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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ㆍ청대의 고승 운서주굉 스님(1535~1615)의 <죽창수필((竹窓隨筆)>을 실상사 화엄학림 학장을 지낸 연관 스님이 우리말로 옮겼다. <죽창수필>은 주굉 스님이 수행 중 떠오른 단상을 ‘대나무 창가에서 붓 가는 대로 적은’ 글 450여 편을 묶은 것으로, 연관 스님은 이 가운데 142편을 가려 담았다. 원고지 2~3매를 넘지 않는 짧은 글에서 수행자에 대한 경책과 바른 수행법 등 불가(佛家)의 가르침뿐 아니라 구습(舊習)에 대한 비판과 같은 세상 사는 이치도 일러준다.
“부음(訃音)을 들으면 사람은 누구나 크게 놀란다. 이것이 비록 세상사의 상정(常情)이긴 하지만, 태어나면 반드시 죽는 것 또한 세상의 상사(常事)여서 이제까지 아무도 이를 비켜간 사람이 없으니 무엇이 새삼 놀랄 만한 일이겠는가. 다만 헛되이 살다 부질없이 죽어 가면서 도를 듣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놀랄 만한 일이건만, 이 일에는 오히려 태연하여 전혀 놀라워하지 않으니, 참으로 슬픈 일이다.”
짧은 글 속에서도 핵심을 바로 일러주는 주굉 스님의 필봉(筆鋒)을 연관 스님은 ‘노고추(老古錐)’, 즉 ‘원숙하면서도 날카롭다’고 표현한다. 글 사이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고려대장경연구소장 종림 스님의 그림도 글맛을 더해준다.
■ <산색-죽창수필 선역>(운서 주굉 지음, 연관 스님 옮김, 호미, 9천5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