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8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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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공원에서 본 ‘시체 전시회’ 이야기
교육적인 너무나 교육적인 그러나…

독일 해부학자 군터 폰 하겐스(Gunther von Hagens)가 시작한 인체의 세계(Body Worlds)전 포스터.
지금 에버랜드와 어린이대공원에서는 비슷한 형태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애버랜드의 ‘미공개 인체 신비전(Bodies revealed)’과 대공원의 ‘2005 신비한 인체 한국특별전’이 그것들이다. 타이틀도 다르고 주최측도 다르고, 시체를 처리하는 방법도 다르다고 하지만, 똑 같은 내용의 전시회다.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전시회가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보았던 ‘진짜 시체들’이다.

이들 전시회의 뿌리는 물론 독일 해부학자 군터 폰 하겐스(Gunther von Hagens)가 시작한 ‘인체의 세계(Body Worlds)’ 전이다. 1995년 일본 동경에서 시작한 후로 전 세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던 바로 그 전시회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그 전시회가 2005년 봄, 두 가지 서로 다른 탈을 쓰고 부활했다. 그것도 두 군데 서로 다른 어린이 놀이공원에서.

‘인체의 세계(Body Worlds)’ 전은 처음부터 ‘교육’을 목적으로 내걸고 나왔던 프로그램이었다. 교육이라 하니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놀이공원이 제격일 수도 있겠다. 그래서 이들 전시회는 하나 같이 ‘어린이들에게 인체 교육의 소중한 기회’를 제공한다는 고상한 보도자료들을 내놓고 있었다. 실제로 담배로 찌든 시커먼 폐와 건강한 폐의 대비는 대단한 교육효과를 가져 오는 듯 했다. 전시회장 여기 저기에서 아빠와 아이들이 담배를 주제로 토론을 벌이는 장면들을 쉽게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 저기 몰두해서 ‘진짜’ 공부를 하고 있는 아이들도 있기는 했다.

‘인체의 세계(Body Worlds)’ 전은 시작부터 두 가지 점에서 관심을 끌었다. 하나는 이런 전시회가 가능할 수 있었던 획기적인 ‘시체를 처리하는 방식’이었다. 군터 폰 하겐스가 발명했다는 플래스티네이션(plastination)이라는 기술이다. 고분자 화합물인 ‘폴리머’를 시체 조직이 함유한 수분이나 지방 대신에 삽입하여 고정시키는 방법이다. 다른 하나는, ‘시체를 전시하는 예술적인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런 ‘예술’은 독창적인 것은 아니다. 그 예술은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가, Gaspar Becerra 로부터 빌어 온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종류의 ‘예술’은 대단히 자극적이다. 실물이 주는 충격은 그림과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어른들’도 멍하게 만들어버리는 것 같았다. 사실 이런 ‘예술’은 ‘인체 교육의 소중한 기회’와는 아주 다른 성격의 것이다. 아이들은 제 가죽을 벗겨 들고 서 있는 시체를 보면서 어떤 교육을 받을지…. 아이를 뱃 속에 담고 있는 임산부의 모습은 또 어떤가? 저 시체들은 또 왜 저리도 인간적인 포즈를 잡고 있어야 하는가? 이런 교육은 통상적인 해부도나 인체 모형을 통해 상상할 수 있었던 교육은 아니다. 교육치고는 대단한 교육이다.

인체의 세계(Body Worlds) 전시회 포스터.
어떤 절에 법사 한분이 계셨다. 학문에 통달하고 언변이 교묘하여 어떤 법을 물어도 막힘이 없었다. 질문을 하는 사람들의 능력에 맞게 가르침을 펴니, 근교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와서 가르침을 들었다. 그리고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은 모두가 게으름을 부리지 않고 공부에 열중하게 되었다.

그 마을에 매음을 하는 창녀가 살았는데, 그에게는 아름답고 총명한 딸이 있었다. 미모와 학식은 물론이고 온갖 종류의 기예에 통달한 여인이었다. 미모의 딸은 법사 때문에 먹고 살기가 어렵게 되었다는 어머니의 불평을 듣고, 법사의 법회에 가서 훼방을 놓을 생각을 했다.

딸은 목욕을 깨끗이 하고 화장을 곱게 한 다음, 고운 옷에 보석과 꽃으로 분단장을 하고 법사가 법회를 하고 있는 장소로 갔다. 여러 시종들을 거느리고 떠들석하게 법회 장소로 들어서자, 법문을 듣던 사람들이 딸의 관능적인 모습을 보고 마음에 동요를 일으켰다. (중략)

그 때에 그 법사가 신통력으로 음녀(淫女)의 살을 벗겨 버리고, 백골만이 드러나도록 했다. 백골 사이로 오장육부 등의 내장이 그대로 드러났다. (중략)

법사는 노래로 설법을 하였다.


이제 여인의 몸을 보자면, 근육으로 뼈다귀를 이은 것일 뿐,
빈 뼈다귀를 모아 놓은 것, 서로 합하여 소리를 내니,
여인 속에 뼈가 있나, 뼈 가운데 여인이 있나
<대장엄론경(大莊嚴論經)>

대장경에는 이런 이야기들이 정말 많이 들어 있다. 더 섬찟하고 소름 끼치는 이야기들도 많다. 이런 게 불교식의 공부이다. 불교식의 교육이다. 저 법사의 신통력을 통해서 보자면, 폰 하겐스가 이제 우리 눈 앞에서 신통력을 나투고 있는 셈이다. 불교식으로 따지자면 저 전시장은 그대로가 수행의 현장이다. 몸의 이미지를 통해서 몸을 깨닫는 일이다. 이런 교육은 ‘백골관(白骨觀)’ 이니 ‘부정관(不淨觀)’ 이니 하여 수행의 방식으로 정교하게 체계화되어 있다. 원효대사도 해골에 담긴 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었다지 않는가. 티벳의 스님들은 해골을 그릇을 만들거나, 사람의 뼈로 여러 가지 도구를 만들어 상용하기도 한다. 공부를 위해서이다. ‘인체에 대한 공부’. 저 전시장에서 원효대사가 또 하나 나오지 말란 법도 없겠다.

저 전시장에도 여인의 시체들이 몇 구 전시되어 있었다. 죽어서 껍데기가 벗겨 지기 전에는 그들도 저 대장경의 여인처럼 고왔을 것이다. 그들의 근육은 언뜻 보기에도 닭고기나 돼지고기의 육질과 닮아 보였다. 어떤 시체는 자신의 내장을 한 무더기 안고 있기도 했다. 돼지 곱창이나 다를 바가 없다. 그런 모습들을 보고 키들거리는 사람들도 있고, 얼른 내빼는 아이들도 있다. 그들은 시체를 통해 죽음이 아니라 삶을 보는 듯 했다.

하지만, 폰 하겐스는 법사가 아니다. 그가 내세우는 ‘인체에 대한 공부’는 스님들의 공부와는 아주 다른 것이다. 전시장의 시체들 앞에는 머리가 아플 정도로 세세한 설명서들이 붙어 있다. 설명서만으로도 부족하여 제법 전문지식을 갖춘 듯이 보이는 도우미들이 나서 해설도 하고 질문에 대답도 해 준다. 그들의 공부는 해부학의 공부다. 이전에는 전문가들만이 볼 수 있었던 몸의 비밀이다. 이제 그 비밀을 보통 사람들에게 널리 베풀자는 것이다.

실제로 폰 하겐스의 전시는 여러 종류의 교육적인 메시지를 제시하고 있다. 담배를 피우면 일찍 죽는다든지, 낙태는 나쁜 일이라든지 하는 것들이다. 시체들을 보면 담박에 알아 차릴 수 있는 메시지들 같지만, 그의 메시지에는 매우 복잡한 전제들이 깔려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를 현대판 프랑켄슈타인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법적인 제재를 받기도 했고, 어떤 이들을 전시물들을 공격하여 파손시킨 적도 있었다. 그가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시키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인간의 몸은 그런 식으로 훼손되어서도 안되고, 그런 모습으로 전시되어서도 안된다는 이유였다. 담배나 낙태 따위의 메시지는 인간의 존엄성에 비하자면 너무 초라한 명분이었다.

게다가, 이런 비판에는 폰 하겐스의 개성도 크게 작용을 했다. 그는 시체들을 정당한 절차에 의해 기증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일부의 시체들은 중국으로부터 수입했으며, 그런 시체들 가운데는 죄수들의 시체가 끼어 있다는 비난들이 있었다. 무엇보다 그는 처음부터 이 전시회를 치밀한 사업가의 관점에서 다루었다. 선정적인 전시물들은 물론 사업적인 흥행을 목적으로 한 것으로 교육적인 목적과는 거리가 있었다. 저작권에 대하여도 매우 엄격해서 독일의 언론인들이 집단으로 취재를 거부하기도 할 정도였다. 전시회의 성공은 사업적인 성공으로 이어졌고, 그는 후속 사업을 위해 폴란드에 직원이 300명이나 되는 공장을 차리기도 했다. 그의 아버지가 그 공장의 경영을 맡았었는데, 그의 아버지가 나치의 공작원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곤욕을 치루기도 했다. 물론 전에도 그의 전시물에서 나치의 인체실험을 연상하던 사람들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어쨌든, 전시회는 어디 가나 대성공을 거두었고, 전 세계 수천만 명이 참관을 했다.

폰 하겐스에 대한 비판이나 비난은 요약하자면, 고결한 인간의 신체를 상업적인 목적으로 이용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시키는 일이라는 것이었다. 인간의 존엄성(Human Dignity), 삶과 죽음, 이 전시회에는 좋던 싫던, 그런 종류의 무거운 주제들이 따라 다닌다. 사람의 피나 장기들은 장사의 대상이 아니다. 자기 몸이라고 해도 몸의 일부를 팔고 살 수 없다. 법적으로 인간의 몸에는 소유권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존엄하기 때문이다. 조지 부시가 대통령이 된 이후 제일 먼저 했던 일 가운데 하나도 바로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시키는 일이었다. 그가 새로 구성한 생명윤리위원회는 그런 존엄성을 근거로 복제에 관한 연구 자체를 막아 버렸다. 이런 문제들은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들이 아니다. 서로 다른 의견들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어서 심각한 갈등들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그리고 그런 이견과 갈등들이 맞서는 전선 위에 폰 하겐스가 서 있다. 옳고 그름의 떠나, 그런 점에서 그의 전시장은 일종의 전쟁터라고 해도 무방하다.

더군다나, 그의 시체들은 앞에서 인용했던 대장경의 귀절 처럼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문제들을 곧 바로 묻고 있다. 누구도 쉽사리 대답할 수 없는 의문들이다. 불교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폰 하겐스의 전시장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위한 시뮬레이션의 현장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저 시체들을 통해 말이나 글을 떠나 곧 바로 의문에 맞설 수 있다. 폰 하겐스는 곧 바로 법사가 되고, 그의 시체들은 그대로 화두가 된다.

아무튼 저 전시회들이 이상적인 교육 환경을 제공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그렇지만, 문제는 그런 교육이 벌어지고 있는 장소이다. 왜 하필 그런 교육이 놀이공원에서 이루어져야 하는가? 그것도 동시에 두 곳에서, 순전히 상업적 목적만을 추구하는 업체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단 말인가? 놀이 공원은 어린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다. 그것도 초등학생 수준의 어린 아이들이다. 그들에게 인간의 존엄성이나 삶과 죽음의 문제 따위는 너무 벅차 보인다. 어른도 대답할 수 없는 물음들이다. 어른도 충격을 받고 멍청해지는 선정적인 자극들이다. 이런 일이 온당한 일일까? 제 정신을 가진 어른들이 어린아이들에게 던져 주어도 될 성격의 의문들일까? 세상에는 거친 일도 많고 풀기 어려운 난제들도 많다. 어떤 어른들은 그렇기 때문에 어린아이들에게도 거칠고 어려운 일을 체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강변한다. 아이들을 온실 안에서 곱게만 키울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럴 수도 있겠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놀이공원의 시체전시장은 납득하기가 어렵다.

이들 전시회가 지향하는 교육이란 인체에 대한 해부학적 지식을 가리킨다. 마땅한 해야 할 교육이겠다. 하지만, 놀이공원의 해부학은 무지막지하다. 교육도 좋지만, 이런 교육의 밑바닥에는 전혀 교육적이지 않은 전제들이 너무나 복잡하게 깔려 있다. 그런 전제들에 대해 비판을 한다거나, 의문을 제기하는 일도 별로 없다. 교육적이라는 명분과 사업적인 수완들이 만나 당연하다는 듯 명분을 주장하고 있다. 자신들도 모르는 일을 남에게, 어린 아이들에게 교육할 수 있을까? 몸에 대한 지식을 교육하겠다고 나서기에 앞서, 우리는 그런 전제들에 대해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폰 하겐스의 전시회를 가능하게 해 준 것은 그가 발명했다는 새로운 기술이었다. 기술이 바뀌는 만큼 세상도 변했다. 세상이 변했기 때문에 그의 자극적인 예술도 가능할 수 있었다. 폰 하겐스는 갖가지 비판에 대해 초연하다. 검은 수트에 검은 모자를 쓴 그의 모습은 당당한 프랑켄슈타인을 연상시킨다. 과거의 선입견들에 당당하게 맞서는 혁명가처럼 보이기도 한다. 세자의 몸에 종기가 나서 죽을 지경이 되어도 수술을 하지 못하게 하던 임금님도 있었다. 까닭이야 있겠지만, 대통령 부부가 한날 쌍커풀 수술을 하는 시대가 되었다. 세상이 바뀌었고, 몸도 바뀌었고, 몸에 대한 생각들도 바뀌었다. 황우석 교수 이후로 우리 사회 안에서도 몸과 생명에 대한 논쟁들이 거칠어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저 놀이공원의 시체들은 너무 무지막지하다. 그 자리는 몸과 생명에 대한 과거와 미래의 갈등들이 한꺼번에 부닥치는 혁명의 현장이다. 교육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아이들을 그런 전쟁터로 몰아대는 일이 옳은 일일까. 백보를 양보한다 하더라도 놀이공원의 전시는 터무니없어 보인다. 주말이면 수많은 인파가 전시장 안으로 밀어 닥치고 있다. 어른이건 아이이건 반성도 없이, 준비도 없이 저 시체들에 맞서야 한다. 전시장 어디에나 ‘진짜 시체’라는 설명이 넘치고 있다. 어른도 아이도 진짜 시체 앞에서 충격을 받아야 한다. 놀이공원 속의 시체 전시장은 우리 사회의 또 다른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충격과 경악을 당연시 하는 세상이라고나 할까. 교육이나 사업이니 하는 명분들을 앞세워, 반성도 없이 아이들을 그런 충격 속으로 밀어 넣는 사회.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공원에 갈 계획을 세우는 어른들이 있다면, 먼저 저 전시장만은 피하라고 권하고 싶다. 꼭 봐야겠다면, 아이들을 그 자리에 세우기 앞서 어른이 먼저 보고 마음의 준비를 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반성과 준비만 있다면 놀랄 것도 두려울 것도 없다.
오윤희 편집위원 |
2005-04-16 오후 2:11:00
 
한마디
이런 시눈 있는게 싫으면 보지마셈
(2005-04-19 오전 10:54:58)
39
이런 신문도 있나? 별...
(2005-04-17 오후 7:41:19)
36
중국에서 죄수들의 시체 뿐 아니라, 코마상태의 시체가 유입됐다는 등 돈이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을 통해 반윤리적인 과정이 포함되었다는 이유로 독일에서도 비판이 많았던 전시. 그런데, 필자의 말대로 하필이면 어린이공원에서라니. 그렇지 않아도 폭력물 등에 거의 무방비 상태로 놓이기 쉬운 요즘 어린이들에게 철학적 충격 이전에 인간 몸에 대한 경시가 먼저 자리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생긴다. 아무튼 하겐스에 대한 상세한 기사와 그런 전시를 불교적 관점에서 볼 수 있게 해 준 필자의 센스에 감탄!
(2005-04-17 오후 3:25:01)
39
나그네님 특정인에 대한 일방적인 비방을 삼가해 주셨으면 합니다. 하고 싶은 말씀을 조리있게 비판하시면 삭제하는 일은 없습니다. 불자다운 언행을 기대합니다. 죄송합니다. 붓다뉴스 관리자 합장
(2005-04-17 오후 12:34:20)
35
뭔 소리여?
(2005-04-17 오전 11:34:17)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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