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7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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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가톨릭 콘클라베와 불교의 갈마


새 교황 요체프 라칭거 추기경.
4월 19일, 로마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 굴뚝에는 흰 연기가 피어올랐고 곧이어 성 베드로 대성당의 종이 울렸다. 새 교황이 선출되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요체프 라칭거(76) 추기경(독일)이 제265대 가톨릭 교황으로 선출된 것이다.

그는 추기경단이 참석한 콘클라베라는 회의를 통해 확정되었다. 이번 교황선출을 둘러싸고 나의 관심을 집중시킨 것은 누가 새 교황으로 탄생하느냐보다는 바로 이 콘클라베였다.

열쇠로 잠근다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콘클라베가 시작되면 일단 후임 교황이 선출될 때까지 추기경들이 모인 건물의 청동문은 모두 봉쇄되는데, 이는 모든 문과 창문을 납으로 봉하던 관행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콘클라베는 청동문이 상징하듯 비밀회의 그 자체였다. 콘클라베는 80세 이하의 추기경에 의하여 직사각형의 투표지에 매일 오전과 오후 두 차례씩 3분의 2가 나올 때까지 투표한다고 한다. 이처럼 콘클라베는 권위와 비밀 그리고 폐쇄를 상징한다. 교황이 지니는 종교적 권위와 권능은 바로 여기 콘클라베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가톨릭이 콘클라베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면 불교는 갈마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갈마는 의견을 결정하는 회의를 말한다. 콘클라베가 단지 교황만을 선출하는 회의라면 갈마는 승가에서 생기는 크고 작은 모든 일을 결정하는 모임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불교 승가에서는 교황과 같은 권위적 존재를 인정하지 않기에 교황이나 추기경들에 의해 결정되는 사항들은 모두 이 갈마를 통하여 결정된다.

구족계의 의식이나 특정한 소임을 맡을 비구의 선출, 그리고 승가에서 발생한 쟁사의 해결 등 크고 작은 모든 일을 결정하였으며, 또한 승가의 중요한 정기 행사인 포살이나 자자 등도 모두 이 갈마를 통하여 진행시켰다.

갈마는 구성원인 비구들 전원이 참석한다는 점에서 그 특징을 찾을 수 있다. 일정한 자격을 갖춘 자만이, 깨달은 자만이 참석하는 것은 아니었다. 갈마는 비밀스럽게 진행되지도 않았고 문을 걸어 잠그지도 창문을 봉쇄하지도 않았다.

일정한 지역의 모든 비구가 열려진 장소에서 모여 공개적으로 진행되었다.

여기에는 세속의 나이나 법랍, 지위고하 등에 상관없이 그 누구일지라도 동등하며 평등하였다. 결코 특정한 지위에 있는 자도 없었고, 좌지우지할 결정권을 지니는 자도 존재하지 않았다. 소수의 단합에 의한 전횡도 제도적으로 허용되지 않았다.

승가의 비구 전원이 참석한 자리에서 만장일치로 모든 사항을 결정하는 것이 갈마의 기본 원칙이기 때문이다. 한사람일 지라도 참석하지 않으면 진행시키지 않으며, 또한 한사람이라도 반대를 하면 결정되지 않았다.

병 등의 이유로 참석할 수 없는 자가 생길 경우는 회의에서 어떠한 결정이 나든 나중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뜻을 다른 비구를 통하여 승가에 알려야 한다. 이를 여욕(與欲)이라고 한다.

갈마는 구성원 개개인의 존재와 고결한 의견을 다수결이라는 편리한 원칙을 구실로 무시하지 않았다. 선동주의이나 감성주의에 호소해 의사가 결정될 수가 없었다. 전체의 찬동을 얻어내야 하기 때문에 눈 밝은 한 사람이 있어 반대한다면 옳지 않은 안은 결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갈마의 원칙 때문에 갈마가 자주 진행되지 못하고 사안이 결정되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각양각색의 구성원들이 합의를 이루어 내는 것은 지금이나 예나 쉽지 않으며 더구나 전원이 찬성하기란 더욱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사람 한 사람의 의견을 중시하는 회의에서 오히려 구성원들은 자신 각자의 생각ㆍ의견에 대해 보다 신중하게 처신하기에 그러한 경우는 별로 발생하지 않았다.

갈마에서는 침묵으로 찬성을 대신한다. 많은 구성원들이 모였다고 해서 번잡하거나 시끄럽지도 않았다.

이처럼 여법한 갈마 절차로 정당하게 내려진 결정은 승가에서 최고의 권위를 지닌다. 불교에서는 교황과 같은 절대적 권위나 비밀스런 절차에 의한 신비감은 존재하지 않지만, 법과 율에 따라 갈마에서의 소수의 의견까지도 존중된 결정은 그 어떤 절대적인 권위보다도 힘을 지녔던 것이다. 우리는 갈마에서 평등과 개방이라는 불교의 상징을 본다.
신성현(동국대 불교학과 교수) |
2005-04-27 오후 6:28:00
 
한마디
정말 한국불교가 갈마의 법칙대로 움직였었나요? 현대 이전이나 타종단은 모르겠고, 최소한 지금 조계종단만 보면 갈마나 콘클라베는 커넝 가장 세속적인 선거중에서도 탐진치 삼독을 증진시키는 요소만 배워서 고대로 따라하거든요. 그러다 보니 조계사앞의 집단이종격투기는 물론 지금도 총무원장 선거나 종회의원 선거 각 교구본사 주지선거마다 잡음이 끊이지 않고 말법의 온상이 되곤 하죠
(2005-04-27 오후 9: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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