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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과 조계사 일대 불교용품점에는 반가사유상, 관음보살상 등 소장용으로 제작된 작은 불상들이 즐비하게 진열돼 있다. 일대 거리에 들어찬 60여개에 이르는 불구점(佛具店)앞에서 불자들은 물론이고, 한국의 불교문화에 관심이 많은 외국인들이 발길을 멈추고 불상을 이리저리 살피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불상이 대량으로 ‘찍어낸’ 싸구려 중국산 불상이라면…. 암담하지만 현실이다. 요즈음 골동품 상점 및 불교용품점에는 중국, 베트남, 미얀마, 캄보디아 등지에서 대량으로 주조된 수입 불상이 가득하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다. 최근 불구점(佛具店)의 상인들은 이 같은 사실을 드러내 놓고 수입 불상 홍보에 나섰다. 쉬쉬하는 가운데 눈속임으로 팔아치우던 몇 년 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인사동의 한 골동품 상인은 “인사동에서 한국불상은 100% 없으니 고민할 것 없이 저렴한 중국불상으로 골라가라”고 권할 정도다.
수입 불상이 범람하는 이 시대, 과연 무엇이 전통 문화의 거리를 허접스러운 ‘외제’로 도배하게끔 했는가.
▽ 중국 불상, 한국 불상의 10분의 1가격… 상인들, “자유경쟁시대에 어쩔 수 없는 선택”
가장 큰 문제는 역시 ‘가격’이다. 불상은 불구점이나 공방 등을 통해서 거래되는 거래품목 가운데 하나다. 대한민국 전통문화재 조각회 고문 송근영씨는 “중국불상의 경우 한국불상의 10분의 1에 가까운 가격 경쟁력을 내세워 한국 불상들을 몰아냈다”고 말했다. 재료와 인건비가 워낙 싸기 때문에 그 어떤 한국불상도 중국과 동남아 불상의 가격을 쫓아가지 못했다는 것. 그 상황에서 상인들은 비싼 돈을 주고 한국 불상을 들여놓을 이유가 없었다. 사가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불상을 애써 고집해 들여놓아도 마찬가지다. 수입 불상 가격에 맞춘 한국불상은 적게 투자된 인건비 탓에 그 질을 담보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질을 높여 제대로 된 불상을 생산하면 비싼 가격을 문제 삼아 들여놓는 불구점이 없다. 이런 이유로 한국불상은 또다시 밀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인사동 골동품 상인 박승규(한림원 대표)씨는 “싱가포르는 농사를 짓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수입해 오는 것이 더 싸게 먹히기 때문”이라며 “거래 품목이 불상이 됐건 불화가 됐건 상인이 실리를 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에 수입 불상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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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불모 일거리 10분의 1로 줄어… 납성분 가득한 중국 불상 판쳐
이처럼 한국불상이 불교용품 시장에서 외면당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 불모들은 이제 더 이상 불상(小佛)을 제작하려 하지 않는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 시대를 대표하는 불상 양식이 없음을 고민하는 것은 욕심일지도 모른다.
동국불교미술인회 김광현씨는 “우리나라 천주교계에서는 밀려드는 필리핀 성모상을 통제하지 못해 성모상 생산의 맥이 끊어졌다”며 “수입 불상의 잠식 상황이 지속 악화될 경우 불교계 역시 그 같은 위험으로부터 안전할 수 없다”고 말한다.
수입 불상의 조악함도 큰 문제다. 수입 불상은 대량 주조가 용이하도록 청동으로 제작되는 경우가 많다. 틀의 모양대로 ‘찍어 나오는’ 불상에서 불모의 신심과 정성 따위가 있을 리 만무하다. 예배용 불상 역시 중국 등지에서 수입돼 오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 불상에는 인체에 유해한 성분이 함유된 경우도 있다. 해동불교미술원 대표 신석윤씨는 “한 불구점에서 한국불상의 10분의 1에도 훨씬 못 미치는 중국 철불을 살펴봤더니 납성분이 80%에 이르는 말도 안 되는 쇳덩어리였다”고 말했다.
수입 불상의 시장이 커지면서 한국 불모들의 생계가 힘들어진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한 전통 공방의 대표는 “일이 10분의 1수준으로 줄었다”며 “조만간 다른 일을 시작할 생각으로 자금을 모으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한 전통조각가는 공방을 뛰쳐나와 택시 기사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기도 하다.
경제적 타격이 가속화되면서 업종 자체에 대한 혐오를 내비치는 이들도 적지 않다. 3대에 이어 정성으로 불상을 조성해온 불모 모씨는 최근 “불모를 직업으로 선택한 것은 명백한 판단착오였으며, 이런 상황에서 신심으로 일을 한다는 것은 개소리”라는 과격한 표현까지 서슴지 않았다.
한국 전통문화의 거리를 찾은 외국인들에게 외제 불상을 권할 수밖에 없는 현실도 문제다. 인사동 골동품 상점 주인들에 따르면 외국인들이 불상을 고를 때는 항상 ‘한국 불상인지’를 먼저 확인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이 결국 사가는 것은 중국 혹은 미얀마 불상이다. 외국인들에게 한국 불상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또 ‘한국인에겐 전통이 없다’는 말을 듣는 것은 시간문제다.
▽ 스님ㆍ불모ㆍ상인 다 함께 대안 모색해야
일반 상품과는 구별되는 점이 있겠지만, 어쨌든 불상 역시 생산하고 소비해야 할 공산품 가운데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인 손실없이 상품을 구매하고자 하는 욕구를 봉쇄할 방도는 없겠지만, 여기에도 몇 가지 짚어야 할 사안이 있다.
불교 용품을 취급하는 상인들의 경우 이런저런 문제들을 덮어두고 그거 가격경쟁력 하나만 내세워 ‘팔아 제끼는’ 경우가 많다. 한 전통조각 전문가는 “조계사 일대 불구점 주인들 가운데 중국이나 동남아 등지에 따로 불상 공장을 차리는 등 수입 불상 잠식을 도모하는 상인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인사동 골동품 상인들의 경우 ‘중국 불상이 훨씬 뛰어나서 한국 불상은 들여놓지 않는다’ ‘불상에 대한 식견이 있는 사람들은 티베트 불상을 최고로 친다’ 등의 왜곡된 정보를 고객에게 흘림으로써, 전통문화의 거리에서 불교문화에 대한 오해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들 상인들의 인식의 전환이 가장 급박하게 요청되는 과제다. 자체적인 변화가 어렵다면 인사동 전통문화 보존회나 한국관광공사 등을 통한 변화의 계기가 필요하다. 또한 전통문화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할 수 있는 연수 교육 등도 아울러 마련돼야 할 것이다.
‘부처님을 돈으로 생각하는’ 스님들도 책임의 화살을 피할 수 없다. 실제로 수입 불상 상인들은 중국에서 조성된 예배용 불상을 갖고 사찰을 돌며 흥정을 벌이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에 몇몇 스님들은 불사금을 적게 들일 수 있다는 판단으로 중국산 저질의 불상을 봉안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는 것이다. 송근영씨는 “정확한 통계수치는 나오지 않았지만, 그간의 매매 상황을 미루어 볼 때 상당수의 사찰에 중국에서 조성된 불상이 안치됐을 가능성을 부인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와 함께 수입 불상이 판치는 불교문화 상품 업계의 현실에 맞서 전통 불모들의 개선 노력도 요구된다. 어쩔 수 없이 형성된 수입 불상 시장에서 내몰리다시피 한 그들이지만, 수동적으로 끌려가기만 할 것이 아니다. 수입 불상 확산에 대한 공동의 의견을 피력하고 생산라인을 구축하는 등 불모들의 직접적인 움직임을 이끌어 낸다면, 새로운 판도가 그려질지도 모를 일이다.
결과적으로, 이 같은 문제에 대한 정확한 현실 파악은 물론 불교계 내의 공론화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