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 때문에 많은 이들이 우리의 미래에 대해 낙관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혼돈과 모호성이야말로 한반도가 문명 전환의 중심지가 될 수 있게 하는 근거라는 희망적인 주장이 제기돼 관심을 끈다.
불교지식인연대(대표 김규칠)와 현대불교신문사(사장 김광삼)의 공동 주최로 4월 19일 서울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열린 ‘제3회 불교와 사회 토론광장’에서 문명비평가 유헌식 박사, 김규칠 국민대 객원교수(前 불교방송 사장), 이찬훈 인제대 교수 등은 오늘날을 문명전환기로 규정하며, “한국의 순탄치 않았던 역사적 경험들이 새로운 문명 출발의 자산이 된다”는 데 의견을 함께 했다.
이에 대해 가장 적극적으로 논지를 전개한 이는 첫 번째 발표자였던 유헌식 박사다. 유 박사는 논문 ‘새로운 인간상의 구현과 문명 혁신의 전략’에서 존재론과 역사철학에 대한 탄탄한 식견을 토대로 문명 혁신의 가능성을 점검했다.
유 박사는 “문명 전환의 실마리는
| ||||
듣기 좋은 말이기는 하나, 혹 열등의식이나 국수주의의 발로는 아닐까. 유 박사는 “중심과 주변은 혁신의 주체로 활동할 여지가 적다는 것은 사실(史實)이다”고 반박하며 “불확정적인 경계구역이라고 해서 모두 새로운 문명의 진원지가 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문명 진원지가 되기 위해 가장 절실한 것은 혼돈을 조화로 바꾸는 일. 유 박사는 혼돈 자체를 제거하기보다는 혼돈 속에 숨어 있는 질서와 조화를 읽어 ‘밖으로’ 드러내야 함을 강조했다. 즉, 평면적으로 볼 때는 충돌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변수를 추가해서 입체적으로 바라보면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조화가 드러난다는 것이다. 유 박사는 “입체적인 문제해결은 경계구역의 다양한 이해관계들은 갈등과 대립, 무관심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는 유일한 대책이다”며 “원효 스님의 화쟁사상이 하나의 대안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유 박사는 화쟁사상을 ‘신호등 방식에서 지하도 방식으로의 전환’에 비유하며 “지상에서는 사람과 차량이 서로 욕구를 억제해야 자기 길을 갈 수 있지만 지하도를 이용하면 서로의 욕구를 억제하지 않고도 자유롭게 길을 갈 수 있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혼돈을 질서로 전환할 수 있는 사상과 이에 기초한 제도를 확립한다면 혼돈의 땅 한반도는 새로운 문명의 발원지가 될 수 있다고 유 박사는 강조했다.
두 번째 발표자로 나선 이찬훈 교수는 논문
| ||||
“우리 민족만큼 현대사회와 문명의 문제점을 뼈저리게 느끼며 인간다운 삶이 가능한 세계를 열망하는 사람들도 없다”는 것.
이 교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유력한 논리를 불이(不二)사상에서 찾았다. 불이사상은 세계를 자신으로부터 분리시키고 지배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모든 존재와 화해하고 공생하는 길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불이사상이 공생의 원천적 사상이 됨은 주지의 사실. 불이사상을 내 것으로 삼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이에 대해 이 교수는 ‘완벽한 사랑의 체험’을 제시했다. 사랑만이 나와 우주가 둘 아님을 깨닫게 해준다는 것이다.
“그런 체험을 통해 삶의 방식을 불이적인 것으로 바꾸고 사회제도까지도 바꾼다면 현대문명의 모순은 타개될 수 있다”고 이 교수는 강조했다.
‘복합시대, 인간존엄의 사회철학적 기초’를 발표한 김규칠 국민대 객원교수는 “현대문명의 인간성 상실 위기는 복합적이고 이중적인 세계의 실상이 법과 제도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함으로써 야기됐다”고 진단하며, “복합성이 고려된 철학적 기초를 확립하고 이에 따른 법·제도 시행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김 객원교수는 “자본주의가 생명과 사회의 복합성에 대해서는 외면한 채 오직 경제적 인간의 입장에서 이익 일변도로만 치달았고, ‘나’는 타자에 대한 의존성에서 오는 복합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타자를 지배 대상으로만 간주해왔다”며 복합성을 이해할 때 비로소 생명이 존중되고, 인간의 존엄성이 실현되는 사회가 구현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