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9. 7.22 (음)
> 종합
경주이씨들이 소요스님 모친 묘소 돌본다
'유택점지'인연으로 373년째 시제…대이어 '보은'

소요대사 모친 묘소.


또다시 어버이날을 맞이한다.
부처님은 <부모은중경>을 통해 부모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깊은가를 설하고 계신다. 이 경전은 어머니의 은혜를 10가지로 나눠 생리학적 측면에서 매우 과학적으로 서술해 놓고 있다. 그래서인지 인천(人天)의 스승이 되고자 삭발염의(削髮染衣)한 수행자이건만 출가자들에게도 어머니는 애틋하다.

얼마 전, 전남 담양 월산면 월계리 농암부락 뒷동산인 황산에 자리한 묘(墓) 하나가 곱게 단장을 했다. 주위의 여느 산소와 별반 다르지 않은 작은 묘이다. 그러나 이 지역 월산에 뿌리를 둔 경주이씨 후손들에게는 특별함이 있는 묘소이다. 집안의 어른이 아닌 어느 스님의 어머니 묘로 각별하게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주이씨 후손들이 소요대사 어머니묘에서 예를 올리고 있다. 모자 쓴 이가 일진 스님이고 오른쪽 옆이 고경 스님.


묘소의 주인은 조선중기 서산대사의 법을 이은 소요 태능(逍遙 太能.1562-1649)스님의 어머니이다. 친부모 묘마저 외면당하는 각박한 현실에서 소요 스님의 어머니 묘가 지역주민들에 의해 무려 400년 가까이 각별하게 모셔지고 있는 것이다.

“이곳이 바로 천하의 명당 ‘무자손천년향화지지(無子孫千年香火之地)’터입니다. 예로부터 이 묘를 잘 받들면 복을 받는다고 전해져오고 있어 너나없이 벌초하고 예를 올리고 있습니다”


경주이씨 월산문중 도유사 이복우씨.


경주이씨 월산문중 소임을 맡고 있는 도유사(都有司) 이복우 씨(69)는 “어려서 어른들로부터 소요대사 어머니 묘를 잘 돌보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며 소요대사 어머니 묘소에 얽힌 사연을 들려준다.

이야기는 37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대의 고승 소요대사가 장성 백양사 주지로 있으면서 담양 용흥사 불사를 벌였다. 당시 용흥사 인근에 거주하던 이복우 씨의 10대조 이시망, 시우 형제가 불사에 동참하였고 이를 계기로 스님과 교류하게 되었다.

어느날 시망, 시우 형제는 소요 스님에게 부친의 유택 점지를 요청했다. 사찰불사에 큰 도움을 받았던 터에 감사의 뜻으로 음택 두 곳을 소개하며 하나를 선택토록 했다. 하나는 후대에 큰 벼슬이 나오고 명예가 높은 자리이고, 다른 하나는 큰 부자는 아니지만 부자로 자손이 번창한다는 터였다.

시망, 시우 형제는 집안이 번창한다는 ‘옥녀탄금(玉女彈琴)’형국의 자리를 택하고 부친 일민(逸民)의 묘를 썼다. 화려한 명예보다 소박한 화목을 선택한것은 오늘을 사는 이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때 소요 스님은 속가의 어머니 묘를 이곳 월산으로 옮기며 한마디 덧붙였다.


소요 대사 어머니의 묘임을 알리는 비석문. <소요대사 태능모친지묘>라고 쓰여 있다.


“경주이씨 묘와 나의 어머니 묘에 제를 지내면 집안이 부유하고 자손이 번창하기를 천년간 이어진다”
이후 경주이씨 월산문중은 매년 음력 10월 보름 시제(금년부터 음,10월 11일)에 소요대사의 어머니 묘에서도 제를 올리고 있다. 그러기를 지난해까지 373년을 이어온 것이다.

지난달 어느 화창한 봄날, 이러한 소식을 듣고 순천 송광사 박물관장 고경 스님과 일진 스님이 담양 월산을 찾았다.
월산문중 도유사 이복우 씨를 비롯해 경주이씨 집안에서 스님들을 맞이했다. 소요대사 어머니 묘소에 단촐하지만 음식을 올리고 스님들이 향을 살랐다.

일진 스님은 “‘무자손천년향화지’는 후손이 끊긴 스님들의 부모를 위해 제사는 물론 때마다 공양이 끊이지 않도록 하는 효(孝)사상이 담겨있다”며 “이곳 소요대사 모친 묘는 김제 불거촌 진묵대사 모친 묘, 부안 동진 벽송선사 모친 묘와 더불어 한국 3대 무자손천년향화지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진 스님은 또한 “불교가 억압받던 조선시대에는 스님들이 방편으로 음택풍수를 썼는데 이는 한가족이 아닌 문중을 불자화하는 최고의 포교였다”고 강조한다.

송광사 박물관장 고경 스님도 “소요 스님은 담양출신으로 백양사, 용추사, 연곡사 등 호남지역에서 선풍을 크게 일으킨 선승으로 문하에 침굉, 해운 스님 등 수백명이 일파를 이뤄 ‘소요파’라고 불리며 오늘에 까지 법맥을 이어오고 있다”며 “후손이 끊긴 소요 스님의 어머니 묘를 400년 가까이 경주이씨 문중에서 관리해 오고 있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승속을 떠나 본받을만한 일이다”고 감사의 뜻을 표했다.

스님들은 “‘무자손천년향화지’는 포교는 물론 효사상을 담고 있는 효행관으로, ‘자손이 번창하고 부귀영화한다’는 신념이 가족간에 서로를 돕고 우애를 살려 스스로 잘살게 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소요대사가 터를 잡았다는 경주이씨 월산문중 중시조 자리는 소요대사 어머니 묘에서 가까이 능선 너머에 있다. 누가 보아도 천하가 한눈에 펼쳐 보이는 명당자리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스님의 예언처럼 담양일대의 경주이씨는 번창했다. 현재 월산문중만 6500여명에 이르고, 큰 부자는 아니지만 천석 이상 집안이 즐비하다.

산을 내려오는 길에 동행했던 월산문중 이경우 씨(75)가 오늘을 사는 이들에게 따끔한 충고를 곁들인다.
“우리가 부모없이 어찌 생겼겠습니까. 아무리 시대가 변한다 해도 조상과 어른을 섬기는 풍습을 잃어서는 안돼요. 집안의 연고는 없어도 저희가 소요 스님의 모친 묘를 섬기는 뜻이 불교인뿐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거울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 소요대사 태능(逍遙大師 太能·1563~1649)

성은 오씨, 전남 담양 출생. 13세에 백양사에서 출가. 부휴, 서산대사 밑에서 공부하고 20세에 은사의 명으로 개당해 교화를 폈다. 임진왜란이 나자 폐허가 된 절을 지키며 전각을 수리하고 전쟁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었다. 이후 지리산, 금강산, 오대산, 구월산 등에 머물며 교화를 폈다. 만년에 지리산 연곡사에 머물며 교화하다가 1649년 88세(법납 75)로 입적.
유정의 제자 가운데 편양언기와 함께 선의 양대 고승으로 추앙되며 백양사 연곡사 용추사에 부도가 있다. 저술로 <소요당집>1권이 있으며 시와 게송 200여편이 수록되어있다.

글ㆍ사진=담양 이준엽 기자 |
2005-05-09 오후 5:30:00
 
한마디
새롭고 신선한 좋은 기사, 정말 감사 드림니다. 숭유억불정책 속에서도 불법을 끝없이 살아 숨쉬게 하려했던 옛선사님들의 깊으신 뜻, 고준분투했던 그 분들의 모습을 보는것 같아서 나에게 신선한 영감을 주었습니다. 말없이 400년의 약속을 지쳐온 경주이씨 월산문중 여러 어르신들게 깊은 감사를 드리고요,. 아울려 좋은기사를 발굴해 주신 李준협 記者님께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씁올립니다. 감사합니다.
(2005-05-10 오후 3:50:00)
17
모자를 벗고 더 정중히 하셨다라면
(2005-05-10 오전 3:15:02)
36
아름다운 사연 훈훈한 정 글 잘 읽었습니다.
(2005-05-09 오후 9:29:1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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