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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안성 한적한 마을에 자리한 사찰 굴암사(주지 보덕). 25년간 오갈 곳 없는 아이들의 보금자리였다. 굴암사를 창건하기전인 40년 전부터 8명의 아이들과 함께 살아온 노스님은 ‘신고’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살아왔다. 아이들만 열심히 기르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는 정부 시책인 ‘미인가 복지시설 양성화’시한인 7월 31일 이전에 문을 닫을 생각이란다. 스님은 지방자치단체에 지난해 조건부 신고시설로 등록했다.
하지만 지자체는 복지시설로 인가 받기 위해서는 보육교사도 충원해야 하고, 소방법에 따라 스프링클러도 설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처음에 갈 곳이 없었을 때도, 3년 전 불이 나서 스님과 아이들 모두 죽을 뻔 했을 때도 스님은 꿋꿋하게 일어섰다. 그런데 현재의 상황에서는 도저히 일어날 힘이 없다.
사람을 쓰고 건물을 보수할 재정적인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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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정부 쌍암사(주지 증산). 수락산 군사보호지역에 위치한 법당과 11명의 아이들이 기거하는 방사는 비닐과 슬레이트로 덮여 간신히 비바람을 피하고 있다.
증산 스님은 “정부 지원을 받지 않고도 20여년간 우리끼리 화목하게 잘 살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곳도 복지시설 양성화 정책으로부터 피해갈 수는 없다.
스님은 양성화 얘기가 나오면서 아이들이 어떻게 커 가는지 관청에서 처음으로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오히려 고맙단다. 하지만 정부와 지자체가 갑자기 ‘아동 한 명당 3평 이상의 공간이 확보돼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하며 시설 이전을 요구하고 나선 것은 선뜻 납득할 수가 없다고 말한다.
스님은 마지막으로 사찰 밑 군사보호구역 30평 건물이라도 쓸 수 있게 해달라고 의정부 시장에게 사정할 참이다. 그마저 안 된다면 문을 닫아야 한다.
정부가 미인가 복지시설의 신고시설 전환 시한으로 정한 7월 31일이 4개월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불교계 44개 미인가 시설중 완전히 신고시설로 전환된 곳은 2곳에 불과하다.
42개 시설중 원주 ‘소쩍새마을’, 안산 ‘둥지청소년의 집’, 화성 ‘자제정사’ 등 사회복지법인 설립, 성공적으로 양성화가 진행되고 있는 3개 시설을 제외한 39개 시설은 여력이 없다.
법인을 설립했다고 해도 신고시설로 전환하기 위한 정부 기준이 까다롭다. 노인 시설의 경우 지자체가 수용인원 10인 이상 일 때 사회복지사는 물론 물리치료사ㆍ사무원ㆍ취사부ㆍ운전기사까지 고용하고, 휠체어가 올라갈 수 있는 경사로와 길이 20cm이하의 계단, 엘리베이터 설치가 필수라 시설설치비가 만만치 않다.
시설이야 폐쇄해도 어쩔 수 없다지만 가장 큰 문제는 아이들이 뿔뿔히 흩어져야 하는 것. 여기에다 정부에서 요구하는 복지시설 수용기준에 적합한 아이들, 즉 법적으로 부모없는 아이들의 경우 대규모 인가시설로 보내면 되지만 법적으로 부모가 있어 전혀 보호를 받지 못한 채 혼자된 아이들이 문제다. 미인가 시설에서 생활하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갈 곳이 마땅치 않다.
이런 상황에서 44개의 불교계 시설 가운데 30인 이하의 시설이 33곳이나 되는 불교계 소규모 시설에서 가장 적합하게 시도할 수 있는 ‘그룹홈’이 대안으로 제기되고 있다.
그룹홈은 도움이 필요한 노인, 청소년, 장애인 등이 가족처럼 함께 생활하는 방식이다. 그룹홈은 시설장 외에 관리자 1명만 두면 되고, 지자체나 시에서도 적극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어 소규모 미인가 시설이 직접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대안이 되고 있는 것이다.
30인 이상의 법인 운영 시설의 경우 시설의 분원으로 신고한 뒤 부대사업으로, 10~30인 10인 미만으로 나누어 소규모시설인 그룹홈으로 지자체에 신고하는 것이다. 또 5인미만은 가정위탁사업으로 등록이 가능하다.
하지만 90년대 후반부터 도입된 제도인 만큼 프로그램에 따라 운영하는 방식이 생소하고, 정부의 지원도 미미하다보니 활성화가 안 돼 있다.
조계종 사회복지재단 윤남선 과장은 “양성화가 어려운 불교계 시설들에는 그룹홈이 가장 현실적 대안”이라며 “그룹홈은 일반가정과 차별이 없는 주택을 마련한 뒤 가장 기본적인 시설설비를 갖추면 된다”고 말했다.