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웃고 있지만 울고 있다. 빨갛고 둥근 코, 하얗게 분을 바른 뺨의 피에로. 박섭묵(40) 씨는 피에로다. 무대에선 마냥 웃는 ‘피에로 아저씨’지만, 무대 밑 현실로 내려오면 눈물을 훔친다. 세상은 그에게 원인불명의 난치병을 주었지만 그는 전국의 어린이들에게 무료로 피에로 공연을 펼친다. 힘들어도 공연만은 멈추지 않는다. 해맑게 웃을 아이들이 그를 기다리기 때문이다. 정기 공연에 쫓겨도 고단함에 지쳐도 그는 웃음을 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간다. ‘행복’과 ‘희망’을 선사하기 위해서다.
■ 영원한 피에로이고 싶다
피에로 인생을 살기 시작한 것은 10년 전. 유치원 체육교사였던 그는 아이들과
| ||||
그래서 그가 배운 것이 레크리에이션이었다. 피에로와 동화 구연, 마술, 마임, 풍선 만들기 등 닥치는 대로 익혔다.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아이들이 좋아하는 말과 몸짓을 배워갔다. 자신을 ‘마흔 살의 어린이’라고 소개하는 그의 말을 그냥 가볍게 넘길 수 없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수시로 피에로 공연하는 사람들을 직접 찾아가 어깨너머로 배웠어요. 심지어 마임은 3년을 따라다녔죠. 피에로는 도제식으로 교육돼 직계가 아니면 가르쳐주질 않았지요. 정식으로 배우지 못한 채, 혼자 동분서주하는 저를 보고 사람들은 정통성이 없다고 무시까지 하더군요.”
사실 그는 돈도 없었다. 유치원 일을 그만두고 아예 피에로 일로 전업하면서 돈벌이는 더욱 시원치 않았다. 피에로의 소품인 무늬가 다 뭉개진 카드를 다시 색칠해 썼고, 길거리 쇼윈도를 전신 거울로 삼아 자신의 몸짓 하나 하나를 스스로 만들어갔다. 생활은 더 쪼들렸다. 피에로를 그만 둘 생각에 조리사자격증을 땄지만 늦은 나이는 취직도 어렵게 만들었다.
“아내가 제 손을 말없이 잡아주며 이런 말을 하더군요. ‘괜찮아요. 여보!’ 그때 피에로 인생을 다시 살기로 마음을 고쳐먹었죠.”
그는 천상 광대였다. 좀더 일찍 피에로 일을 알았으면 더 많이 빠르게 배웠을 거라며 오히려 아쉬워했다. 식당 배달원, 웨딩 비디오 기사도 했지만 그는 피에로 일이 가장 재밌고 행복했다. 식지 않는 그의 열정은 지금까지 직접 써온 공연시나리오 편수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30편이 넘는다. 그것도 순전히 창작극이다. 200자 원고지로 치면 1천여 장이 넘는다.
“아이템이 잡히면 밤낮으로 미친 듯이 메모를 했죠. ‘아이들이 무엇을 원할까’ ‘진정한 사람의 향내를 어떻게 전할까’, 제겐 창작 모티브를 잡는 것 자체가 하나의 화두였죠.”
난치병 베체트병 불구, 지난 10년간 2백여 무료 피에로 공연
3년 전부터 어린이성교육 인형극 공연…웃음을 주는 것을 천직으로 생각
■ 무료 공연에 나선 사연
그렇게 피에로 인생을 걷기
| ||||
“버거웠어요. 객석의 반응이 없으면 광대는 신이 안나요. 힘든 공연을 마치고 돌아가려는데, 한 자폐아가 ‘야, 재밌었어’라고 외치더군요. 그 순간의 기쁨은 이루 말 할 수 없었어요.”
그 일이 있고 그는 소외 받는 아이들에게 눈을 돌렸다. 10년간 전국의 보육원 재활원 양로원 복지관 등에서 아이들과 자폐인들을 위한 무료 공연을 2백여 회 해왔다. 정작 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그는 손사래를 쳤지만.
“마냥 기뻐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좋아요. 피에로를 처음 본 아이들이 무서워하다가도 ‘아저씨’하고 달려들면 너무나 사랑스러워요. 오히려 아이들의 미소에서 청량제를 얻어가는 느낌이에요. 제가 주는 것보다 얻어 가는 것이 더 많아요.”
그는 한 마디를 더 보탰다. 무료 공연은 그에게 ‘솔직함’을 깨닫게 한다고 말했다. 자신의 천성이 광대기질에 있음을 자인하게 된 것도, 해맑은 아이들에게 순수함을 확인하게 된 것도 바로 이런 솔직함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공연하는 그 시간만큼은 가식이 없어요. 따뜻한 마음으로 대하면, 스스럼없이 ‘마음의 문’이 열리는 것을 느끼게 되거든요. 마음의 빗장이 열리면, 대화를 하듯 서로의 눈을 마주 보게 돼지요. 그럼 눈 속으로 빠져드는 순수함을 경험하게 돼요.”
| ||||
■ 난치병도 아랑곳 않고
벌써 몇 년째 자기 돈 들여가며 봉사활동에 매달리고 있는 박씨. 사실 그는 난치병 환자다. 10만 명 가운데 4명 정도 걸린다는 베체트 병. 처음에는 아픈지도 몰랐다. 그저 바쁜 일정에 생활 리듬이 깨지면서 오는 피로감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몸에 이상이 왔다. 아프기 시작했다. 병명을 알기 위해 돌아다닌 병원만 수십 곳. 3년 전 진단받은 병은 혈액에 염증이 생겨 몸속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병을 유발하는 베체트병이었다. 그 흔한 헌혈도 못하는 병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의 공연을 보고 즐겁게 웃는 아이들만 생각하면 이내 몸이 근질근질해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또 그의 곁을 지켜주는 가족들도 그가 힘을 낼 수 있는 후원자들이다. 남편의 뜻을 아무 말 없이 따라주는 부인 유희정 씨(38), 그리고 3형제가 든든한 버팀목이 돼 준다.
“3년 전부터 아이들도 같이 따라다니면서 막의 사이에 공연을 해요. 큰 놈 중건이는 태권도를, 둘 째 중현이와 막내 기철이는 노래와 춤을 추죠. 자폐인을 위한 공연을 갔을 때 처음에는 무서워하더니 나중에는 친해져 다음에 또 가자고 하더군요. 봉사를 하면서 따뜻한 마음을 느꼈으면 했는데 효과가 있는 듯해요. 진정한 교육이 이런 것 아니겠어요?”
박씨는 최근 ‘어린이 성교육 인형극’에 공을 들이고 있다. 성폭력 피해자 중 25%가 13세 이하의 어린이라는 뉴스를 보고 충격 받고 이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 뒤 ‘내일을 여는 여성센터’에서 전문교육을 받고, 직접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또 연출도 맡아 ‘우리 몸은 소중해요’ 등의 인형극 작품을 완성, 공연을 했다. 올해는 충북도청과 함께 유아정보센터에서 공연을 시작했고, 4월 28에는 강원도 평창군 청소년회관에서 장애인들을 위한 성교육 인형극을 공연했다.
할 수 있는 능력으로 마음의 상처를 가진 이들에게 웃음을 주는 것이 ‘팔자’라는 박씨. 초롱초롱한 눈망울과 티없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삶을 사는 이유를 발견한다는 그는, 어린이와 함께 하는 이 일이 가장 즐겁고 행복하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