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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암 스님은 40년 풍운을 꿈을 안고 일본으로 유학, 간사이(關西) 대학에서 신학문을 공부했다. 그러나 졸업할 즈음인 45년 회의에 부닥치게 된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할 것인가? 타고 나기를 병골이라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목숨이거늘 무엇을 위하여 공부하고 신학문을 익힌 것이란 말인가?’
스님은 귀국하는 즉시 방문을 걸어 잠그고 고뇌하고 번민하다가 문득 〈육조단경〉을 보게 됐다. 그리고 놀라게 됐다. ‘나도 육조 스님처럼 제 성품을 스스로 건네는 큰 길에 들어서야겠다.’
벽암 스님은 9월 13일 서울로 올라가 당시 호국사로 찾아간 뒤 월봉 스님을 계사로, 적음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이후 6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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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이 입적하던 날 제자 법전, 지성, 지행, 견진, 견명, 정경 스님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법전 스님이 “스님 어디로 가십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벽암 스님은 “무적벽수(無滴碧水)가 장강(長江)을 이루고 대해(大海)를 고갈(枯渴)시키느니라”라고 답했다.
지성 스님이 “제불조사(諸佛祖師)의 의지(意旨)는 무엇이며 공부는 어떻게 지어 가야합니까?”라고 다시 물었다. 벽암 스님은 “아참에 죽 들고, 사시(巳時)에 마지 얼리고 저녁은 없느니라”라고 답했다.
벽암 스님은 잠시 쉬었다가 “잘 달래 주고 기운내 정신 차려 절도 있게 살펴가며 살아가야 옳으니라”라고 말했다.
그러자 견진 스님이 “필경 이 무슨 도리입니까?”라고 물었다.
벽암 스님은 “박수미회(拍手未會)에 작창가(作唱歌)니라(박수도 치기 전에 노래 부르는 것이니라)”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