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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화재예방 매뉴얼부터 만들자
예방ㆍ초기진압ㆍ소실문화재 복원까지 고려해야

화재 진압도 중요하지만 예방이 먼저다.
월정사성보박물관 학예사 정복자 씨는 요즘 밤잠을 설친다. 눈을 감으면 낙산사 동종 보호각이 활활 타오르던 장면이 생생하게 떠오르기 때문이다. 월정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낙산사에서 발생한 일이라 더더욱 남의 일 같지 않다. 2003년 소방시설을 대폭 개선해 비교적 양호한 시설을 갖춘 월정사지만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고민 끝에 정 씨는 재해에 대비한 문화재 대피 매뉴얼을 만들기로 했다. 비상연락망을 짜고 유사시 옮길 문화재의 순서를 정했으며, 관리 책임자도 정했다. 종무회의에서 안이 통과되면 바로 시행할 계획이다.



◇방재 매뉴얼이 없다



사찰화재예방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했던가.
사찰에는 엄청난 문화재가 소장돼 있다. 조계종문화유산발굴단(단장 성정)에 따르면 대전·광주·강원·전북·제주·충남·충북·전남지역만 놓고 보더라도 1072개 사찰에 2만6000여 점에 달하는 문화재가 소장돼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난에 대비한 유물 대피 요령이나 보호 지침과 같은 방재(防災) 매뉴얼이 없다는 점이다.

조계종 총무원(원장 법장)은 말할 것도 없고 문화재 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문화재청(청장 유홍준)이나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이건무)도 마땅한 방재 매뉴얼을 만들어서 제시해준 바 없다.

방재 매뉴얼은 유사시에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행동하고,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지를 알려준다. 이 같은 사항을 숙지하고 평소 훈련이 잘 돼 있다면 재해를 당했을 때 신속한 대처가 가능해지고, 피해를 상당히 줄일 수 있다.

또 방재 매뉴얼은 개인과 사찰뿐 아니라 관계기관 사이의 공조에 대해서도 명확한 지침을 줌으로써 효과적인 대처를 가능케 한다. 이번에 소실된 동종이 좋은 예다. 불이 붙기 전에 보호각을 해체하기만 했어도 동종을 지킬 수 있었다는 것이 중론이고 보면, 관계기관 사이의 원활한 공조를 통해 보호각 해체를 신속하게 결정해 조치를 취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방화시설, 조선시대만도 못해서야


조선 성종 때 지어진 해인사경판전(국보 제52호·세계문화유산)은 1490년 해인사 중창 이후 6차례 발생한 화재에도 불구하고 그 해를 전혀 입지 않아 삼재불입처(三災不入處)라 불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경판전이 유독 화재를 면할 수 있었던 데는 경판전을 둘러싸고 있는 방화선와 신속하게 물을 조달할 수 있는 두 개의 우물 덕분일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측한다.

방화선이란 전각 주변 나무를 벌목해 주변 임목이 쓰러지더라도 전각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만큼 충분한 간격을 둔 것을 말한다. 해인사 경판전은 조선시대에 이미 훌륭한 방화시설을 갖췄던 셈이다.

이에 비하면 오늘날 대부분 사찰의 방화시설은 해인사경판전의 조선시대 여건에 못 미친다. 방화선이 설정된 곳이 드물고, 소화시설은 열악하기만 하다.

낙산사 경우 급히 마련한 150여개의 소화기와 소화전으로 화마에 맞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통도사·해인사·봉선사 등 소방차 보유하고 있는 사찰도 있지만, 사찰의 규모를 감안하면 안심할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조계종 총무원 관계자는 “몇몇 사찰을 제외하면 시설수준이 낙산사와 큰 차이가 없어 거의 모든 사찰이 화재 발생시 진화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처럼 미흡한 방화능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조계종은 주요 문화재 보유 사찰에 한해 소방서 분소 설치와 아울러 방화선 설정을 요구하고 있다. 방화선을 만들기 위해서는 앞서 사역을 조사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어 방화선도 간단한 일은 아니다.


◇ 방재 대책을 세우자


지난 2월 19일 인근 화재현장에 출동한 봉선사 자위소방대 소방차.
△방재시스템구축=방재의 생명은 신속한 대처에 있다. 이를 위해서는 사찰과 문화재청, 해당 소방관서 등이 유기적으로 연계돼 있어야 한다. 그리고 주기적인 합동 훈련을 통해 시설을 점검하고, 대처능력을 향상시켜야 한다.

△소방설비강화=비상시 문화재를 보관할 수 있는 방화벙커, 방화선, 수막차단벽 설치도 긍정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수막차단벽은 수막을 형성시켜 열기와 불씨가 옮겨 붙는 것을 차단하는 설비로, 일본 대형 사찰에는 보편화 돼 있다. 이 같은 소방시설 강화를 위해서는 소방법이 개정돼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한 방재 전문가는 “현행 소방법을 따른다면 낙산사에는 소화기 몇 대만 있으면 적법한 것이었다”며 “화재에 취약한 사찰 목조건축에 대해서는 강화된 소방설비 기준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복제품 활용=진품을 성보박물관 등에 보관하고 복제품으로 대체하는 것도 생각해봄직하다. 문화재청 유홍준 청장은 4월 8일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25개 보물급 범종 가운데 12개가 목조보호각에 걸려있다”며 “이 범종을 복제품으로 대체하는 안을 조계종과 협의중이다”고 밝혔다.

하지만 복제품에 대한 사찰과 불자들의 거부 정서는 넘어야 할 산이다. 박지선 용인대 교수는 “일본에서는 1940년대 발생한 호류지(法隆寺) 금당 화재 이후로 문화재를 남겨야 한다는 의식이 높아져 복제품 제작이 활성화됐다”며 “복제품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성보박물관 개선=성보박물관의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시설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 특히 목조로 건축된 성보박물관은 일반 전각보다 더 안전하다 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마곡사·은해사·직지사·갑사와 홍천 수타사 등의 성보박물관이 목조건물이다.

△주요문화재실측=훼손시 복원 또한 예방 못지않게 중요한 문제다. 복원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전 실측이다. 문화재청이 낙산사 ‘복원’을 이야기하지만, 소실 전각의 실측자료는 거의 남아있지 않아 복원을 하더라도 신축이 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2003년 화재로 소실된 원주 구룡사 대웅전은 강원도가 사전에 제작해둔 실측보고서가 있었기에 2004년 복원을 완료할 수 있었다.

△사찰보험상품 가입 유도=현재 사찰보험은 동부화재의 사찰종합보험이 유일하다. 현재 가입 사찰은 32곳인데, 가입 금액이 10억원 이상인 사찰은 12곳에 불과하다. 경주 불국사가 가입액 149억7600만원으로 가장 규모가 크며, 석굴암 51억원, 공주 영평사 27억원 등이다. 이번에 전소되는 피해를 입은 낙산사는 대한화재에 보험금 5억원의 ‘장기종합 춘하추동보험’에 가입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피해액 규모가 300억원에 달하는 상황에서 5억원은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관련 링크 : 부다피아 낙산사 홈페이지 가기
박익순 기자 | ufo@buddhapia.com
2005-04-09 오후 1: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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