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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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의 가위손으로 사랑 다듬어요"
무료 이발봉사 25년 조병헌 씨


25년간 휴일을 반납하며 아이ㆍ어른할 것 없이 무료로 이발봉사해온 조병헌 씨.


“머리가 빨리빨리 자라야 아빠한테 또 머리 깎아 달라고 할텐데, 이번 달엔 머리가 늦게 자라는 것 같아 속상해. 빨리 아빠가 와서 내 머리 예쁘게 깎아주면 좋겠는데….”

“조거사 보시오. 25년째 장수노인정을 찾아와 이렇게 무료로 이발해 주니 그 고마움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구려. 그래서 우리 노인정 식구들이 한두 푼 모은 돈으로 1박2일 조거사와 함께 설악산 단풍놀이를 가기로 했다오. 그동안 애쓴 조거사의 노고에 대한 감사의 뜻이니 부디 사양 말고 꼭 함께 갔으면 하오.”

태어나면서부터 뇌성마비에 걸린 한명수씨(38)가 또박또박 정성껏 눌러쓴 일기장, 북가좌동 장수노인정의 최창식(87) 할아버지가 보내 온 감사 편지. 누구를 생각하고 쓴 것일까. 주인공은 바로 소외받고 형편이 어려운 우리 이웃들에게 자비의 ‘가위손’으로 25년 간 무료 이발봉사를 하고 있는 이발사 조병헌씨(57)다.
조씨는 매주 수요일마다 은평천사원, 은평재활원, 벽제 희망맹아원, 장수노인정 등을 찾아가 무료 이발 봉사를 하고 있다.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는 지체장애인들과 뇌성마비 환자들의 머리를 깎아 줄때면 몸을 심하게 흔들어대 그의 왼손은 가위로 베인 상처투성이다. 하지만 “이발 참 잘됐다”는 감사의 말 한마디에 언제나 싱글벙글 웃으며 삶의 보람을 찾는다는 조씨.

조씨가 무료 이발 봉사를 시작하게
조병헌 씨가 은평재활원에 있는 뇌성마비환자 철규(12)의 머리를 깎아주며 다정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된 것은 순전히 가난 때문이었다. 서울에서 어렵사리 생계를 꾸려가느라 제대로 효도 한번 못해보고 부모님을 떠나보낸 것에 한이 맺혀서다.

“1981년도였죠. 부모님이 돌아가신 지 6년이 지난 그 해 제가 운영하는 홍제동이발소 근처에 노인정이 생겼지요. 돌아가신 부모님이 살아 돌아온 듯 반갑고 기뻤습니다. 그곳에 계시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내 부모님이다는 생각으로 그분들의 머리를 깎아드리며 못다 한 효도를 대신했습니다.”

25년 간 무료 이발 봉사를 하다보니 웃지 못 할 얘깃거리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20년 간 친 아빠처럼 다정다감하게 보살펴주며 이발을 시켜줘 지금은 조씨를 진짜 친 아빠로 알고 조씨가 아니면 한사코 이발을 하지 않는 은평재활원의 뇌성마비환자 권영태씨(23). 비록 앞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이지만 조씨의 상냥한 목소리와 고운 마음씨를 통해 도화지에 그의 초상화를 그려서 선물하기도한 벽제 희망맹아원의 이필수씨(53). 은평재활원의 뇌성마비환자 시인 김소아씨(36)는 조씨를 알게 되면서부터 삶 자체가 바뀌었다.

“제가 11살 때부터 조병헌 선생님께서 제 머리를 깎아주셨죠. 신체적인 장애 때문에 사회의 어두운 면만 보고 비관적인 가치관을 가졌던 제게 조 선생님은 큰 선물을 줬어요. 바로 긍정적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보는 시(詩)를 쓰는 방법을 일러주신 거죠.”라며 조씨를 그리며 쓴 시 ‘종이학’을 낭송한다. “종이학의 꿈이/ 살포시 파란빛으로 다가와/ 내 마음에 물들면/ 종이학의 꿈이 물들 듯/ 내 꿈도 하나 가득 물든다”

20년 넘게 조병헌씨를 지켜 본 은평재활원 고재권 국장은 “냄새나는 남의 머리 자르는 것이 절대 쉬운 일은 아니죠. 특히 요즘 무늬만 자원봉사 한답시고 생색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조병헌 선생님은 우리 같은 사회복지사에게도 동기부여를 하는 기폭제 역할은 물론이고 사람과 사람사이의 사랑과 신뢰가 뭔지를 일깨워준 이 시대의 진정한 휴머니스트입니다”고 칭찬한다.
하지만 이런 그의 이발봉사가 늘 즐겁고 평탄치만은 않았다. 평소 조씨가 아버지처럼 의지하고 보살폈던 무의탁어르신인 故 조동섭 할아버지의 입원비 마련을 위해 백방으로 도움을 청한 적이 있었다. 주위 사람들은 “친 아버지도 아닌데 왜 자네가 병원비를 마련해야하나. 지금 제정신인가.”라며 냉대했다. 이런 그들의 말이 ‘정말 옳은 것일까’라는 의구심이 들자 이제 그만 이발 봉사를 포기할까라는 마음을 먹은 적도 있었다.


조병헌씨는 사회복지사 과정을 공부해 무의탁노인들을 돌볼 시설을 설립하고 싶다는 꿈을 지닌 채 열심히 이발봉사를 하고 있다. 사진은 조병헌 씨와 봉사를 함께 해온 이발도구들.


그러나 그런 생각이 들수록 “아빠 보고 싶었어. 다음에 또 꼭 와야해” “자네 얼만치 고생이 많은가. 밥 꼭 챙겨 묵고 다니그래이”라며 자신을 사랑해 주는 뇌성마비 아이들과 독거노인들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려 도저히 중간에 가위를 놓을 수 없었다.

“예닐곱 살 때 어머니 손을 잡고 고향 홍성에 있는 재계산 암자와 오소산 증암사를 찾아 어머니를 따라 절도하고 스님이 하는 염불도 중얼중얼 흉내 냈던 일이 어제 일처럼 눈에 선합니다. 특히 어머니는 아침저녁으로 <천수경>을 봉독하셨는데, 5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참회의 마음 , 자식을 위한 어머니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습니다. 이제는 저도 그 마음의 <천수경>을 항상 되새기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요.”

남이 알아주건 말건, 자신이 가진 이발 기술로 조금이나마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어 한없이 기쁘고 오히려 그들에게 더욱 감사하다는 조씨. 이제 그는 40년 간 피땀으로 일구어 낸 이발소를 닫고 노인전문사회복지사라는 제2의 인생을 살기 위해 올 3월부터 명지대학교 사회교육원 사회복지사 과정을 밟고 있다.

“이제 우리나라도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노인복지분야는 사각지대가 너무도 많습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시설과 최대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은 아니더라도 무의탁어르신들이 내 집처럼 최고로 편안하게 느끼고 쉴 수 있는 노인전문복지관을 세우는 것이 꿈입니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고사리 손으로 가위를 잡았던 그 손, 타인을 위해 가위를 잡아 상처투성이가 된 그 손, 이런 조씨의 손에 얽힌 사연들을 아는 사람들은 그의 손을 가리켜 ‘자비의 가위손’이라 부른다. 곱고 반듯한 손보다 조씨의 손이 더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사람과 삶을 사랑하는 그의 보살행 때문이 아닐까.
글=노병철 기자 ·사진=박재완 기자 |
2005-04-16 오전 10: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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