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산에는 언제나 관세음보살이 머물고 있다. 이것을 '관음진신주처신앙(觀音眞身住處信仰)'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신앙의 배경은 『화엄경』에 있다. 『화엄경』에는 「보살주처품(普薩住處品)」이 별도로 있어서 금강산에는 법기(法起)보살, 오대산에는 문수보살, 천관산에는 천관(天冠)보살이 상주설법(常住說法)한다고 설하고 있다.
그런데 관음주처 신앙은 이 경전의 「입법계품(入法界品)」에 기초하고 있다. 선재동자(善財童子)는 28번째로 선지식(善知識)을 만나는데, 그가 곧 관음이다. 관음보살은 남방 해상의 광명산(光明山), 곧 보타낙가산에서 상주설법하고 있었는데, 선재동자가 묻는 보살도(菩薩道)에 대해 일체 중생들이 공포에서 벗어나도록 서원을 세워 대비법문광명행(大悲法門光明行)을 성취했다고 했다.
이처럼 관음진신주처신앙이 『화엄경』에 토대한 것이라고 볼 때 신라의 낙산관음진신주처신앙이 과연 의상에 의해 유포된 것인지에 대해 의문이 생길 수 있다. 관음의 주처가 『육십화엄(六十華嚴)』에는 광명산으로, 『팔십화엄(八十華嚴)』에는 보타낙가산으로 되어 있는데, 『팔십화엄』은 의상의 열반(서기 702년)에 가까운 699년에 번역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타낙가산이라는 산 이름은 반드시 『팔십화엄』에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646년에 쓰여진 현장(玄濱)의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에도 포달낙가산 산꼭대기에 천궁(天宮)이 있어서 관자재보살이 왕래하며 뵙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나타나 위유(慰喩)한다고 했다.
그리고 보타낙가산은 소백화산(小白花山)으로도 불린다. 서역의 보타낙가산은 백의대사(白衣大士), 곧 관음보살이 머무는 곳이므로 이곳에서는 '소백화'라고 한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은 이를 밝힌 것이다. 또한 징관(澄觀)도 여기서는 소백화라고 한다고 했다.
이처럼 보타낙가산이라는 지명은 『팔십화엄』에만 쓰인 것이 아니고, 또한 그 한역(漢譯)인 소백화산으로부터 의상이 백화도량(白花道陽)이라는 용어를 이끌어 쓴 예 등으로 볼 때, 낙산의 관음보살주처신앙과 의상스님과의 관계를 간단히 부정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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