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전소라는 한국전쟁 이후 초유의 참화를 겪은 지 9일이 지난 4월 14일 낙산사를 찾았다.
‘무료입장’이라는 표지가 세워져 있는 홍예문으로 경내에 들어서니 어지럽게 널려있던 타버린 건물과 집기 잔해는 말끔하게 치워져 있었다. 언뜻 보아도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은 모습이었다. 연인원 4700여명(14일 현재)이 헌신적으로 봉사활동에 동참한 결과였다.
경내 곳곳에 걸려있는 “낙산사 화재에 아픔을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는 현수막이 봉사자들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고 있었다.
뜻하지 않은 산불로 단체여행 일정이 대개 취소됐고, 방문객도 절반 이하로 줄어든 가운데, 낙산사를 찾는 발길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었다. 힘들 때 의지처가 돼준 데 대한 고마움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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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통보전 앞 마당 전경. 전각은 보이지 않고 군용 막사만 서 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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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의 포화도 이겨냈다는, 건재한 사천왕문을 지나 낙산사 중심부로 들어서자 인근 군부대가 세워준 군용막사 3동이 반긴다. 대부분의 전각이 불타버린 원통보전 주변에서는 유일하게 몸을 쉴 수 있는 곳이다. 여기서 낙산사 신도회원들이 관광객들에게 차를 대접하고, 기와불사를 접수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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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종 잔해가 제거된 자리에는 동종 표지석이 세워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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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품 논란이 있었던 동종이 녹아내렸던 그 자리에는 누군가가 1968년 보물지정 당시 세워진 표지석을 올려놓아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비닐테이프를 둘러쳐 접근을 차단해 잔해가 아직 그대로 있는 원통보전 터에는 인등용 등잔이 나뒹굴고 있었고 그 앞에 있는 7층 석탑은 외로이 남아 옛 낙산사에 대한 그리움을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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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통보전 터. 칠층석탑 뒤쪽으로 잔해가 아직 남아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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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을 에워싼 검게 그을린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하얀 해수관음상은 안쓰럽기만 하다.
텔레비전 보면서 답답한 마음이 들어 춘천에서 달려왔다는 양재수 씨는 “늘 이곳에 오면 마음이 편하고 흐뭇했는데, 이 같은 참화를 당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며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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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통보전 안에 켜두었을 인등용 등잔이 바닥에 나뒹굴고 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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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경내가 소란스럽다. 수학여행 온 고등학생들이다.
“불씨 하나 잘못 버려 발생한 산불로 우리는 원통보전과 동종이라는 소중한 보물을 잃고 말았어요. 산불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겠죠?”
보물 제479호 동종이 걸려 있던 종각 터 기단 위에 올라선 선생님이 수학여행 온 학생들을 향해 소리친다. 낙산사는 어느새 ‘산불 체험학습장’이 돼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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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제품 동종. 구리 함유비율이 낮아 고열을 견뎌낼 수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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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여행단을 이끌고 낙산사를 찾은 서울의 대동정보산업고 교감 금홍섭 선생님은 “화재현장으로 수학여행 온다는 것이 미안했지만, 강원도교육청이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고 교육 효과가 크다고 여행을 권장했다”며 “이번 방문을 통해 학생들이 산불의 위험성과 문화재의 소중함을 깨달았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낙산사가 ‘산불 체험학습장’으로 전락한 것 같아 서운해도, 찾는 이가 있다는 것은 분명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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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낙산사에서 홍련암 가는 산길. 울창하던 소나무 산림이 재로 변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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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이 안정을 찾으면서 최근에는 작은 공사들도 이뤄지고 있다. 의상교육관 2층에서는 불단조성 공사가, 홍련암 법당 옆에서는 요사채 공사 등이 진행되고 있는 것. 불단이 완공되면 의상교육관 지하에 있는 건칠관음보살좌상(보물 제362호)은 2층으로 올라오게 된다.
화재 이후 낙산사가 결정적으로 달라진 점은 6일부터 시작된 참회기도에서 찾을 수 있다. 참회기도를 하면서 낙산사 홍련암에서는 24시간 목탁 소리가 끊어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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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수관음상이 화마를 피했다지만 앞의 석등에 남아있는 그을음이 화재당시의 위급함을 말해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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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지변과도 같은 산불이었지만, 그 모든 것이 우리 모두의 공업(共業)으로 말미암은 결과라는 자성에서 시작됐다. 참회기도는 5명의 스님이 2시간씩 교대로 해서 24시간 쉬지 않고 이어가고 있다. 동참자가 한 명이든 두 명이든 기도는 계속된다.
해조음(海潮音)을 배경으로 울려 퍼지는 정근 소리에 금방이라도 무명이 걷히고 깨침의 문이 열릴 것만 같다. 업장을 녹여 이 같은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참회기도야말로 진정한 낙산사 복원의 시발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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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낙산사 복원의 염원을 담아 기왓장에 글자를 적어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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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본격적인 복원작업에는 다소 시일이 소요될 전망이다. 화재 당일 모든 소실전각과 동종을 국고지원으로 복원하겠다고 밝혔던 문화재청(청장 유홍준)이,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전각으로 국한할 것임을 밝히더니, 급기야는 국가지정문화재로 대상을 대폭 좁히는 등 우왕좌왕하고 있기 때문이다.
피해규모에 대한 평가도 문화재청은 30억으로 추산하고 있는데, 사찰측의 300억이나 양양군의 93억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문화재청의 복원의지까지도 의심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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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낙산사 입구 홍예문. 윗쪽 전각 부분은 불타고 돌만 남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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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낙산사 주지 정념 스님은 14일 “원통보전만큼은 국민들의 동참으로 복원하고, 낙산사 산림 또한 국민이 한 그루 한 그루 심은 마음의 동산으로 일구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