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9. 12.1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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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정사 숲속 도로포장 걷어내던 날


월정사 숲길에 깔린 시멘트를 걷어내고 있는 월정사 주지 정념스님과 행사 참가 내빈들 사진=고영배기자


‘포장을 벗기면 사람은 불편해집니다. 그러나 흙은 숨쉴 수 있습니다. 숨쉬는 흙은 순수한 생명의 원천입니다. 불편을 자초하는 것, 생명을 키우는 길입니다.’

월정사 일주문 입구를 지키고 있는 전나무 숲길에 걸린 작은 플래카드는 사람들에게 불편하게 살라고 말한다. 그것이 생명을 위하는 길이라고. 편리함을 위한 인간의 이기가 자연을 해치고 인간을 해치고 있다는 것을 왜 모를까마는, 그래도 인간의 선택은 늘 편리함이었다. 그런데 그 편리함을 스스로 벗어 던지고 불편해지자고 한다.

그런 비문명적인 생각을 듣자고,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보자고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전날까지 주룩주룩 내리던 비가 개고 청명한 하늘이 내려앉은 땅 월정사. 5월 6일 오전, 월정사의 시멘트 포장 걷어내기 행사는 그렇게 시작됐다.
지난해 처음 시작한데 이어 올해 2회를 맞은 오대산 천년의 숲길 걷기대회는 시멘트 포장을 걷어내고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모두의 약속으로 막이 올랐다.


# 도로포장을 벗기다

걷어낸 시멘트를 치우고 있는 행자들
동물과 나무와 풀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것이 월정사의 꿈입니다. 이 꿈은 이 세상을 환경오염으로부터 구해내는 일입니다. 모두가 함께 할 때 그 꿈은 빨리 이뤄질 것입니다.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노력, 월정사의 약속입니다.”

시멘트 포장 걷어내기 행사를 알리는 나지막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월정사 스님들, 월정사 단기출가 행자들, 걷기대회 참가자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모였다. 월정사 주지 정념 스님과 내빈들, 그리고 참가자 대표들이 곡괭이를 들고 시멘트 포장길을 힘차게 내리쳤다.

“전나무 숲길을 생명의 숲길로.”

사회자가 구호를 외치자 대회 참가자들은 함께 구호를 따라 외치며 박수를 쳤다. 시멘트 포장이 뜯겨지고, 그 속에 숨어있던 속살이 드러났다. 땅이다. 10년 세월을 시멘트 옷을 입고 살았다. 때로는 숨이 차고, 때로는 거추장스러웠지만 사람들은 좋아했다. 주변의 풀과 벌레와 나무들은 집과 앞마당을 잃었지만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았다.


시멘틀르 걷어내고 숲길을 걷고있는 행사 참가자들


# 산을 산이게끔 하는 일

누구의 생각일까, 시멘트 옷을 벗겨버려야겠다는 것이. 천 년 세월을 있는 그대로 살았던 이 땅에 시멘트 포장이 된 것은 10년 전 시내버스가 다니는 길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일주문에서 경내 입구까지 약 1Km의 전나무 숲길은 아무런 생각없이 오직 편리함만을 위해 시멘트로 덧칠해졌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이상이 생겼다. 전나무들이 신음하기 시작했다. 생장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풀들도 잘 자라지 않는 등 주변 생태계에도 변화가 왔다. 눈에 띌 정도는 아니지만 이대로 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이곳을 밟는 사람들마다 어색함을 느낀다는 점이었다.

“시멘트 포장으로 전나무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천지와 만물은 나의 몸이고 부처님 모습입니다. 오대산은 성스런 도량입니다. 잘 보존해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월정사 주지 정념 스님은 시멘트 포장을 걷어내기로 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정념 스님은 산은 산이어야 한다고 했다. 흙은 흙이어야 하고, 길은 길이어야 한다고 했다. 거기에 서 있는 우리는 자연이어야 하고, 자연은 우리이어야 한다고 했다. 공존! 산을 산이게끔 하는 일은 다름 아닌 함께 사는 상생의 길임을 우리는 모르고 있는 것일까.


평창 횡계 호재유치원 학부모와 아이들이 숲길을 걷고있다


# 자연의 소리를 듣다

“엄마, 여기도 다 부술거야?”
“응, 그렇게 한단다.”
“근데, 왜 그래?”
“응, 자연이랑 친해지라고. 윤형아, 숲길을 걸으니까 좋지?”

걷기 대회 참가자들이 자신의 발원을 108미터 길이의 천에 적고 있다
시멘트 포장을 걷어내는 의식이 끝나자 황정현씨(38ㆍ평창군 진부면)는 윤형(10) 윤재(8) 남매의 손을 잡고 전나무 숲길을 걷기 시작했다. 황씨는 시멘트 포장을 걷어내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아이들에게 설명해 주고 싶었단다. 그리고 숲길을 걸으며 자연과 함께 호흡하는 것이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김재학ㆍ재희 쌍둥이 남매와 김성우 최보경 네 아이도 나란히 손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모두 진부초등학교(4학년)에 다니는 아이들이다. 걷기대회를 한다고 해서 친구끼리 왔다고 했다. 시멘트를 걷어내는 이유를 알지는 못했다. 하지만 네 아이들에게는 똑같은 느낌이 있었다.

“숲길을 걸으니까 좋아요. 자연을 잘 보살펴야 공기가 좋아져요.”

자연을 알 필요는 없다. 있는 그대로 느끼고 있는 그대로 놓아두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아이들이 느끼는, 아이들이 생각하는 그대로가 자연인 것이다. 이이들은 그것을 가르쳐주었다.
횡계의 효재유치원에서 온 아이들과 학부모와 선생님 25명도 전나무 숲길을 밟았다.

“땅과 도로는 밟아보면 느낌이 달라요. 아이들에게 지금 그걸 말해주고 있어요.”

전명자씨(42ㆍ횡계 2리)는 아이들과 손을 잡고 걸으면서 자연의 소중함을 설명한다. 아이들이 이해하든 이해하지 못하든 그건 중요치 않다. 이다음에 어른이 돼서 어렸을 적에 숲길을 걸었던 기억이 되살아난다면 아마도 자신의 앞마당을, 자신의 뒷동산을, 자신의 텃밭을 무분별하게 파헤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는 않을 것이다.


2014평창동계올림픽 유치 기원 삼보일배를 하고 있는 행사 참가자들


# 자연과 하나가 되어

걷기대회 참가자들이 시멘트 포장을 벗기기로 한 1Km의 전나무 숲길을 걸어 도착한 곳은 경내. 참가자들보다 30여분 앞서 그 길을 삼보일배를 하며 경내까지 온 108명의 삼보일배단이 경내 중앙에 있는 8각9층석탑을 한 바퀴 돈 뒤 삼보일배를 마쳤다.

원주에서 온 고건웅씨 가족이 숲길을 걸으며 즐거워하고 있다
2014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성공을 위해 평창군민 관계자와 군인, 학생, 불자, 월정사 신도들로 구성된 삼보일배단의 일원이었던 지욱환씨(51ㆍ평창 극락사 신도)는 “시멘트길에서 삼보일배를 하니 흙길보다 무릎이 훨씬 아픈데요”하고 웃으면서 구슬땀을 닦는다.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 20리를 걷는 걷기대회를 시작하는 간단한 법회가 끝나고 대회 참가자들은 다시 숲으로 향했다. 이 길은 군에서 도로포장을 추진하던 것을 월정사가 반대해 지켜낸 흙길 그대로다.

생명ㆍ평화ㆍ나눔. 걷기대회의 주제 그대로 이 흙길엔 그냥 그대로 흙이 되고 낙엽이 되는 자연이 있고, 그 속에서 숨쉬는 사람들의 생명이 있고, 자연과 인간이 함께 하는 나눔이 있다. 월정사는 그것을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었고, 걷기대회는 그런 의미를 담고 열렸다.

원주에서 온 고건웅씨(34)는 아들 성원(3)이를 목마 태운 채, 아내 김은경(33)씨는 딸 성원(6)이 손을 잡고 나란히 숲길을 향했다.

“작년에 참가했었는데 좋더군요. 맑은 공기를 마시며 숲길을 걸으니 자연과 나무들과 하나가 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걷기대회는 일등도 꼴찌도 없다. 있다면 오직 자연과 내가 하나라는 느낌뿐. 3천여 명의 걷기대회 참가자들은 자연을 사랑하는 것이 결국 자신을 사랑하는 지혜임을 배우고 있었다.
월정사=한명우 기자 |
2005-05-08 오후 3:12:00
 
한마디
이미 포장된 도로를 많은 돈을 들여가며 벗기기 보다는 새로운 숲길을 만드는 것이 훨씬 좋을 것 같다. 돈이 넘치면 불우이웃 돕기에 써라 이것이 부처님 말씀이리.....
(2005-05-12 오전 12:5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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