈 수 있도록 법력을 보이셨습니다.
송죽(松竹)같은 깐깐하신 성품과 타고나신 위엄으로 외도(外道)의 마군(魔群)을 섭수(攝受)하시며 종단의 어려움을 헤쳐 나가셨습니다.
1960년 정화이후 발족한 총무원의 교무부장을 역임하신 이후 불국사 주지, 선학원 이사장, 동국대학교 재단이사장, 중앙종회의장, 종정직무대행 등 종단의 혼란시기 때마다 중책을 맡으셨고 그 때마다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 주셨습니다.
대종사님의 분명한 이(理)와 사(事)로써 남들이 감히 따를 수 없는 부종수교(扶宗樹敎)의 탁월하신 정신과 엄격하시면서도 자애로운 법력을 보이신 것은 평소 닦아 오신 인욕보살의 해행(解行)이라 할 것입니다.
벽암당 동일대종사님.
이제 대종사님께서는 오늘로써 팔십 이년의 세연(世緣)의 끈을 놓으시고 생과 사의 걸림이 없는 대법계의 자유인이 되셨습니다.
대종사님께서 닷새 전 적음(寂音)의 소리로 이렇게 이르셨습니다.
春秋空寂冬夏制 춘추공적동하제八旬安居無日月 팔십안거무일월驀得飜身非無處 맥득번신비무처照破峰頭一新月 조파봉두일신월
“춘추가 비고 고요하여 겨울-여름 비끌어 메었는데
팔십 평생 안거에 해와 달이 스러졌도다.
홀연히 비어 없는 세월마저 한 몸으로 뒤치니
봉두에서 비추어보니 달빛이 한 몸에 새롭다”하시고 시간을 던져 지옥에 들지 말고 부지런히 공부하라는 당부이셨습니다.
그리고서 하신 말씀이 “해가 가고 해와 달이 시냇물처럼 흐르누나. 마음에 머금은 바 있되 채우기도 전에 흰머리만 휘날리누나”라고 스스로 안타까움을 표하였으니 분명히 이 뜻을 이루실 것입니다. 진솔하신 이 말씀은 오직 한 생을 꼿꼿하게 수행해 오시고 성성(惺惺)하시던 대종사님의 가풍의 법도를 의심 없이 보여 주심이라고 하겠습니다.
벽암당 동일대종사님
이제 대종사님께서 생사가 끊어진 세계로 가시고 계십니다. 그러나 법진(法塵)의 사바에 남아 있는 저희들은 자유로우신 대종사님의 무상의 진면목을 몰라 이렇게 애도하고 있나이다.
부디 고통과 번뇌가 없는 불국토에서 영원하시기 바랍니다.
宇宙浮漚心起滅 우주부구심기멸하고
虛空無着爲誰安 허공무착위수안이라
우주는 물거품 마음 따라 생멸하고
허공은 붙들 수 없으니 누구를 편안케 하리요.
진여(眞如)로운 모습을 다시 보이소서.
삼가 합장하고 향 사루옵나이다.
불기2549년 5월 10일
대한불교조계종 원로회의 의장 종산 분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