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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이어서)
▲ 질문자1: 늘 이렇게 좋은 말씀 해주심을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늘 좋은 말씀 해 주시고 답을 미리 알려 주셨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몰라서 서너 가지 질문 올리겠습니다.
지난번에 성철스님께서 열반에 드시고 많은 불자들이나 그 밖의 사부대중들이 모두 불교에 대해서 좀 더 깨닫고 알고 그래서 불국정토가 빨리 되는가 했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지난번에는 큰 법난이 종단에서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회의를 갖고, 또 우리 불자들은 이것이 하나의 시련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수습국면에 들어서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같이 생각이 됩니다. 우리가 어떠한 마음을 내야 다시는 이러한 일이 없이 빨리 불국정토를 이룰 수 있는 것인지요. 그리고 그렇게 해나가려면 우리 불자들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것에 대해서 말씀 주시기 바랍니다.
▲ 스님: 보십시오. 바다의 물이 곱게, 파도를 이루지 않고 잔잔한 대로 그대로 있다면 어떻게 물속에 깊숙하게 있는 그 고기들이 살 수 있으며 위에서 다니는 고기들이 살 수 있겠습니까? 한바탕 회오리바람이 불어서 뒤집어놔야 밑에 있는 양식을 위에서 먹고 위에 있는 양식을 밑으로 내려보내고, 태양열도 밑으로 내려보내고 온기를 찬기와 서로 섞어서 다 공식할 수가 있는 거죠. 그러니까 공식할 수가 있기 때문에 공용도 할 수가 있죠. 모든 게 교훈 아닌 게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시련이라고 생각을 해서는 절대 안 되죠. 이건 바로 공생 공심으로서 공용하기 위한 사부대중의, 뭐라고 했으면 좋겠습니까? 순환이라고 그럴까요?
▲ 질문자1: 네. 그렇게 하면 좋겠습니다.
▲ 스님: 정맥 동맥이 서로 돌아가서 순환이 돼서 몸뚱이가 아주 건강하게 잘 살 수 있게끔 하기 위한 방편이라고 볼 수 있겠죠. 어떠세요?
▲ 질문자1: 네. 잘 알겠습니다.
▲ 스님: 그러니깐 입 꼭 다물고 눈 지그시 감고 싱그레 웃고 돌아갈 수밖에 없죠.
▲ 질문자1: 잘 알겠습니다. 두번째 질문 올리겠습니다. 마음공부를 하다보면 상당히 의증이 많이 들 때가 있어서 마음공부 하는 데 방해가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스님께서 가르쳐 주실 때는 의증이 생기면 경에도 의지하지 말고 타의에도 묻지 말고 사량으로도 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그 의증을 좀 더 손쉽게라고 그럴까요,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가르침 주시기 바랍니다. 공부에 많은 지장을 주기 때문에 말씀드립니다.
▲ 스님: 이게 하지 말라 하면 어폐가 있는 겁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나가는데 그대로입니다. 경을 보지 말라 하는 게 아닙니다. 경을 보되 보지 말라고 그랬지 누가 보지 말라고 그랬습니까? 보되 보지 말라고 그랬죠.
▲ 질문자1: 의지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걸로 제가 알고 있어서 말씀드립니다.
▲ 스님: 네, 어디에도 의지하지 마시라 이런 거죠. 그냥 보고 모든 걸 참작하고 먹을 건 먹고 버릴 건 버리고 자신이 그럴 일이지, 관습에 이끌려도 안되고 거기에 의존을 해도 안되고, 집착을 해도 안되고, 모든 거는 그저 공해서 찰나찰나 돌아갈 뿐이니까 그걸 붙들고 늘어지면 고(苦)가 오히려 생기죠. 그리고 벗어날 수 없는 길이 바로 첩첩 그냥 쌓입니다.
▲ 질문자1: 네, 알겠습니다. 우리 사람이 한번 세상에 나기가 그렇게 참 기막힌 인연으로 해서 온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올 때 가지고 온 업이 또는 습이 살아가는 데 많은 괴로움을 줄 때 그 습을 덜 수 있는 방법이 어떤 것인지 가르침 주시기 바랍니다.
▲ 스님: 그래서 여러분이 이 세상에 탄생을 해서 나왔으면, 나왔으니까 지금 살고 계시죠? 그런데 나온 자체를 형성시킬 때 자기 과거에 살던 영혼 자체가, 바로 뿌리가 자기를 어느 남녀를 빌려서 자기를 형성시킨 거거든요, 바로! 그러니까 그놈이 다 하는 거니까 그놈한테다 생각을 해야죠. 그놈이 하는 거니까. 지금 껍데기가 하시고 계십니까?
▲ 질문자1: 아닙니다. 아닌데 이제 그 습이 빨리 없어져야만 마음공부하는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하는데, 쉽게….
▲ 스님: 그러니까 한군데다가, 용광로라고도 하고 주인공 뿌리라고도 하는 거기다가 그냥 모든 걸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자체가 몰락 그놈이 하는 거로구나, 그놈이 들이고 내는구나.’ 이렇게 놓으면 그냥 몰락 닥치는 대로, 용도에 따라서 닥치는 대로 거기다 놓고 굴려서, ‘아, 구정물이 나오게 하는 것도 너니까 새 물이 나오게 하는 것도 너뿐이다.’ 구녘은 한 구녘밖엔 없으니까. 우리가 나오는 구녘이 어딥니까? 남녀를 막론해 놓고 자궁이죠? 자궁 한군데서밖에는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궁 안으로 도로 넣어야, 자기가 살고 있는 전체를 자궁 안으로 도로 집어넣어야 다시 정신계에 태어난다 이 소립니다, 얼른 쉽게 말해서. 그러니까 그놈으로서 모든 게 들이고 내고 하는 거니까 그놈한테다 몰락, 요거 하나 조거 하나 이렇게 따지면 얼마나 수효가 많습니까?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 수효 많은, 들이고 내는, 자기 몸뚱이가 움죽거리는 그 자체까지 전부 몰락 그놈이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거기에서, 입력돼서 나오는 데다가 다시 입력을 한다면 그 앞서의 입력한 거는 모두가 무너집니다.
▲ 질문자1: 네, 잘 알겠습니다. 아주 어리석은 질문이 되겠습니다. 지금 우리라고 해서 이것이 분별심을 갖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우리보다도 더 어려움을 겪는 세계 많은 민족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는 해방이 되고 나서 그전에도 많은 고통을 일본으로부터 받았지만 해방이 되고 나서 지금 한 오십 년 동안 남북으로 갈려서 지금 한 쪽은 핵을 가졌다 안 가졌다 하면서 상당히 세계가 어수선한데, 특히 우리나라에는 많은 국민들이 마음속에 괴로움을 갖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 남북에는 객관적으로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 한 오백만에서 천만 명이 오십 년 동안 서로가 그리워하면서도 다시 전쟁 공포 같은 생각 속에 사로잡혀 있는데, 북한에도 우리 불자들이 많이 있어서 이렇게 우리가 평화롭고 화평하게 살기를 원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이 빨리 이루어지기 위해서 우리 불자들은 어떤 마음을 내야 될지 좋은 말씀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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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님: 어떤 마음을 일부러 내는 거는 아니지마는 절실히 생각하고 생각내는 것이, 우리가 금방 핵을 만들어서 죽는다 하더라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그러한 마음자세, 즉 말하자면 죽는 걸 겁내지 않는 마음자세가 있다면 아마 빙그레 웃을 겁니다. 왜냐? 그 핵도 내 손아귀에서 놀고 있으니깐 말입니다.
아니, 나라고 그런다고 또, 예수처럼 나를 믿으랬다고 그냥 예수만 믿고 돌아가듯이, 각자 ‘너’라고 그런 건데 그냥 나라고 그랬기 때문에, 자기가 나라고 그랬기 때문에 사람들이 ‘나’라고 그런 거죠. 나라고 그래야 할 텐데, 당신이 당신을 믿어야 되겠다고 생각을 했던 것처럼 내 손아귀에 있다고 한 건 여러분 각자 손아귀에 있으니까 눈 하나 깜짝 안 해도 되지 않겠느냐 하는 그런 마음을, 힘이 있다는 얘깁니다. 그 힘이 말해주는 거지 핵이 말해주는 게 아닙니다. 핵도 우리 인간이 만들어 내는 겁니다. 만약에 비행사가 비행기를 타고 가는데 사람 하나 딱 정신을 잃게 한다면 그 비행기는 떨어지게 돼 있습니다.
안 그럽니까? 그러니까 그 핵도 아무리 우수하다, 아주 무섭다 할지라도 겁낼 게 없죠. 여러분이 왜 겁을 내야 합니까? 핵이라고 왜 겁을 내야 됩니까? 여러분은 우주 천체에 모두 직결이 돼서 상응하고 있고 공존하고 있는데, 아니 핵 그것을, 조그마한 우리 반쪽 나라에서 만들어서 다 여기를 씌워서 죽인다 하더라도 겁낼 거 하나도 없습니다. 겁낼 게 없기 때문에 씌워서 돌아가시지들은 않을 테니까요.
▲ 질문자1: 네, 잘 알았습니다. 오늘 감사합니다.
▲ 스님: 여기다가 하려고 그런다면 그 핵이 자기가 자기 죽일 수는 없거든요. 그러니까 핵이 날라서 달아나가게 돼 있죠. 그러니까 염려 놓으셔도 돼요.
▲ 질문자1: 그런 염려보다도 우리가 이제 헤어져 산 것이 너무 긴 것 같이 생각돼서 빨리 합쳐졌으면 해서….
▲ 스님: 네, 그런 말씀을 하시니까 한마디 더 해야 되겠군요. 지금 우리가 아래 위가 서로 교환해서 서로 잘 먹고 살기 위한 방편으로써 지금 밀물이 들어온다면 썰물이 되고 썰물이 들어온다면 밀물이 되고 이렇듯이, 우리가 그러한 앞으로 닥치는 일이 아마 동이 터지기 위해서 그런 게 아닌 가 이렇게 봅니다. 그러니까 너무들 걱정하지 마세요. 그저 힘이 있는 사람은 빙긋이 웃고 돌아 그냥 걸어가고, 힘이 없는 사람은 그냥 ‘아이구, 아이구’ 하고 뛸 겁니다. 그런데 뭐이 그렇게 좋겠습니까? 그렇게 애탄지탄하니 병들고, 또 애탄지탄하자니 ‘죽을 때에 좀 재산이라도 있으면 쓰고 싶은 대로 쓰자.’ 이럴 수도 있고, 아니 방탕해질 수도 있고요, 사람의 마음이. 그러니까 절대로, 내일 있다가 아니 일 초 후에 죽는다 하더라도 사과는 심궈야 되겠죠?
▲ 질문자2: 오늘 이렇게 좋은 가르침 주셨는데 사실 질문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좋은 가르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둘이 아닌 도리에 대해서 여쭙고자 합니다. 인간이 오랫동안 진화해 오면서 서로 얽히고설켜서 한 피를 나누어서 육신까지도 둘이 아니라는 말씀이신지, 아니면 불성이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말씀이신지요? 만약 불성이 둘이 아니고 하나라면 거기에도 의문점이 있습니다. 둘이 아닌 하나라면 하나의 불성만 깨달아도 모두가 깨달을 수 있어야 할 텐데 그렇지 않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 스님: 세 가지로 요약해서 얘기해 드리죠. 어떠한 말에도 좀 제각끔들 아시게끔요. 첫째, 내 뱃속에 있는 생명들이 둘입니까? 나와 여러분과 둘 아니죠? 둘입니까, 둘이 아닙니까?
▲ 질문자2: 둘이 아닙니다.
▲ 스님: 그리고 또 지금 지구가 어디를 끼고 돌아가나요. 태양을 끼고 돌아가죠? 그 또한 둘이 아니죠?
▲ 질문자2: 예.
▲ 스님: 또 셋째,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수명을 70이든 80이든 살다가 금방 죽으면 또 딴 자식이 돼 버려요. 곤충으로 태어나든지 짐승으로 태어나든지 사람으로 태어나든지 그냥 곧바로 자식이 돼 버려요. 자식이 됐다 거기서 또 부모가 됐다가 또 죽어서 또 딴 데로 또 태어나게 돼 있어요. 그러니까 곤충에 이르기까지 사람까지 돌아가면서 이렇게 부모가 됐다 자식이 됐다 이러니 넓게 본다면 하나도 남이 없어요. 그래서 밤과 낮을 하루로 친다. 밤이라고 해서 따로 떨어진 게 아니고 낮이라고 그래서 따로 떨어진 게 아니다 이겁니다. 밤과 낮은 동시에 있는 거다, 안 그럽니까?
▲ 질문자2: 네, 그렇습니다.
▲ 스님: 예, 동시에 있으니까 밤이라는 이름하고 낮이라는 이름뿐이지 이건 둘이 아니다 이겁니다. 이런 거와 같이 인간도 곤충에 이르기까지 돌아가면서 자꾸 화해서 변하고 자기가 한 것대로 모습을 가지고 나오니 이게 기가 막힌 일이다 이겁니다. 그런 거를 모르고 여러분은 그냥 살아나가는데 그런 거를 뭐 ‘내가 멋지게 태어나야지. 그래서 내가 이런 걸 믿어야지.’ 이러지도 마시구요, 그냥 순수하게 그대로, 그 엄청난 도리가 그렇게 해서 돌아간다는 원리만 안다면 그대로 스무스하고 인간의 자세를 인간의 자세대로 그대로 진행할 수 있는 실천을 옮기십시오.
그러면 그대로 우리가 둘 아닌 거를, 넓게 보면 둘이 아니고 좁게 보면 너가 있고 내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예전에 큰스님네들이 ‘야, 모두가 둘이 아니다.’ 이러기 이전에 ‘모두가 없다.’ 하하하…. ‘모두가 없다. 그러나 없는 가운데 너는 너대로 있고 나는 나대로 있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신 예도 있죠.
그러니까 우리가 간단히 생각할 때에 세균이라고 그럴까요? 몸속에 있는 세균을 이름해서 세균이라고 한다면 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 사람은 세균의 집합소입니다. 그런데 세균이 없으면 내가 쓰러지고 없는 겁니다, 또. 그러니 이거를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둘로 나누어야 되겠습니까? 둘로만 나누는 게 아니라 천차만별로 그냥 나누어야죠. 쪽쪽이 나누어야죠. 우리가 컵으로, 이걸 나누어서 헤아릴 수가 없는데도 먹는 거는 한 컵 먹으면 같이 나누어 먹는다 이겁니다. 같이 나눠 먹고 같이 일하고, 나가서 벌이를 해도 같이 일하기 때문에 돈을 번 거지 같이 일을 안 했으면 돈을 벌수가 없죠.
그렇기 때문에 공생이면서 공심이면서 공용 공체 공식화 하고 돌아가고 있다. 그렇게 하고 돌아가는 찰나 찰나에 나는 수효가 매연하게 헤아릴 수가 없지만, 바로 그거를 한데 합치면 하나로 돌아간다. 그걸 또 합치면 하나마저도 공해버렸구나! 이 도리를 우리가 알아야죠. 그러니깐 모두가 둘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니 내 몸 아님이 없고, 내 아픔 아님이 없고, 내 고가 아님이 없다고 이렇게 말씀들은 하셨지만 우리가 생각 한번, 이렇게 발달된 이 세태에서 지금 생각해 볼 점이 있다면 아! 모두가 시대에 따라서 관하고 시대에 따라서 공했다는 걸 우리가 과학적으로도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 질문자2: 마음 깊이 가르침 명심하고 열심히 정진하겠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마음, 이 마음은 우리 몸 안에 어디에도 없습니다. 또한 몸 밖 어디에도 없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에는 사람의 두뇌가 모든 것을 생각하며 지시 명령하는 걸로 봐서 사실은 두뇌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맞는 생각인지요? 가르침 주시기 바랍니다.
▲ 스님: 하하하. 아, 두뇌에서 붙잡을 수가 있소? 두뇌에서 잡고 있을 수가 있소, 두뇌에서 그 소리를 여러 가지로 낸다고 해서 그 소리를 잡을 수가 있겠소? 볼 수가 있겠소? 그건 두뇌에 있는 것도 아니고 몸에 있는 것도 아니고 몸 바깥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단 하나, 그렇게 그렇게 광대하고 묘하기 때문에 우주하고도 직결이 돼 있는 거고 이 세상하고도 가설이 돼 있는 거지 만약에 붙잡을 수 있는 거라면 그거는 아니죠. 그렇기 때문에 아주 그건 묘하고 참 불가사의한 거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다 제각끔 그 마음들이 아주 부처님입니다. 그 마음이 부처입니다. 마음내는 건 중생이고 그 마음이 부처입니다.
그래서 마음내기 이전이라고 하죠. 그러니까 그 마음이 부처고 마음내는 것은 중생인데, 그 중생이 마음내는 거를 다스린다 이겁니다. 그래서 선장이라고도 하죠. 그러니까 언제나 그 선장은 잘못되고 잘되는 걸 잘 알기 때문에 그거를 알게 해주는데도 마음을 낼 때는 번연히 알면서도 일을 저지르죠. 그러니까 저지르지 않게 하기 위해서 누진에서 자꾸 주는 대로 누진을 통해서 주는 대로 그것을, 누진은 직결이 돼 있어요. 그 주는 대로의, 자기가 그걸 받아서 ‘아, 이거는 이럭하면 안 되겠구나. 이거는 건너뛰어서 되지 않는 거로구나.’ 하는 걸 다스리면서 모든 걸 거기다 맡기시라 이겁니다.
▲ 질문자2: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간단히 여쭙겠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금방 이랬다 저랬다 찰나찰나 변하는데 그렇게 변하는 근본은 무엇이며 왜 그러는지 가르침 주십시오.
▲ 스님: 지금 왜 그러시는지, 그 말을 왜 묻는지 물어보시오. 그 말을 왜 묻는지, 왜 하고 있는지, 그거를 물어보면 될게 아뇨? 왜냐하면, 아까도 얘기했듯이 그 마음은 지금 이 안에도 천차만별이요, 바깥에도 천차만별이야. 그 의식들이 수없이 돌아가고 있고 지금 원자 속에 그냥 잔뜩 차있다고요. 그러면 그게 그냥 보이지 않게 시시각각 그 마음이 나오게끔 되는 것인데 그거를 왜 어디서? 자기가 있으니까 있는 거지 자기가 없으면 뭐가 있겠소? 그러니까 원인은 자기라! 자기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나오는 것이니까 자기한테 자기가 물어야지 나한테 물으면 되겠소?
그러니까 자기 현재 자(子)가, 즉 말하자면 과거의 부(父)한테 물어봐야지. 역시 과거에 자기가 살던 그 뿌리가, 영혼의 뿌리가, 근본이, 즉 말하자면 어느 남녀를 빌려서 자기가 형성시켜가지고 자기가 지금 다니면서 이렇게 살고 있으니까 자기한테 자기가 물어야지 누구한테 묻겠소.
꼭 그거는 공부하려는 사람은 알면서도 묻고 몰라서도 묻고 물어야, 이게 서로 대화가 이루어지고 그러기 때문에 묻는 거지, 묻는 여러분을 아주 몰라서 묻는다고는 생각 안 합니다. 그러니깐 방편으로써 여러분하고 동참하고 서로 도반으로서 배우기 위해서 방편으로 질문한다는 거를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알더라도 질문은 하시고 모르는 건 모르는 것대로 질문하시고 그렇게 하십시오. 그러되, 지금 그렇게 하게끔 만드는 놈이 어떤 놈이냐 하는 것을 그놈한테다 물어보세요.
▲ 질문자2: 네, 잘 알겠습니다. 오늘 높으신 가르침 가슴 깊이 간직해서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질문자3: 제가 오늘 이렇게 나온 거는 질문을 하고자 나온 게 아니고 스님의 큰 법력이 얼마나 높은가 하는 걸 제가 직접 느꼈기 때문에 그걸 말씀드리고자 나왔습니다.
▲ 스님: 편안히 앉아서 그걸 들고 하세요.
▲ 질문자3: 저는 안산에서 조그만 약국을 하고 있는데요, 저도 의학인이고 장남인데 아들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님이 갖은 병원에를 왔다 갔다 주선해 주기도 하고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어머님이 선원에 같이 나가보자 하셨는데, 그때만 하더라도 저가 어째 선원에 나가면 되겠는가? 하는 의구심이 참 많았습니다. 그래도 밑져야 본전이 아닌가 싶어가지고 어머님하고 우리 집사람하고 저하고 하여튼 열심히 다녔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어느 날 갑자기 임신이 됐어요.
그래가지고 얼마나 좋은지 ‘참! 큰스님 법력이 놀랍구나’ 했는데 어떻게 된 건지 병원에 갔더니 자궁 외 임신이 됐다 그래서 큰 대수술을 받았습니다. 목숨까지도 왔다 갔다 한다고 의사가 말하길래 더욱더 놀랐어요. 임신이 됐는데 잘못하면 사람까지 죽을 수 있다 하니까 뭐, 애는 둘째고 제발 사람만 좀 살려달라고 인제 의사한테 그렇게 말했습니다. 의사의 말은 뭐 사람 목숨은 다행히 살리겠지만 자궁 외 임신 하면 다음부터는 아마 임신이 힘들 거라고 그랬어요. 그래서 ‘아, 완전히 인제 임신하고는 담 쌓았구나’ 절망으로 빠져들어가 버렸어요. 그래도 한 가닥 희망을 가지고 스님을 친견하고 날마다 다녔죠. 그리고 관하는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그 말씀을 듣고 진짜 저는 뭐 가끔가다 왔는데 우리 집사람은 매일 여기에 오다시피 왔어요. 그런데 수술한 지 한 달 만에 임신이 또 됐습니다. 아, 저도 놀라고 온 집안이 다 놀랐어요.
▲ 스님: 꽤도 좋으시겠소.
▲ 질문자3: 자궁 외 임신 하고 다시 임신한 사람은 유산이 될 확률이 많다 이래서 또 걱정을 하고 이랬는데 무사히 10개월을 넘겨가지고 아들을 낳았습니다. 제가 이 체험담을 여러 번 말해야지 했는데 영 이런 기회가 오질 않더군요. 그런데 어제 갑자기 저한테 질문을 해라 그래서 질문보다는 이렇게 좋은 스님의 법력을 제가 체험한 걸 이야기드리는 겁니다. 감사합니다, 스님.
스님: 여러분! 그것이 내가 잘해서만이, 내가 귀한 원력이 있어서만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전자 줄과 내 전자 줄이 맞닿지 않았더라면 그게 어떻게 불이 들어오겠습니까? 그러니 여러분의 원력이요, 내 원력이 둘이 아니니 그것이 바로 둘 아닌 한마음이기 때문에 불이 밝게 들어온 거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어린애만 낳는다고 해서 또 어린애 낳았다고 좋아하는 건 아닙니다. 혼백 뿌리 자체가 아주 차원이 높아야, 높은 영령이 내 애기로 맞이가 돼야 이거는 정말이지 빛나는 그런 생애입니다. 속도 썩지 않을 거고, 효도도 받을 거고 빛도 날거고, 나라에 말입니다. 그러니까 여러 사람들도 건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공자 어머니가 칠 년을 기다려서 어린앨 낳아서 공자를 낳았듯이 말입니다. 나한테 잡종이 들어온다면 말이 안되죠. 그러니까 선종이 들어와서 애기가 돼야 되겠으니까 여러분이 마음을 잘 쓰셔야죠. 이왕지사 낳은 분들은 또 마음을 서로 썰물 밀물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듯이 관하는 공부를 자꾸 거기다 넣었다 꺼냈다 넣었다 꺼냈다 하면 그냥 넓어지죠, 또.
▲ 질문자4: 울산지원에서 올라왔습니다. 스님 법문 선법가 중에서 「선종관문 알아보세」라는 그 중에서 마지막 귀절에 보면요, ‘향운공을 양식하여’라는 귀절이 나오거든요. 제가 그게 어떤 뜻을 지니고 있는지 항상 마음속에 관해서 제 나름대로 내린 결론이, 모든 올라오는 번뇌망상이나 모든 것을 주인공 자리에다 되돌려 맡기는 것이 향운공을 양식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그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 스님: 핀트가 조금 틀렸어요. 허허! 향을 올리는 거나 다기를 모시는 거나 이게 공양입니다, 그래서 공양! 그래서 마음은 하나로 돌아가니까 그저 그 공양을 올리되 공양이죠, 공향이고! 공향이니까 한 어떤 개별적인 사람한테 이렇게 하는 게 아니고, 부처님이다 하면 여래의 집단이죠. 여래, 여래, 여래라는 건 어떠한 생명이든지 다 같이, 보이지 않는 생명이나 보이는 생명이나 또 말이 없는 생명이나 말이 있는 생명이나 모두 한데 합쳐서 향을 한 꼬비를 피우더라도 공향을 드려 올려야죠? 공향! 그러니까 ‘공향’이 일체제불의 마음이든지 전체가 그냥 하나로 공양을 올리게 되는 거죠. 그래서 공향이에요.
▲ 질문자4: 잘 알겠습니다.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 스님: 통신 아닌 통신이 되는 거죠. 여러분이 나와 더불어 도반으로 생각하시고, 내가 오늘 말해드린 뜻을 아주 깊이 생각하셔서 이 지구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우리 몸 안에서 무명 속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되고, 이 세상에 모든 돌아가는 관습이나 그 착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모든 거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거를 한데 모아서, 내 몸뚱이가 움죽거리고 들이고 내는 데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절대 내 자생중생들이 무명에서 벗어날 수가 없으니까 나도 무명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각자 여러분 말입니다. 그러니까 열심히들 우리 공부하시도록 하십시다. 생활공부 말입니다.
(광주지원 합창단 노래공양이 있은 후)
▲ 스님: 그렇게 새 마음으로써 내는 그 마음이 바로 과학일 뿐만 아니라 그것이 문리요, 그것이 지혜고, 우리가 아주 묵은 나무에서 꽃을 피게 하고 그 꽃이 피게 하면 열매는 물론 열리겠고 그 열린 열매는 물론 익을 거고, 참! 맛을 알게 해줄 수 있는 그런 여러분의 나무가 아주 푸르르군요.
※ 위 법문은 대행스님 법어집 「한마음」의 내용 중에서 79호를 발췌한 것입니다. 한마음선원 홈페이지(www.hanmaum.org나 한마음선원)에서도 같은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