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7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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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조경 지양 자연미 살려야"
정재훈 교수의 '환경불사, 상생의 가르침 담아내기'


정재훈 전통문화예술학교 석좌교수.
한국사찰은 자연과 동화되고, 사람과 조화를 이룬다. 그래서 <삼국유사>에 나타나는 “오대산 동대의 만월형상에는 관음진신 일만이 상주하고, 북대의 상왕산에는 석가여래를 수반으로 오백나한이 상주하며 상대의 풍로산에는 비로자나불을 수반으로 일만의 문수보살이 공양했다”는 기록은 산이 곧 불(佛)의 세계임을 보여준다.

또 한국사찰의 불상은 거대하지 않아 사람과 조화를 이룬다. 또 지나친 기교를 배제한 얼굴에는 자연스러움이 넘치며, 사천왕 얼굴은 낙천적이고 인자하기까지 하다. 이처럼 한국의 사찰에는 자연스러움과 평안함이 있다. 광대함에 치우쳐 자연과 인간을 억누르는 중국 사찰의 광대성이나, 분노하는 모습을 한 금강역사상이 절문에 배치된 일본사찰과는 다르다. 이 같은 면모는 한국사찰의 원형 또는 전통처럼 남아 있다.

하지만 근래 들어 한국사찰의 원형을 위협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어 걱정스럽다. 하나는 왜식조경이다. 왜식조경이란 향나무·편백·주목 따위의 상록수를 인공적으로 전정(剪定)해 조경하는 것을 말한다. 법당 마당은 부처님께 예불하는 공간으로, 탑과 불전사이에 잡스러운 왜식정원이 꾸며져선 안 된다. 중국을 본받아 거대불상을 세우는 일 또한 문제다. 거대화는 자연과 조화를 이뤄온 전통적인 불사의 정신에 어긋난다.

전통적인 불사의 정신에 어긋나기는 사찰 경역의 환경파괴도 마찬가지다. 해인사 개발 시도, 한 수행단체의 문경지역자연파괴 등의 예에서 보듯 사찰 경역과 관련된 불사는 신중해야 한다. 불사는 전문가들이 참여해 만든 합리적인 설계계획에 의해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

사찰 환경을 조성할 때는 화재대비시설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한국사찰은 전통적으로 사찰 건물 주위에는 화소(火巢)구역을 설치하고, 외곽 담을 세워 산불을 최대한 차단했다. 또 절 가까이에는 낙엽, 억새, 소나무를 제거했다. 익산 미륵사에는 개울이 절 사방을 흘러 화재 방어선이 되게 했고, 정림사는 담장을 높게 쌓았다. 이 같은 지혜를 배워 사찰의 종합적 환경계획에 반영하는 것이 시급하다.


[논평]서재영 동국대불교문화연구원

서재영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연구원.
오늘날 한국사찰은 개발과 보존이라는 서로 다른 지향성이 충돌하고 있다. 신행공간의 확장과 문화재 보존이라는 대립과, 인위적 건설과 자연의 보존이라는 대립이 그것이다. 이는 전통사찰이 신행공간이자 문화재며, 자연경관이라는 다면적 특성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 불사는 해당사찰이나 불교계뿐 아니라 종교외적 요소까지 고려해야 함을 뜻한다.

전통적으로 한국사찰은 건축이라는 인위성을 적절히 은폐함으로써 자연과 조화를 이뤄왔다. 선조들은 장대한 구조물에 대한 욕망을 절제하고 자연과 동화되는 건물을 지어 사원이 우주적으로 확장되는 예술을 연출했다. 세계최대를 지향하는 불사는 한국전통에 어긋나는 것으로 오히려 자연으로부터 소외되고 왜소해지는 부작용을 낳기만 한다.

한국불교는 최근 환경문제를 통해 국가적 의제를 제기하고 전국적 거대담론을 주도하고 있다. 이 같은 역할 전환에는 높은 자기도덕성이 요구된다. 한쪽으로 사찰을 확장하고, 개발 대가로 보상금을 챙기며 환경과 자연을 외칠 수 없다.

한국불교가 보여주던 자연과 인간의 공존은 불교 스스로 생태적 문화와 삶의 양식을 선도함으로써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이 같은 견지에서 불사에 대한 고민은 단지 사찰의 건축물을 어떻게 지을 것인가라는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한국불교의 도덕성까지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말할 수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담아내고 사회적 담론을 생산하는 불사, 시대의 정신을 인도하는 불사로 방향이 전환돼야 한다.
박익순 기자 | ufo@buddhapia.com
2005-05-09 오후 5: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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