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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망의 빛이 형상화된 그림을 만났다. 경기도 광주 영은미술관(~5월 8일)에서 열리고 있는 방혜자(69) 화백의 ‘빛의 숨결’전. 방 화백의 30여 그림에서는 찰해(刹海ㆍ땅과 바다)를 덮고 있는 부처님의 빛, 즉 ‘제망찰해’를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프랑스 길상사 후불탱화로 안치됐다는 그의 작품에 담긴 화엄사상의 신비를 풀 수 있을 것 같았다. 빛으로 형상화된 부처의 찬란함을 화폭에 담은 방혜자, 그는 누구일까.
“‘지상에 내려온 작은 별’ 같아요. 하늘을 날아다니다가 지구라는 아름다운 별을 발견하고 놀라서 급히 달려온 작은 별이랄까.”
소설가 최인호씨의 묘사가 맞는지도 모른다. 150센티가 조금 넘을 듯한 작은 키에 일흔의 나이로는 믿기지 않을 만큼 성성한 머리카락을 가진 방 화백은, 세상의 모든 색이 모두 묻은 듯한 하얀 작업복을 입고 서서 끊임없이 빛과 별과 우주를 이야기했다. 우리가 보는 별빛은 몇 백 광년 전에 우리를 향해 출발한 빛. 그 별빛이 긴 세월 동안 한 곳만을 향해 내달렸듯, 그는 오직 ‘빛’의 구현을 위해 수십 년의 세월 동안 색채의 옷을 입고 붓이 되었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우리는 빛으로부터 왔고, 빛에서 살고, 빛으로 돌아가는 존재입니다. 빛은 생명의 원초적인 에너지죠. 그러한 빛의 기운을 담아내고자 했습니다. 입자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빛을 매개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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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직접 개어 만든 천연 염료로 캔버스 위에 빛을 뽑았다. 어떤 인위적인 상(像)은 필요치 않았다. 자연의 재료로 만든 물성(物性)의 자체 에너지가 빛으로 환원되기만을 다독일 뿐이었다.
그것을 위해서는 수백 수천 번의 붓질이 이어져야 했다. 그는 흔적이 남을 듯 말 듯한 엷은 색을 붓에 묻혀 생각도 잊고 두드렸다. 붓을 쥐는 것은 손이건 발이건 상관없었다. 작가는 물성이 본디 빛으로 화하는 것을 돕는 매개체일 뿐이었다. 그래서 관람자의 마음에 빛을 심을 수 있다면 그만이었다. 하찮은 가루와 액체 등의 물성이 자신을 통해 환희로운 세계에 이를 수 있다는 생각으로 끊임없이 작업에 임했다. 그래서 그의 그림을 보는 이들은 한결같이 “마치 경전을 읽는 것 같다”며 입을 모은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내면에 작은 빛 한줄기, 작은 빛의 씨앗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씨앗이 싹을 틔우고 자라나게 도와야 합니다. 예술가의 삶은 회향의 삶입니다.”
이제는 빛과 방 화백의 경계가 무의미하다. 이런 그를 두고 많은 이들이 빛과의 인연을 궁금해 한다. 그러나 그는 그림은 마음에서 온다는 생각을 잊은 적이 없다며 모든 작업은 마음이 이끌었을 뿐이라고 일축한다.
그 마음은 경험의 집약체다. 시냇물 속 조약돌에 비친 햇빛을 어떻게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던 유년기 경험, 프랑스 프로랑스 지방의 황토 채석장에서 목격했던 색채의 진동 등이 저도 모르게 ‘빛의 화두’를 쥐어주었다. 전쟁 중에 얻은 병으로 숨이 턱에 닿아 할딱이던 시절 수덕사 노스님에게서 전해들은 자연과 생명에 대한 깊은 얘기, 탄허 스님을 통해 얻은 유불선 전반에 대한 확철하고 명료한 가르침 역시 그의 바탕이 됐다.
그 뿐만 아니다. 우리 몸 안에 수천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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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작업실 밖에서도 빛의 에너지를 오롯이 체험한다. 한 획 한 획 살아있는 생명과 같은 붓글씨를 하루도 거르지 않을 뿐더러, 그림을 그리면서 화폭 위에 담을 수 없는 기운은 글씨를 빌어 시로 옮긴다. 매일 아침 기공 수련으로 우주의 에너지를 여과없이 받아들이는 것도 주요한 일과다. “어떤 수련이든 그것은 인간의 의식을 깨어나게 합니다. 기공은 도(道)의 춤이자 우리 몸이 공간 안에서 쓰는 붓글씨입니다.”
칠순을 코앞에 둔 방 화백이지만 빛의 숨결을 전하려고 하는 그의 노력은 끝이 없다.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하루 12시간을 붓을 쥐는 것은 물론이고, 프랑스 한인문화원에서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붓글씨 무료강좌를 펼치기도 한다. 그에겐 자신의 작업과 대중강좌가 둘이 아니다. 에너지와 빛, 색채가 하나로 결합하는 상태에 이르러 모든 것을 우주에 회향하겠다는 것이 방혜자 화백의 지치지 않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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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혜자 화백은?
1961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하고 도불, 파리 국립미술학교와 파리 국립응용미술학교 등지에서 벽화와 색유리화 수업 등을 받았다. 파리 헤이터17 공방에서 판화를 연구하기도 했다. 프랑스에서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래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110여 차례에 걸쳐 개인전과 단체전을 열었다. 특히 내면의 세계를 ‘빛’으로 표현하기 시작하면서 프랑스, 독일, 스위스 등지에서 주목되는 현대미술 화가로 평가받아왔다. 특유의 빛 그림으로 프랑스 파리 길상사와 평창동 보각사의 후불탱화를 조성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