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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앉아 피곤한 긴긴 밤 久坐成勞永夜中
차 끓이며 무궁한 은혜 느끼네 煮茶偏感惠無窮
한 잔 차로 어두운 마음 물리치니 一盃卷却昏雲盡
뼈에 사무치는 청한(淸寒) 모든 시름 스러지네 徹骨淸寒萬慮空
-진감국사 <무의자시집> 中-
한 편의 다시(茶詩)는 차를 마시며 느끼는 정취나 차 생활의 즐거움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많은 차인들이 다시를 쓰고 또 선현들의 다시를 애송하는 이유다.
다시란 좁은 의미로는 ‘차’를 주제로 읊은 시를 말한다. 이 때의 ‘茶’는 차의 재배와 제다, 음다(飮茶), 차를 마시는데 필요한 도구들을 아우른다. 불가(佛家)의 스님들이나 사대부, 문인들 사이에서 주로 지어진 다시는 차를 만드는 법과 마시는 법, 찻자리의 정취 등 차 생활을 노래하고 차를 통해 추구하고자 했던 이상(理想)을 담고 있어 차 문화사 연구에 큰 자료가 된다.
이러한 다시는 그 소재나 주제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차를 심고 가꾸는 일이나 차를 만드는 것, 우려 마시는 등의 차 생활 자체를 노래한 시다. 조선 후기 범해각안 스님은 “솥에서 데쳐내어/ 밀실에서 말린다/ 모나거나 둥근 차 찍어내고/ 죽순껍질로 포장하여/ 바깥 바람 들지 않게 간수하니/ 찻잔에 향기 가득하다니”라고 초의 스님의 제다법을 노래했다. 또한 “투박한 질화로 가져다가/ 약하고 강한 불 함께 담았네/ 다관은 오른쪽에 두고/ 다완은 왼쪽에 있다네”처럼 당시의 다법을 보여주는 시도 남겼다.
두 번째는 차를 선사하며 주고받은 시가(詩歌)다. 차와 시로써 깊은 교우를 맺은 이들로는 경호 선사와 이제현, 초의선사와 추사 김정희, 혜장선사와 다산 정약용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다산이 혜장선사에게 차를 청하며 보낸 ‘걸명소(乞茗疏)’는 널리 알려져 있다. 대각국사 의천 스님도 차를 보내준 사람에게 “북쪽 동산에 새로 만든 차를/ 동쪽 숲에 사는 스님에게 보냈도다/ 한가로이 차 달일 날 미리 알고/ 찬 얼음 깨고 샘줄기를 찾는다”는 시를 남기기도 했다.
세 번째는 차를 수행의 방편으로 삼은 시다. 스님들이 지은 다시 중 상당부분이 여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고려 말 나옹 선사가 “밥 먹고 갈증나면 차 마시고 곤하면 잠잔다”고 읊은 시에서 보듯이 차가 단순히 잠을 쫓는 음료만이 아니라 수행의 방편으로 사용됐음을 알 수 있다. 때문에 스님들의 다시를 통해 선맥(禪脈)을 밝혀보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 역대 고승의 다시>를 펴낸 무산 스님은 다시를 통해 차를 마시며 선수행을 하는 ‘다담선(茶湛禪)’의 유래와 실체를 짚어보고 있다. 고승들의 문집에서 차에 관한 시와 산문을 찾아내 정리한 <한국의 불교 다시>를 펴낸 혜봉 스님은 79명 스님들의 다시와 차 관련 산문을 통해 “일제시대에도 우리나라의 차맥이 엄연히 이어져왔음을 알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다시에 관한 연구는 다른 차 관련 분야에 비해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의 다시 연구서로는 <한국의 다시감상>(김명배 지음, 대광문화사, 1994) <한국 및 중국의 명다시감평>(정상구 지음, 세종출판사, 1995년) <한국다시작가론>(천병식 지음, 1996년) <한국의 다시>(김상현 지음, 민족사, 1997년) 등을 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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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봉 스님 인터뷰
“차 문화사 연구의 기본 자료인 다시(茶詩)에 대한 자료 발굴과 연구가 너무나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신라시대부터 광복 이후에 이르기까지 스님들이 쓴 다시를 우선 집대성함으로써 한국 불교 문화사의 외연을 넓히고 차 문화 연구의 발판을 마련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혜봉 스님(이천 지족암 주지)이 최근 신라시대부터 광복 후에 이르기까지 79명의 스님들의 다시 479편 513수와 차 관련 산문 50여편, 불교 다게(茶偈) 28편을 담은 <한국의 불교 다시>를 펴냈다.
- 출간 동기는?
“그동안 신문이나 잡지, 수필집 등에 몇몇 유명한 다시는 거듭 소개되지만 그 소재가 너무 제한되어 있다는 점이 안타까웠다. 마침 <종정열전(宗正列傳)>을 집필하며 고승들의 문집을 살피다보니 고승들의 다시를 많이 접하게 됐고, 불교 다시라도 제대로 집대성해보자는 뜻에서 책으로 엮게 됐다.”
- 가장 큰 어려움은?
“고승들의 문집을 일일이 확인하는 작업이 가장 어려웠다. 한 스님이 쓴 다시는 몇 편이든 모두 수록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다 보니 국역되지 않은 시를 번역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오역(誤譯)도 적지 않으리라 생각되는데, 원문을 함께 실어놓았으므로 눈 밝은 독자들과 함께 고쳐 나갈 수 있을 것이다.”
- 다시를 정리하며 느낀 점은?
“그동안 학계에서는 우리나라의 다맥(茶脈)이 초의ㆍ범해 선사 이후 단절됐다고 보았다. 하지만 금명보정 스님이 72편 79수에 이르는 다시를 남긴 것을 비롯해 해담 치익, 용성 진종 스님 등이 다시와 다화, 다론 등을 지음으로써 일제시대에도 우리의 다맥을 계승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청허 휴정 스님으로부터 초의 스님, 응송 스님을 거쳐 면면히 이어져 온 해남 대둔사의 다맥을 짚어볼 수 있었던 것도 큰 수확이라 생각한다.”
- 앞으로 연구 분야는?
“앞으로 일반인들의 문집과 시집을 정리해 다시와 차 관련 문헌을 집대성하는 작업을 할 것이다. 이러한 일들은 차 문화 연구의 기본 바탕을 이루는 일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