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를 읽다가 보면 힘깨나 쓴다고 하면 ‘강호(江湖)의 고수’라는 호칭이 뒤따라 다닌다. 신경 좀 써서 만든 책은 어김없이 서문 맨 끝에 ‘강호제현의 질정을 바란다’는 말이 상투적으로 따라 붙는다.
강호라는 말은 ‘천하(天下)’라는 말이다.
강호라는 말의 어원의 주인공은 조사선의 실질적 완성자인 마조 스님이다.
그 시절 강서지방의 대표적인 인물은 마조 선사였고, 호남지방에서 가장 활약이 두드러진 사람은 석두 선사였다. 두 회상으로 공부인들의 왕래가 서로 끊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당시에 이 두 선사를 찾아 뵙고 거량을 하여 인가받지 못한 납자는 뭘 제대로 모르는 안목없는 사람으로 간주되었던 것이 당시의 일반적인 분위기였다. 강서와 호남이 당시 모든 인재들의 집합지였던 것이다.
이렇게 천하의 인재가 모여들 수 있었던 이유는 다름아닌 과거제도의 문란이었다. 응시하는 실력자는 많은데 합격자는 언제나 ‘이미 내정된’ 엉뚱한 사람들이었다. 부패한 과거제도는 젊은이들로 하여금 과거장이 아니라 ‘선불장(選佛場)’으로 모여들게 만들었다. 관리를 뽑는 곳보다는 부처를 뽑는 곳이 더 인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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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심에 서있는 인물이 마조 선사였다. 단하천연 선사와 방거사는 불교를 만나기 전에 함께 과거길에 올랐다. 가는 도중에 마음을 돌려 부처를 뽑는 선불장인 마조선사 회상으로 출가한 이야기는 당시의 분위기를 그대로 전해준다.
당시의 대스타인 마조 선사는 광장설상(廣長舌相)과 천복륜상(千輻輪相)을 갖추고 있었다.
즉 혀가 코를 덮었고 발바닥에는 법륜이 새겨져 있다고 하였는데, 이는 부처님의 32상을 표현한 것이다. 법문을 매우 잘하였고 열심히 교화했다는 의미다. 그의 문하에서 백여명의 깨친 사람이 나왔고 상주하고 있던 대중이 천여명에 이르는 매머드급 총림이었다.
그의 걸음걸이는 소와 같이 점잖았고 눈빛은 언제나 호랑이 같았다.
그런 그에게 드디어 진짜 강적(?)이 나타났다. 무림의 고수도 아니고 강호제현도 아닌 어릴적 동네에 함께 살았던 할머니였다. 선종사에서 내로라하는 선지식들에게 가끔 이런 평범한 노파들이 나타나서 허를 찌르는 광경은 흔한 풍경이기도 하다.
마조 스님이 남악회양 선사에게 법을 얻고나서 이름을 떨치던 중 고향인 사천에 한번 들렀다. 금의환향하니 모든 사람들이 “큰스님이 오셨다” “우리 마을에 인재났다”고 야단들인데 시냇가에서 빨래하던 이웃집 할머니의 한마디는 그야말로 환영사의 압권이었다.
“무슨 경사나 난 줄 알았더니, 뭐야! 이 애는 마씨 농기구집의 작은 아들 아니냐!”
“???????”
마조 선사의 황당해하는 표정이 눈앞에 선하다. 후에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나 어쨌다나.
송대의 자료인 〈오가정종찬〉1권에 그 원문이 나온다.
권군막환향(勸君莫還鄕)
환향도불성(還鄕道不成)
계변노파자(溪邊老婆子)
환아구시명(喚兒久時名)
자네들에게 바라노니 고향에는 가지 말아라.
고향에 돌아가면 공부하기가 어럽더구나.
시냇가의 옆집 할머니가 어릴 때 나의 이름을 부르더군.
늘 ‘평상심이 도’라고 말한 그였지만 고향 할머니의 한마디에 평상심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